채널A 망언의 파장이 좀처럼 진정되지 않는다. 문제의 망언은 "(항공기 사고의)사망자 2명은 모두 중국인으로 확인됐다. 우리 입장에서는 다행이다"라는 내용의 앵커멘트였다. 채널A는 파장이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가자 같은 날 주중 한국대사관이 운영하는 웨이보(중국판 트위터)에 유재홍 사장 명의의 사과문을 올렸다. 중국어로 쓰여진 사과문의 내용은 이랬다.
“중국인의 감정을 상하게 한 것에 정식으로 사과한다. 두 명의 90년대생 학생이 숨진 가운데 앵커가 피해자 가족과 중국인의 마음을 고려하지 않고 이런 언급을 한 것은 완전히 잘못된 경솔한 처사였다. 해당 앵커가 자신의 잘못된 발언을 심각히 반성하고 있으며 다시는 이 같은 잘못을 하지 않을 것이다”
거듭된 사과에도 불구하고 중국인들의 분노는 사그러들지 않고 있지만, 사과의 효과(?)를 떠나 사과에 임하는 채널A의 태도는 더없이 간곡하고 정중하다. 무릇 사과는 그래야 한다.
채널A는 두 달 전에도 사과방송을 내보냈다. 5.18이 남파된 북한군의 소행이라는 왜곡보도에 대한 사과였다. 그런데, 길지 않은 간격을 두고 보도된 채널A의 두 가지 사과는 '버전'이 확연히 틀리다. 다음은 5월 21일 있었던 5.18 왜곡보도에 대한 채널A의 사과멘트다.
“만약에 이 방송 내용으로 인해 마음을 다친 광주민주화운동 피해자와 시청자 여러분이 있다면 사과하겠다. 제작 과정에서 부족한 부분은 엄밀히 검증해서 다시 밝히겠다”
이보다 불쾌한 사과가 또 있을까? 저들은 분노한 유가족과 시청자들을 향해 “만약에”라는 가정법을 사용한 ‘조건부 사과’를 내밀었다. "엄밀히 검증해서 다시 밝히겠다"는 말에서는 자신들의 날조보도가 틀리지 않았을 가능성까지 시사하고 있다. 희생자들을 두 번 죽이고, 시청자들을 또 다시 우롱한 처사다.
그로부터 몇일 뒤 방송통신위원회의 방송심의소위원회에 참석한 채널A 권순활 보도본부장은 한 심의위원이 “증언자가 5·18 때 광주에 왔다는데 무슨 근거가 있냐”고 묻자 “그럼 (북한군이)오지 않았다는 근거는 있느냐?”고 반문하여 듣는 이를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5.18에 대한 왜곡보도를 처벌받으러 나온 자리에서 또 다시 5.18을 왜곡하는 망언을 한 것이다. 사과에 진정성이 없었음을 자인한 셈이다.
두 번의 방송사고가 갖는 공통점은 방송을 통해 희생자들의 죽음을 욕보였다는 점이다. 그러나 해당 방송사는 얼마간의 터울을 두고 벌어진 방송사고에 대해 완전히 상반된 태도의 사과를 건넸다. 중국인 사망사고에 대한 사과가 간곡하고 정중했다면, 5.18 망언에 대한 사과는 무성의하고 치졸했다. 5.18 유족들과 시민단체들이 고소고발을 해와도 눈하나 깜빡 안하던 저들이 바다건너 중국인들의 분노에는 즉각적으로 고개를 숙인다. 이 차이는 어디서 비롯된걸까?
두 사과에서 차이가 나타나는 것은 저들이 5.18 희생자들의 무게와 중국인 사망 사고의 무게를 다르게 보고 있기 때문이다. "(사망자들이) 중국인들이라서 다행이다"라는 발언이 배타적 민족주의가 무의식중에 발현된 것이었다면, 5.18에 대한 망언은 사전에 의도적으로 계획된 '혐오범죄'였다. 무의식중에 튀어 나온 쇼비니즘보다 의식적으로 표출된 혐오정서가 더 강한 것은 당연하다.
사실 저런 종류의 쇼비니즘은 대한민국의 모든 방송뉴스에서 오래전부터 '암시'되고 있었던 정서였다. 다만 이번엔 표현이 좀 더 '솔직'했을 뿐이다. 이번 채널A의 방송사고가 집중포화를 맞은 데에는 두 달 전 5.18 방송사고 당시 무성의하게 대처했던 것에 대한 괘씸죄가 더해진 측면도 있을 것이다.
중국인 사망사고의 사과문과는 달리 5.18 왜곡방송 사과문에서 진정성을 찾을 수 없는 이유는 저들이 아직 민주화의 상징인 5.18과 민주화세력에 대한 혐오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저들이 바른 역사관과 시민의식을 배우지 못하는 이상 종편의 백색테러는 계속될 것이다. 내년 5월에는 이 방송사가 또 어떤 '특집'을 준비할지 눈여겨 볼 일이다. 그때까지 용감한 채널A가 살아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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