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어떤 글에서 원세훈을 '상상속의 유령과 싸우는 돈키호테'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이석기사태로 그 표현이 틀렸음이 증명됐다. 내가 순진했고 어리석었다. '상상속의 유령'이 현실로 나타났으니 허공에 칼을 휘두른 돈키호테를 칭찬해야 하는 걸까?

 

<많은 것을 공유하는 극단의 괴물들>

 

이석기사태로 종북세력(or그것과 가까운)의 실체가 드러난 것은 사실이지만, 원세훈의 몽상이 사실로 증명된 것은 아니다. 원세훈은 국정원장 재임시절 민주노총, 전교조 등의 시민단체와 박원순 서울시장, 최문순 강원지사 등의 정치인들, 명진 스님 등과 같은 종교인, 종교단체를 비롯해 4대강사업 등 정부시책에 반대하는 모든 국민들을 종북세력으로 규정했다. 심지어 그는 자신을 기소한 검찰과 이나라의 재판부에까지 종북딱지를 붙였다. 이번에 드러난 '이석기류'의 존재는 원세훈의 망상 중 극히 일부일 뿐이다. 

 

이석기의 혐의에 대한 입장과는 별개로, 이석기의 실체를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은 대동소이하다. 이석기의 실체가 종북세력의 실존을 증명했다면, 이석기를 바라보는 사회일반의 시선은 -국민 절반이 종북이라는- 원세훈의 몽상이 허구임을 증명하고 있다. 

 

양비론을 병적으로 싫어하는 내가 둘을 같은 도마 위에 올려놓는 이유는 이 글이 두 사람에 대한 정치적 해석이 아닌, 그들의 몽상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일란성 쌍둥이

 

올해 전반기에 가장 핫한 이름이 원세훈이었다면, 후반기를 가장 뜨겁게 달구고 있는 이름은 단연 이석기다. <흑과 백>, <물과 불>일 것 같은 두 이름이지만 이들은 사실 매우 닮은 부류의 인간이다. 이석기는 2013년의 한국정부를 미제 괴뢰정부로 바라보았고, 원세훈은 대한민국 국민의 절반을 종북세력으로 바라봤다. 모두 이성적 토론의 범주를 넘어서는 '몽상'이다. 한사람은 가상의 적을 무찌르기 위해 국정원에 댓글부대를 조직했고, 다른 한사람은 BB탄총 개조를 모의했다. 그 '실행력'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몽상 속의 적에게 칼을 뽑아든 돈키호테라는 점에서 둘은 같은 종류의 인간이다.

 

원세훈과 이석기는 '종류'는 물론 뿌리도 같다. 원세훈의 매카시즘과 이석기의 종북사상은 모두 분단이라는 비극을 먹고 자란 괴물이다. '본토'에서 조차 오래전에 사라진 매카시즘이 명맥을 이어온 것이나 북한이라는 비정상적인 국가체제를 추종하는 사상이 살아남은 것 모두 분단이라는 비정상적인 배경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분단조국이 저들의 몽상에 면죄부를 주지는 못한다. 분단체제 아래서 산다고 해서 모두가 저런 멍청이가 되는건 아니기 때문이다. 

 

분단이 낳은 괴물 원세훈-이석기는 분단체제 해체를 가로막는 장애물이기도 하다. 저들의 극단주의가 살아숨쉬는 한 한반도에서 화해, 포용같은 구호는 낭만일 뿐이다. 저런 지체아들이 사라지지 않는 한 분단체제의 극복은 요원하다. 

 

법적인 잣대로 경중을 가린다면 이석기 쪽이 억울할 지도 모르겠다. 고작 BB탄총 개조 따위를 모의했던 이석기의 실력은 정보기관의 수장으로서 부정선거를 진두지휘한 원세훈의 그것에 비할 바가 못된다. 허나, 몽상의 기괴함만을 놓고 본다면 이석기나 원세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이석기의 존재가 원세훈의 과대망상을 증명한다면, 원세훈의 존재는 이석기의 피해망상을 증명한다. 이석기가 없었다면 원세훈의 종북타령은 온전히 헛소리가 되었을 것이고, 원세훈이 없었다면 이석기가 보도연맹사건을 떠올리며 공포에 떨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그들은 서로를 혐오하면서도 각자의 존재이유를 증명하는 도구로써 공존해왔다.  

 

 

 

성공한 지체아(遲滯兒)

 

외부의 적인 북한보다 오히려 더 다루기 힘든 문제가 국내 종북좌파들로서, 앞으로 더욱 정부 흔들기를 획책할 것이므로 더 이상 우리 땅에 발 붙이고 살 수 없도록 만들어야 함. 종북세력 척결과 관련, 북한과 싸우는 것보다 민노총·전교조 등 국내 내부의 적과 싸우는 것이 더욱 어려우므로... - 원세훈 원장 지시강조사항

 

북한과 종북 좌파가 대통령 국정수행 성과를 폄훼하고 정부 시책에 대한 반대 선동을 해왔다. 이런 공세에 대응해 사이버 활동을 벌이는 것은 국정원 심리전단의 고유 업무다 - 국정원 국정조사 청문회

 

(선거에서 지면)그땐 판사도 아마 적이 돼서 사법처리를 하지 않을 거야. 다 똑같은 놈들일 텐데... - 2010년 국가정보원 부서장 회의

 

전 세계 최강이라는 미 제국주의와 전면으로 붙어서 조선 민족의 자랑과 위엄과 존엄을 시험하는 전쟁에서 승리의 시대를 후대에게 주자. 우리가 싸우는 대상이 바로 북이 아니라 외래 침략자라는 것이다.

 

우리가 자주된 사상, 통일된 사상, 미국놈을 몰아내고 새로운 단계의 자주적 사회, 착취와 허위없는 그야 말로 조선민족의 시대의 꿈을 만들 수 있다.

 

수 많은 곡절을 딛고 우리가 동지부대를 이루고 그야말고 미국놈들하고 붙는 대민족사의 결전기에서 우리 동지부대가 선두에서 저놈들의 모략책동을 분쇄하고...

 

-이석기 5.12 RO모임. 한국일보 보도 인용

 

양 극단을 달리는 두 사람의 세계관이지만, 그것들에서 읽혀지는 정서는 매우 유사하다. 두 사람의 발언에서 일관되게 발견되는 정서는 비장함과 투쟁심, 호전성과 영웅심 같은 것들이다. 둘의 인생은 현대판 돈키호테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잘 보여준다. 그들이 믿고 혐오했던 가상의 적의 존재는 둘의 삶을 지탱하는 원동력이었다. 원세훈은 종북세력 척결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고, 이석기는 남한사회의 자주성회복(?)에 사활을 걸었다. 그들의 인생에서 '종북척결'과 '미제타도'라는 구호를 들어내고 나면 먼지만 남는다. 

 

"미국놈들하고 붙는 대민족사의 결전기에서 우리 동지부대가 선두에서 저놈들의 모략책동을 분쇄하고..." -이석기-

 

"심리전단이 보고한 '젊은층 우군화 심리전 강화방안'은 내용 자체가 바로 우리 원이 해야 할 일이라는 점을..." -원세훈-

 

저들은 1940년대에나 쓰였을 법한 언어로 자신들의 몽상을 표현하고 있다. '대민족사의 결전기', '젊은층 우군화 심리전 강화방안'이라니, 요즘 누가 저런 말들을 쓸까 싶을 정도로 저들의 언어는 낡고 구리다. 저들의 머리 속은 사방천지에 공산주의자들이 들끓고 남한정부를 친미 꼭두각시들이 장악했던 70년전 남한사회에 머물러 있다. 이런 지체아들이 득세하는 나라가 정상일리 없다.  

 

 <돈키호테가 괴물이라 믿었던 풍차>

 

"통일혁명의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면서 선두의 역할을 한다면 이 또한 명예가 아닌가" -이석기-

 

"인터넷이 종북좌파 텃밭이 됐다. 오염된 국민의 생각을 국정원 사이버로 정화해야 한다" -원세훈-

 

재미있다. 소설 속 돈키호테 역시 스스로를 정의감에 불타는 영웅으로 생각했다. 종북세력으로부터 국가를 구하고자 했던 원세훈의 정의감이나, 미제의 폭압으로부터 나라를 구해야한다는 이석기의 정의감 역시 돈키호테의 그것에 못지않다. 돈키호테의 정의감은 그저 유쾌한 조롱거리로 그쳤지만, 원-이의 삐뚤어진 정의감은 이나라에 큰 혼란을 몰고 왔다.  

 

원세훈과 이석기는 한국정치의 비정상성을 상징하는 극단의 괴물들이다. 비슷한 시기에 저들 중 한명은 이나라 정보기관의 수장이 되었고, 다른 한명은 당당히 국회에 진출했다. 두 몽상가들의 출세는 한국의 민주주의를 깊은 수렁에 빠뜨렸다. 걸출한 몽상가들의 ‘재능’이 예술의 영역이 아닌, 정치의 영역에서 쓰여졌다는 것은 비극이다. 이석기-원세훈 같은 몽상가들은 어느 나라, 어느 시대에나 존재한다. 그러나 그런 돈키호테들이 쥐락펴락하는 나라는 미친나라다. 돈키호테가 요즘시대에 태어났다면 그가 가야할 곳은 오직 정신병원 뿐이다. 해가 동쪽에서 뜨는 정상적인 세상이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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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다람쥐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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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9.10 01:33 신고

    ??? 이석기가 종북이라는겁니까? '종북'이라는 개념을 인정하는 것도 그렇지만, 무슨 근거로 이석기를 종북이라 단정지으시는지. 도대체 한국사람들은 왜 북한만 나오면 이러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들이 쓰는 단어나 표현이 생소할 수는 있겠습니다만, 반미자주와 통일을 이야기하는게 시대착오라고 할 수 있으려면 적어도 우리가 미국으로부터 자유로운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있어야하는거 아닌가요?
    흠. 거참.

  2. 2013.10.01 22:15 신고

    글쓴이의 말대로 둘다 자신이 각자 어떤 신념을 가지고 살았다는 공통점은 있다고 하더라도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그 공통점 하나만으로 둘을 동일시하여 비판하는 것은 옳지 못한 접근법이라고 생각되네요. 최소한 한명은 우리나라를 위하는 마음에서 나온 신념이고 다른 한명은 그렇지 않은 신념이기 때문입니다. 그 둘을 동일시 하여 비판하고 싶다면 김정일을 우두머리로 모시는 사람이 국회의원이라는 자격으로 TV와 라디오, 이동통신사같은 기간시설의 방어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전력공급이 중단됬을 비상시에 TV와 라디오, 이동통신사 가운데 어디가 가장 먼저 끊기는지 핵연료의 처리방안 연구는 어느 정도 진행됐는지 이들 기업의 자가전력 공급대책은 무엇인지 한국형 발사체 개발 자료를 포함한 우주개발사업 로드맵 등 안보 분야에 대한 자료를 청구받았고 이자에 대해 3년간 끈질기게 추적하여 무죄추정의 원칙이 무색할 정도로 많은 증거를 확보하고 결국 체포영장이 발부할 수 있게 도움을 준 국가정보원의 수장이 무엇을 착각하고 있는지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시길 바랍니다. 또한 가상의 적이라는 말로 돈키호테로 비유하고 싶으시다면 국가보안법으로 체포되어 풀려난 자들이 포함되어 있으며 명백히 북한을 추종하는 세력으로 밝혀진 통합진보당과 야권연대를 맺고 고려연방제를 공약으로 내건 자들과 6.25를 남한과 미국이 도발했다고 가르치며 광우병 파동때에 학생들을 선동하는 전교조가 어째서 종북세력이 아닌지 좀 더 자세한 설명을 해주시길 바랍니다.

    전교조 관련 자료
    http://www.ilbe.com/513629163

    고려연방제 관련 자료
    http://www.ilbe.com/1490653506

 

<진보당 이석기 의원>

 

-이 글은 녹취록공개와 이석기 의원의 기자회견 이전에 작성된 글입니다. 이후 밝혀진 사실관계에 따라 제 입장에도 달라진 부분이 있음을 밝힙니다.  

 

발빠른 거리두기 

 

촛불집회 연단에 민주당 김한길 대표가 등장했다. 장내에는 “와~”보다는 “우~”에 가까운 함성이 들렸다. 그의 연설이 끝나고 이번엔 진보당 이정희 대표가 연단에 올랐다. “와아~~” 조금전 김한길 의원이 소개됐을 때보다 10배, 그 이상의 함성이었다. 다른날 민주당 모 의원과 진보당 김재연 의원이 올라왔을 때도 함성의 '비율'은 그것과 비슷했다. 한번이라도 촛불집회에 참여한 사람이라면 두 정당을 대하는 시민들의 온도의 차이를 체감했을 것이다. 민주당은 의원 100여명의 '대군'을 이끌고 광장으로 진군했지만 그곳의 주인공은 자신들이 아니었다. 시민들의 '부당한 대우'에 제1야당은 자존심이 상했을지도 모르겠다.

 

여기에 큰 의미를 둘 필요는 없다. 촛불민심이 민주당보다 진보당에 가깝기 때문이라 할 수도 있고, 민주당의 어정쩡한 행보에 민심이 실망했다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요동치는 거리의 민심은 정치상황에 따라 언제고 달라질 수 있다. 문제는 이 온도의 차이를 대하는 민주당의 태도다. 광장의 주인이 되지 못했던 것에 빈정이 상했던 걸까? 어제 국정원이 통합진보당과 이석기 의원에 대해 압수수색을 실시하자 민주당 김한길 대표는 이렇게 밝혔다.

 

깜짝 놀랐다. 사실이라면 용납할 수 없는 충격적 사건이다. 어처구니없는 발상이 사실이라면 또 하나의 국기문란 사건으로 철저한 수사가 있어야 마땅하다. 다만 국정원 개혁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대두되고 있는 시점에서 불거진 사건이고 국기문란 사건의 당사자로 지탄받고 있는 국정원이 수사주체가 돼 있는 만큼, 이번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는 추이를 예의주시하겠다.

 

민주당은 당장에 참석키로 예정돼있던 30일 촛불집회에 불참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진보당이 주최하는 행사라는 것이 취소의 이유다. 다음날 서울역광장에서 열리는 촛불집회에는 예정대로 참석하기로 결정했지만 민주당은 이날 모든 정당 연설 순서를 없애고 진보당 사건과 관련한 피켓이 등장하지 않도록 주최 측에 요청하는 등 진보당과의 적극적인 거리두기에 나섰다. 압수수색을 당한건 진보당인데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는건 민주당이다. 언제부터인가 종북에 '종'자만 꺼내도 놀란 토끼눈을 뜨는 민주당이다. 저들은 뭘 잘못한 걸까?

 

진실이냐 공작이냐

 

국정원이 칼을 빼든 지금 우리는 두 가지 가정 사이에서 혼란스럽다. '진실인가 공작인가' 때로는 이런 혼란이 사람(집단)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내리는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이 사건에 대한 입장에서 진실과 공작, 둘 중 어디에 방점을 찍는가를 보면 그 사람의 이성과 가치관이 보인다. 어제 청와대와 민주당의 논평 요약이다.

 

청와대 "사실이라면 경악"

민주당 "사실이라면 충격" 

 

어째 말 본새가 비슷하다. 민주당의 논평은 내일 아침 조중동에 실릴 머릿기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두 논평에서 읽혀지는 공통점은 '진실'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사실이다. 청와대와 민주당은 공히 '사실이라면'이라는 가정에 방점을 찍고 있다. 만약 민주당이 국정원의 '공작'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면 "용납할 수 없는 충격적 사건"이나 "국기문란 사건"같은 공격적인 표현을 거침없이 사용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민주당은 국정원의 노림수에 정확히 호응했거나 그 이상의 리액션을 보여주고 있다. 

 

궁지에 몰린 국정원의 국면전환용 카드라는 것이 이번 수사를 바라보는 합리적 중론이다. '내란예비음모죄', '변장도주', '전신전화국 폭파지시' 하루 사이 무성영화시대에나 쓰였을 법한 말들이 지면을 뒤덮었다. 저런 민망한 단어들을 담담하게 내뱉어대는 앵커의 모습에서 아찔함을 느낀다. 이정도 요란이라면 이석기 의원의 집 지하실에서 탱크 몇 대라도 발견해야 본전이다. 일반인의 상식은 말할 것도 없고 주체사상의 대부였던 김영환 씨의 눈에도 "이건 말이 안돼는 얘기"란다. 이석기 의원이 변장을 한 채 도주했다는 둥 진보당 현역의원들이 괴단체에 소속된 지하조직원이라는 둥 블록버스터급 괴담이 퍼져나간다. 이런 황당무계한 주장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라면 인지사고능력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해야 한다.    

 

이번 국정원수사에 대한 의구심은 단지 시기상의 문제만이 아니다. 정보기관의 용공조작의 흔적을 찾기 위해 조봉암 사건이나 인혁당 사건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없다. 불과 일주일 전 '화교남매 간첩 조작사건'이 국정원의 치졸한 용공조작이었음이 법정에서 밝혀졌다. 청문회장에 나와 "종북세력에게 댓글좀 달게 해달라"던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그의 주장을 옹호하던 새누리당의 모습도 생생히 기억한다. 권력의 중심부 곳곳에서 발견되는 매카시즘은 이나라의 비참한 현실이다. 여러가지 정치적 환경이나 정국의 흐름으로 볼때 이석기-진보당 사건 역시 그런 성격의 것일지 모른다는 추론은 합리적 의심이다. 검찰이 아무런 증거를 공개하지 않았고 당사자들이 혐의를 극구 부인하고 있는 상황이다. 만약 수사결과 혐의가 입증되지 못한다면 민주당은 저 말을 어떻게 주워담을 작정인가?

 

진보당의 혐의를 감싸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어찌되었든 국정원의 '합법적인' 수사를 지켜봐야 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렇다해도 민주당은 이시점에서 굳이 불필요한 가정법으로 광장의 파트너를 곤란하게 할 이유는 없었다. 게다가 "용납할 수 없는 충격적 사건", "국기문란 사건"같은 공격적인 언사를 사용한 것은 진보당과의 거리두기를 위한 다분히 의도된 표현이다. 비겁하며 현명하지도 못하다. 거리에서 국정원의 '비정상성'과 싸우고 있는 민주당이 그들의 비상식적인 주장을 그대로 받아 쓴다. 이게 정상인가?

 

<지난주 무죄로 판결난 화교남매 간첩 조작사건>

 

종북몰이에 대처하는 방법

 

민주당의 발빠른 거리두기가 국정원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장외투쟁에 찬물을 끼얹을까 걱정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촛불의 향배보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수권정당으로서 민주당의 능력이다. '종북세력이 실제하는가?' 혹은 '그것이 실존하는 위협인가?'라는 의문과는 별개로 '부당한 종북몰이에 어떻게 대처하는가'는 민주당에게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문제다. 이것에 대처하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1) 반대하거나

2) 회피하거나

3) 동참하거나.

 

민주당이 택한 '거리두기'는 2번과 3번에 모두 해당된다. 선택할 수 있는 최악의 수다. 셈에 능한 정치공학자들은 민주당의 거리두기를 현명한 선택이라 말할지도 모르겠다. 당장 지지율 계산기를 두드려보면 이득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종북프레임 공격에 동조한 결과는 반드시 민주당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는 사실도 계산에 넣어야 한다. 

 

실제로 새누리당은 공공연하게 민주당 의원들에게까지 종북의혹을 제기해왔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지난 대선후보 TV토론이다. 당시 박근혜 후보는 문재인 후보에게 전교조와의 '특별한 관계'를 집요하게 추궁하며 민주당을 통째로 종북프레임에 가두려 했다. 문재인 후보는 꽤나 영민하게 대처했지만 사실관계나 의혹의 비합리성과는 무관하게 의혹제기 자체로 적지 않은 타격을 입어야했다. 종북프레임은 거리두기로 극복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민주당의 "우린 그런 애들하고 안친해요"전략이 한심한 이유다.

 

민주당의 이중잣대

 

민주당은 그동안 새누리당의 종북공세에 대해 이중적인 전략을 취해왔다. 자당의원에 대한 종북공세에 대해서는 "낡은 매카시즘"이라며 반발하면서도, 진보정당들에 대한 종북공세에 대해서는 유보적이거나 소극적인 입장을 취해왔다. 민주당이 이런 태도를 보여온 것은 진보정당들을 야권의 '곁가지'쯤으로 여겨왔기 때문이다. 여기서 민주당이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 이제 야권지지자들이 민주당 이외의 대안에 익숙하다는 사실이다. 민주당의 인식은 야권에 민주당 이외의 마땅한 선택지가 없었던 20세기에 머물러 있다. 지난 대선은 더이상 거대 야당 혼자의 힘만으론 정권창출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줬다. 이제 민주당은 야권의 합리적 분화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민주당은 국정원을 비롯한 집권세력의 종북놀음에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 "사실이라면 충격" 따위의 격한 반응을 쏟아내기 전에, 국정원의 의심스러운 행보를 견제하는 것이 제1야당으로서의 이성적 태도다. 아무것도 밝혀진 것이 없는 지금 공상과학소설같은 국정원의 주장을 받아 광장의 파트너를 멀리하려는 것은 바보같다. 이것은 '종북세력과 손을 잡아라'가 아닌 '정략적인 종북몰이에 단호하게 대처하라'는 주문이다.   

 

저들을 색깔론의 유혹에 빠지게 하는 것은 어리석은 민주당의 존재다. 약팍한 종북몰이에 속수무책으로 흔들리는 제1야당이 있는데 집권세력이 색깔론의 유혹을 느끼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민주당은 다른 정치세력을 향한 색깔론을 방치하거나 동조한다면 그 칼날이 고스란히 자신들을 향해 돌아올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집권할 의지가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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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다람쥐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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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8.30 08:25 신고

    민주당의 기회주의적인 속성... 찬두번이라야 말하지요.
    상식이하의 짓을 하는 국정원과 선긋기하는 민주당.. 참 꼴볼견입니다.

  2. 2013.08.30 10:25 신고

    민주당이 우리나라 절반의 야성향 민의를 대변하지 못하는 일례일 뿐입니다.
    그동안의 기대가 너무 컸나 봐요.

  3. 2013.08.30 22:32 신고

    한 마디의 말을 뒤집는데는 열마디 아니 그 이상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 만큼 정치에 있어서 말 한디가 든든한 공격성 방어가 되어 주느냐 방어에 급급한 방어용이 되느냐의 방향을 결정해 준다. 새누리당은 항상 쪼개기 전법을 쓴다.전형적인 살라미 게릴라 전술이다. 이에 거대 사기꾼 여당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민주당 또한 이 전법을 쓰면서 다른 야권과 분열이 되어서는 결코 안된다. 국정원의 쓰리쿠션 치기식 전법에 놀아나서는 더더욱 안된다. 민주당은 어정쩡한 자리를 찿는데 신경쓰지말고 , 차라리 준비되지 않았더라도 끈기있는 공격을 해라.
    국정은 2수구를 먼저쳤지만 1수구가 지례 겁먹은 모양새다.

  4. 2013.08.31 00:47 신고

    민주당은 이석기하고 선을 그어야됩니다 일단 진보당이 당당하면 영장청구되기전에 당당하게 나가서 밝히면되는겁니다 오히려 이번기회에 다신 종북소리 못하게 쇠못박을수있는기회구여 민주당이 이석기편들고 합세하면 오히려 역풍붑니다 민주당은 철저하게 선긋는게 맞습니다

  5. 2013.09.03 11:24 신고

    괜히 꿋꿋이 나갔다가는 '민주당도 종북' 이라고 국정원이 내란죄 적용할까봐 겁먹은 거죠....
    김대중씨나 노무현씨가 돌아가신 것이 안타깝군요.. 지하에서 통곡을 하고 계시겠죠.....
    민주화를 이루었는데 유신으로 회귀하여 내란죄가 적용되고 야당인 민주당은 꼬리내리고...
    잘 나가는 한국이네요... ㅎㅎㅎ ㅉㅉㅉ

  6. 2013.09.05 09:54 신고

    출장이나 휴가 중이신가요? 최근 글이 없으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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