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들은 이걸 볼 때마다 공포를 느껴야했다>

 

1950년대 남미의 어떤 군사정권은 반정부인사들을 잡아들여 여느 독재정권처럼 고문을 가했다. 고문에 사용한 도구중에는 특이하게도 콜라병도 있었다. 그들은 피해자들의 항문과 성기를 콜라병으로 고문하며 인간성을 파괴했다. 왜 하필 콜라병이었을까?

 

그들이 콜라병을 고문도구로 택했던 이유는 이것이 갖는 '흔함' 때문이었다. 콜라병은 길가에 돌부리처럼 흔한 물건이다. 어딜가나 쉽게 눈에 띄는 이 물건은 고문의 기억을 잊혀진 공포에서 일상의 무력감으로 전이시켰다. 피해자들은 평생 콜라병을 볼 때마다 그날의 공포를 떠올려야했고, 뼛속 깊은 무력감을 느껴야만 했다. 콜라병은 그렇게 ‘효과적인’ 고문도구였다.

 

그의 역할은 무엇일까?

 

김기춘 옹이 청와대 비서실장에 발탁됐다. 그를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이 반민주의 상징과도 같은 그의 등용에 반발하고 있다. 이제 청와대에서 공안검사출신들을 찾는건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김기춘만큼 상징적인 인물은 드물다. 40년전 유신을 선포했던 대통령의 딸이 유신헌법의 산파를 부활시켰다. 이것이 유신의 부활처럼 느껴지는 건 당연하다.  

 

그는 부활했을 뿐만 아니라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배치'됐다. 청와대 비서실장은 정치인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요직중의 요직으로 언론의 노출도가 가장 높은 자리이기도 하다. 이제 TV를 켜면 어느 채널에서나 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구시대의 퇴물이었던 정치인이 하루아침에 일상을 습격했다. 그는 이제 콜라병만큼이나 쉽게 눈에 띄는 곳에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장고 끝에 임명한 그의 역할에 대해 해석이 분분하다. 어떤 사람은 탄핵대비용이라고도 하고, 어떤 사람은 촛불방탄용이라고도 한다. 그런 것들보다 더 중요한 역할이 한가지 있다. 사람들이 김기춘의 부활을 바라보며 느끼는 감정은 분노와 무력감이다. 역사의 시계가 거꾸로 돌아가는 것을 뻔히 보면서도 어찌할 수 없다. 한없이 무력하다.  

 

김기춘은 콜라병이다. 유신은 그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에게 기나긴 고문이었다. 유신의 엄혹함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김기춘의 존재는 콜라병과 같다. 유신의 피해자들이 그를 보면서 느끼는 무력감은 고문피해자들이 눈에 잘 띄는 곳에 ‘배치’된 콜라병을 볼 때마다 느꼈던 감정과 유사하다. 그의 '임무'는 콜라병처럼 자주 발견되는 곳에 배치돼 적의 일상에서 무력감을 전파하는 것이다.

 

 

진짜 기억해야 할 것

 

김기춘이란 이름에서 떠오르는 것은 크게 두 가지다. 유신헌법과 초원복집사건, 이것들을 관통하는 것은 권력의 무소불위(無所不爲)함이다. 그는 권력이라는 칼을 어떻게 휘둘러야하는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인물이다. 국정조사 파국과 민주당의 장외투쟁으로 한껏 달아오른 정국에서 이런 권력남용의 대가가 대통령의 곁에 배치됐다.    

 

대통령이 신임 비서실장을 임명하자 사람들의 관심은 김기춘이란 사람이 누구인지, 초원복집사건이 무엇인지에 쏠렸다. 초원복집사건에서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가 남이가'따위의 발언이 아닌, 비극적인 사건의 결말이다. 가해자-공모자 전원 석방, 제보자(기자) 전원구속이라는 기막힌 결말말이다.

당시 법원에서 받아들여졌던 '불법도청사건'이라는 프레임은 지금 새누리당과 청와대가 주장하는 '불법감금사건'과 다르지 않다. 우리는 초원복집사건을 통해 권력의 야만을 기억하려하지만, 저들은 같은 것을 통해 권력의 무소불위를 기억하려 한다.
이런 점에서 대통령에게 김기춘의 등용은 적에게 무력감을 안기는 한편 아군의 사기진작을 도모하는 양수겸장의 카드다. 훌륭한 대통령은 아니나, 만만하게 볼 대통령도 아니다.   

  

콜라병의 공포와 가장 닮아있는 인물이 한명 있다. 바로 박근혜 대통령이다. 유신의 고통을 온몸으로 체감했던 사람들에게 박근혜 대통령의 존재는 어디에서나 눈에 띄는 거대한 콜라병이다. 유신은 40년전의 추억이지만, 2013년 대한민국은 여전히 유신호랑이들이 지배한다. 우리는 이것이 얼마나 비정상적인 상황인지 환기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이 김기춘 발탁을 통해 세상에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이것일지 모른다.

 

"세상은 그때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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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8.09 13:45 신고

    세상 일을 모두 과거의 기억으로만 해석하면 어려움, 자가당착에 빠지게 된다고 봅니다. 자유로운 선거를 통하여
    뽑은 대통령을 유신시대 간접선거로 뽑은 대통령으로 비하하는 것은 별로 좋지 않다고 봅니다.

    • 2013.08.17 14:38 신고

      과거의 기억? 역사를 제대로 알고 현실을 보자는 건데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신지? 바.보.아.니.세.요?

    • 2013.09.03 11:38 신고

      자유로운 부정선거로 뽑은..... 말은 지대로(제대로) 합니다(합시다)

  2. 2013.08.21 22:04 신고

    김기춘과 콜라병. 기가막힌 비유네요. 좋은글 잘보고 갑니다.

<중2병 환자의 모습>

 

‘중2병’이란 말이 있다. 자기도취와 허세에 빠진 미성숙한 인격체들을 일컫는 은어다. 1999년 일본의 모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처음 등장한 ‘중2병’이란 말은 중학교 2학년 나이 또래의 사춘기 청소년들이 흔히 겪는 심리적 상태를 빗댄 신조어로, 자아형성 과정에서 착각과 허세에 빠진 사람을 비꼬는 말이다.   

 

중2병의 흔한 증상은 자만심과 우월감, 우울증 등이 있지만 가장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증상은 ‘허세’다. 이 병에 걸린 사람들은 시크한 척하면서도 남들의 시선을 과도하게 의식해 과장된 행동을 하며, 주변의 이목을 의식한 무의미한 낙서를 즐긴다.

 

 

어제 박근혜 대통령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휴가지에서 촬영한 사진들을 올렸다. 대통령은 휴가를 제대로 즐기고 있는 듯하다. 사진속 풍경은 여유가 넘쳐 흐르고 한가하며 평화롭다. 사진속의 세상은 전운이 감돌고 있는 여의도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별세계다.

 

대통령의 페이스북에 휴가사진이 올라오자 지상파 3사와 주류 언론들은 기다렸다는 듯 이소식을 경쟁적으로 보도했다. 어제 한국의 주류 언론들은 사진속 배경인 저도를 비롯해 대통령의 헤어스타일과 썬그라스 같은 신변잡기에까지 깨알같은 관심을 보였다. 국정조사 따위는 요란한 대통령의 휴가소식 앞에서 단신취급도 받지 못했다. 이날 한국 언론들이 보여준 태도는 대통령의 소식을 전하는 주류언론의 태도라기보다는 여왕의 가십을 전하는 영국 타블로이드지의 그것에 가까워 보였다.  

 

설정이 심하게 촌스럽긴 하지만, 사진 자체의 퀄리티는 훌륭하다. 아무리 봐도 전문 사진기사의 솜씨다. 경호상의 이유라며 청와대에 함구령까지 내리고 비공개로 떠난 휴가지에 사진기사라도 대동했나보다. 

 

대통령은 페이스북에 "복잡하고 힘든 일상을 떠나 마음을 식히고 자연과 어우러진 백사장을 걸으며"라며 홀가분한 휴가의 느낌을 전했지만 과도하게 설정된 사진들에서는 홀가분함보다는 '기획휴가'같은 냄새가 난다. 사진에서 느껴지는 또 한가지 냄새는 진한 '중2병'의 증상이다.  

 

<70년대 잡지사진을 연상케하는>

 

<누구랑 이야기 하시나요?>

 

사진을 다운받으러 대통령의 페이스북에 들어갔다가 메인에 걸려있는 사진을 보고 기겁했다. 그곳에는 배경을 태극기가 아닌 인공기나 전범기, 하겐크로이츠로 바꿔야 어울릴 법한 사진이 걸려있었다.

 

<박근혜 대통령 페이스북 프로필 사진>

 

대체 왜 한국의 대통령이 북한군을 떠올리게하는 옷을 입고 태극기 앞에서 거수경례를 하고 있는 걸까? 사진의 가운데에는 '희망의 새시대'라는 글씨가 쓰여 있지만, 저 사진을 보고 먼저 떠오르는 감정은 '희망'과는 거리가 먼 호전성과 비장함, 긴장감, 딱딱함, 이상함, 어색함 같은 것들이다. 이런걸 페이스북 대문에 걸어논 대통령의 '센스'도 기가 막힌다. 외국인들이 대통령의 페이스북을 방문한다면 남북한을 헷갈릴 것도 같다.

 

중2 또래들의 눈에는 어떨지 몰라도 내눈에는 저게 멋져 보이지 않는다. 극단적이고 비장하며 감성을 자극하는 군국주의 코드는 중2병 환자들의 단골 레파토리다. 실제로 하겐크로이츠와 나치경례는 서양의 중2병 환자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있는 아이템이다.  

 

<대략 이런 느낌>

 

대통령의 휴가사진들과 저 괴상한 경례사진 사이에는 공통점이 발견된다. 타인의 시선을 과도하게 의식한 설정샷이라는 점이다. 70년대 잡지사진을 떠올리게 하는 휴가사진이나, 민간인인 대통령이 '군복'을 입고 거수경례를 하는 사진 모두 어딘가 억지스럽다. 억지스러움과 극단성, 얄팍한 감성코드는 전형적인 중2병 환자의 증상들이다.  

 

<중증 중2병 환자들의 모습>

 

중2병은 실제 치료가 필요한 의학적 질병이나 정신질환이 아닌, 일종의 사회학적 은어다. 이 은어가 갖는 본질은 ‘한심함’에 있다. 이 병은 억지스러운 허세에 둘러쌓인 자신의 모습이 타인의 눈에 멋져 보일거라 생각하는 착각에서 '발병'한다. 대부분의 중2병 환자들은 나이가 들면서 정신적인 성숙이 이루어지면 자연스럽게 치유된다. 그러나 환갑이 넘은 나이에 중2병에 걸려있는 사례는 흔치 않다. 대통령의 '자연치유'를 장담하기 어려운 이유다.

 

다음은 어떤 대통령이 임기중 휴가지에서 찍었던 사진이다.

 

"신난다"

 

"어이쿠야"

 

주인공이 멋지지도, 배경이 예쁘지도 않다. '보통 사람들'이 휴가지에서 찍었을 법한 사진이다. 풀밭위에서 몸이 뒤집어진 굴욕적인 모습도 스스럼없이 공개한다. 자연스럽고 친근하다. 여기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휴가사진에서는 단 한명도 찾아볼 수 없는 '행인'들의 모습도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설정샷과 스냅샷의 차이이며 가식과 소탈함의 차이, 가짜와 진짜의 차이다.

  

'자연상태'의 인간 박근혜의 모습이 무엇이길래 자꾸 설정과 연출에 기대는걸까? 대중이 기억하는 인간 박근혜의 모습은 감자를 사면서 냄새를 맡는 모습이나, 7만원어치 생선을 사고 8천원을 건넨 뒤 태연히 돌아서는 모습이다. 유난히 세심한 연출이 필요한 대통령이라는 점에는 공감한다. 그런데, 설정이 잘못됐다. 의도가 뻔히 보이는 설정은 이미 실패한 연출이다.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아온 대통령에게 '보통사람'의 소탈한 면모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지 모른다. 그러나 대통령은 연예인이 아니다. 박제된 대통령의 모습에서 대중이 이질감을 느끼는건 당연하다. 껍데기뿐인 대통령이 다스리는 나라라면 그 나라의 국민들도, 대통령 자신도 너무 불행하지 않은가. 억지설정에 박제되지 않은, 대통령의 '진짜 모습'이 보고싶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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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8.01 11:00 신고

    정말 정확한 진단이십니다..근데 대다수 국민들은 그네의 인간적인 본래의 모습은 알고싶지도 보고싶지도 않다는거죠
    자기만족의대가로 너무 많은 국민들이 물심양면으로 고통받고 있는데 정신병자처럼 자기추억의 코스프레를 하고있는게 역겹습니다

  2. 2013.08.01 13:26 신고

    제가 느낀것과 비슷헌걸 느끼셨내요.
    혼자서 모랫사장에 낙서 개수작하고.. 먼곳보는 설정샷에.. 정말 국격 떨어져서 많이 쪽팔립니다.
    옷은 뭘그리 갈아입어대는지.. 세탁은 해서 다시 입기나 하는지도 모르겠고..

  3. 2013.08.01 19:17 신고

    공주는 외로워가 배경음악으로 어울릴 듯..

  4. 2013.08.01 21:25 신고

    저도 노무현대통령을 좋아합니다만, 다람쥐님의 글은 좀 비약적인 것 같습니다.
    실상 박근혜 대통령의도가 어떻든 너무 억지스럽게 내려가네요. 설정은 이를 전체적으로 코디한 자의 실패인 것이지, 그렇다고 박근혜대통령의 실제적 마음을 모르는 상황에서 나치와 비교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실상 보수들의 보스역활이니 보수파들이 좋아하는 설정을 취하는 것은 자연스러울 수 있는일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그자체의 스타일인거구요.
    두 대통령의 기반이 다른 상황에서 까기위한 글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렇기때문에 일베충들은 더 말도 안통하게 노무현대통령을 까는 것이지요.
    정치적 비평을 하고자 하신다면, 글은 주관적일 수 있으나 객관적 판단처럼 포장해서는 안됩니다.

    • 2013.08.01 22:06 신고

      저 사진을 보고도 나치를 떠올리지 못했다니 감수성에 문제가 있어보이네요.

    • 당선범 척결 수정/삭제> 댓글주소
      2013.08.03 09:14 신고

      장물도둑녀ㄴ에 부정선거 당선범 밥근혜를

      대통령이라 단정하는것부터 쪌어요.

      지금 누가봐도 저녀ㄴ이 국정조사를 방해하기 위한 공작으로 다 아는 상식적인 문제인바, 마치 노통 지지자인양

      은근히 , 장물녀ㄴ 편드는 꼬락서니가 더 재밌네요. 호호호호

    • 2013.08.14 17:14 신고

      글쎄요. 요즘 닭그네 와 아베를 보면 나찌가 떠 오릅니다.
      아베 정권은 노골적으로 나찌의 헌법 개정 방식을 도입하려고 했죠.
      닭그네는 언론 장악에 성공하였고......

      어느 분은 감수성을 지적하셨지만
      내 생각엔 역사 지식 부재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나찌가 2차 대전의 주범 정도로만 알고 있는 사람들이 예상외로 많아요.

    • 2013.08.23 01:59 신고

      데니스님은 저 사진 보면 모든걸 자기위주로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모습이 안보이나보네요? 저한테만 보이는지는 모르겠지만 주위에 사람이 없어보입니다.

  5. 2013.08.02 01:55 신고

    중2병이라기보다 공주병인것 같은데요..
    주변에서 하두 공주공주하다보니 실제로 자기가 공주라고 생각하고 사는듯..
    .
    그런데 더 문제는 그런 공주를 공주로 떠받들고 사는 세대가 있다는 점이죠..
    그러면 공주병은 영영 못고치게 되는데..쩝..
    저 나이에 참 공주병도 쉽지 않은데..여러모도 대단한듯..

  6. 2013.08.02 03:05 신고

    공주병 말기...사람의 태생은 저렇게 나이를 먹어도 변하지 않나 봅니다.. 불쌍한 여인이여, 그대 이름은 수첩.

  7. 2013.09.14 14:00 신고

    글을 잘 쓰시네요. 동시에 주제 자체에 대한 인사이트도 훌륭하시고요. 잘 봤습니다.

  8. 2013.11.18 21:51 신고

    비약적인 면이 없지 않아 있지만 확실히 공감이 가는 부분이 있네요

    포착해내신 센스가 놀라울 따름.

  9. 2014.03.01 13:35 신고

    중2병 증상중의 하나가 봉건주의 병이지. '내 마음 속의 대통령'
    왜? 그냥 총통으로 올리지? 아니 황제로 올리지?
    노무현도 그냥 개인이고 박근혜도 그냥 개인이다. 아직도 좆흔들면서 그때가 좋았지라면 곤란하지!
    각기자신의 소명에 따라 자신의 길을 가는데 누가 뭐라고 찝적댄단 말인가?

    그건단지 박근례가 무조건 밉다라는 중2병 증상 아닌가?

  10. 2015.08.24 13:26 신고

    그래서 님이 좋아하는 저 대통령은 평생을 서민을 위하는 정치인으로 대통령 까지 올랐지만... 돈욕심을 못버리고 뇌물받고 자살해 버렸지요...

 

<최저임금받고 4시간씩 일해보실라우?>

숫자에 매몰된 노동의 본질

 

박근혜 대통령은 27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고용률 70% 달성과 일자리를 많이 만들기 위해 시간제 일자리가 중요하다"고 이야기하고 ‘시간제 일자리’란 말이 편견을 만든다며 이를 대체할 다른 이름을 공모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대통령의 취향대로라면 조만간 ‘미래창조과학 일자리’같은 말이 만들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1977년 광화문 네거리에는 ‘경축 100억불 수출의 날’이라는 표지판이 내걸렸습니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드디어 우리는 수출 100억불을 돌파했습니다”라는 박정희 대통령의 목소리가 TV전파를 타자 온 국민이 마치 자신이 부자라도 된 듯 환호했습니다. 당시 많은 국민들은 박정희 대통령이 말했던 ‘우리’라는 표현에 자신들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을 미화하는 근거로 가장 흔하게 사용되는 것이 국민소득, 수출액 같은 거시경제지표들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저런 숫자들의 증가를 모아 ‘한강의 기적’이라 명명했지만, 기적이라 불릴 정도로 대단한 경제발전아래서 전태일이라는 청년이 왜 자신의 몸에 불을 붙여야 했는지, YH여공들은 왜 목숨을 걸고 신민당사를 점거해야 했는지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전태일과 YH여공들, 저임금 고강도 노동에 시달리던 전국의 수많은 노동자들에게는 수출이 1억불이든, 100억불이든 그런건 아무 의미없는 숫자일 뿐이었습니다. 그시절의 화려한 거시경제지표는 저임금 노동착취를 은폐하는 기만술로 활용되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시간제 일자리를 늘려야 하는 이유가 자신의 공약이었던 “고용률 70%를 달성해야 하기 때문”이라며 '당당히' 밝혔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고용률 70%라는 숫자는 아버지의 수출 100억불과 같은 의미일지 모르겠습니다. 시간제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말’을 바꿔야 한다고 말하는 대통령의 노동감수성은 아버지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지도자가 숫자에 매몰되는 순간 노동자들은 부품이 되고, 노동의 본질은 사라집니다. 정규직 임금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시간제 일자리를 늘려 고용률 70%라는 숫자를 채우려는 박근혜 대통령의 욕심은 세계 최저수준의 임금과 최고수준의 노동시간으로 경제성장을 달성하려했던 아버지의 욕심과 다르지 않습니다. 

 

말이 문제인가?

 

시간제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 옳은 일인가에 관해 논쟁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것이 옳은 방향이라고 한다면 바꿔야 할 것은 '말'이 아닌 노동현실입니다. 똥을 '황금'이라 바꿔 부른다 해서 냄새가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한국의 시간제 근로자들 대부분이 최저임금을 받고 있는 비정규직이라는 사실이나, 열악한 사회안전망과 육아환경 같은 문제들은 '말'을 바꿔쓴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들이 아닙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시간제 일자리를 늘려야 할 근거로 선진국의 예를 들었습니다. 자국 시간제 근로자들의 엄혹한 현실을 외면한 채 근로환경이 전혀 다른 선진국의 장미빛 모델을 설파하는 것은 기만에 불과합니다. "낮은 임금에 장시간 일을 시킬 수 있는 비정규직이 있는데, 회사가 굳이 질 좋은 시간제 일자리를 만들겠느냐"는 민주당 은수미 의원의 지적 앞에 박 대통령의 조악한 탁상공론은 고개를 들기가 어렵습니다.

 

<시간강사법 폐지를 요구하는 집회>

솔선수범 바랍니다

 

이런 저런 앞뒤 안맞는 논리를 빼고 나면 박 대통령의 발언은 이렇게 정리됩니다.

 

"정규직이 없으면 시간제라도 늘려서 고용률 70%를 채워라"

 

박근혜 대통령의 주장은 IMF사태 이후 줄곧 '노동시장 유연화'를 외쳐온 재계의 주장과 일맥상통합니다. 고용시장이 유연해지면 기존의 일자리가 파편화되어 단순고용인구는 증가하게 됩니다. 이것이 현실화되면 사용자들은 인건비 지출이 줄어들고 대통령은 높은 고용률이라는 치적을 얻게 됩니다. '시간제 일자리를 늘려라'라는 '특명'은 대통령의 무리한 치적 욕심과 재계의 탐욕이 만나 빚어진 작품인 셈입니다.

 

어린나이에 청와대에서 퍼스트레이디생활을 마친 박근혜 대통령은 박정희 대통령이 피살된 다음 해 28세 나이로 영남대학교 이사장에 부임했고, 82년에는 육영재단 이사장을, 95년에는 정수장학회 이사장을 맡았습니다. 비정규직, 시간제 일자리 근처에도 가보지 않은 대통령이 그들의 노동환경을 잘 모르는 것은 당연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일국의 대통령으로서 이따른 해고 노동자들의 자살을 보고도, 각 대학에서 벌어지고 있는 시간강사들의 힘겨운 투쟁을 보고도 이나라 노동문제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했다면 본인의 심각한 노동감수성 결핍을 걱정해야 합니다.

 

많은 국민들이 시간제 일자리를 늘리자는 대통령의 주장에 공감을 못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의 주장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솔선수범하여 한국의 대통령을 시간제 일자리로 바꾸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 대한민국의 다른 시간제 근로자들과 동일하게 - 갑의 마음에 안들면 언제라도 해고당할 수 있는 환경에서 최저임금을 받고 하루 4시간만 근무하는 것입니다. 그러고도 본인의 주장처럼 '정규직 대통령'과의 차별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때 가서 '시간제 일자리를 늘려라'라는 지시를 내려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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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다람쥐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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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5.29 10:15 신고

    재계의 주장처럼 노동시장이 더 유연화된다면 국내노동시장은 아예 녹아 내릴 듯~
    대통령께서는 공부 좀 제대로 하고나고 말씀 좀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수첩도 좀 더 꼼꼼히 적으시고~

 

<대략 이런 화법>

 

대체 누구의 이야기인가

 

유체이탈(遺體離脫)이란 말 그대로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영화 속 심령술사들이나 사용할 법한 이 기이한 ‘도술’을 현실세계에서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이가 있으니 바로 대한민국의 박근혜 대통령입니다.

 

전문성을 보고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인물이 맡았으면 어떻겠냐 해서 절차를 밟았는데도 엉뚱한 결과가 나오고, 저 자신도 굉장히 실망스럽고 그런 인물이었나하는 생각이 든다. 불행하고 불미스러운 일도 있고 해서 앞으로 인사위원회도 더 다면적으로하고, 철저하게 검증하고, 제도적으로 보완해서 철저히 하도록 하겠다. -  15일 박근혜 대통령. 언론사 정치부장 초청 청와대 만찬 중

 

나라의 5년을 책임질 대통령의 기억력이 5개월을 넘기지 못하나 봅니다. 5개월전 온 나라가 반대했던 윤창중 대변인의 임명을 강행한 사람이 대통령 본인이었음을 모르는 이는 없습니다. 작년 12월 대통합, 대탕평인사를 예고했던 박 대통령은 그것들과는 가장 거리가 먼 인물을 청와대 대변인으로 임명했습니다.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던 인사들을 향해 '정치적 창녀', '더러운 장사치', '간교한 인간'이라 비난하고 야당을 지지한 48%의 국민들을 '국가 전복 세력', '반 대한민국 세력', '대한민국을 공산화시키려는 세력'이라 폄하했던 윤창중 전 대변인은 가장 대표적인 극우 폴리널리스트였습니다. 이런 비상식적인 인사에 대해 야당은 물론 여당 내에서 조차 반대여론이 비등했지만 대통령은 끝내 모르쇠로 일관하고 임명을 강행했습니다.

   

모두가 아는 것처럼 이번 윤창중 참사의 가장 큰 원인은 박근혜 대통령의 불통인사였습니다. 어제 대통령은 인사시스템의 제도적 보완을 이야기했지만, 임명권자인 대통령이 고집을 부리는 이상 어떤 인사시스템도 무용합니다. 박 대통령은 마치 누군가의 추천을 받아 자신은 잘 모르고 임명했다는 듯한 뉘앙스를 풍겼지만, 그런 드러나지 않은 '유령'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은 대통령으로서의 위신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집니다.

 

박 대통령은 어제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윤 대변인은 그리 속이 깊은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대변인으로서 그의 자질은 임명이전, 임명초기부터 많은 사람들로부터 질타를 받아왔습니다. 다음은 지난 1월 14일 있었던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의 브리핑 중 있었던 모 기자와의 대화입니다.

   

 기자 : 최대석 인수위원은 왜 사퇴했나요?

 

 윤 : 제가 26살 때 기자를 시작했습니다.

 

 기자 : 그러니까 최대석 인수위원은 왜 사퇴했나요?

 

 윤 : 그때가 대학교 4학년 이었습니다.

 

 기자 : 개인사는 됐구요, 질문에 답변을 하세요.

 

 윤 : 어디 소속입니까?

 

이 질의응답을 정상적인 대화로 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기자는 아주 정상적인 질문을 던졌지만 이에 답하는 윤창중 대변인의 태도는 코메디에 가깝습니다. 이 대화를 지켜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대변인의 자질을 의심하게 됩니다. 이것은 지난 5개월간 윤 대변인이 보여준 수많은 해프닝 중 하나입니다. 그는 지난 1월 기자실 해킹사건이 터지자 북한의 소행이라는 확인되지 않은 '유언비어'를 유포했다가 바로 말을 뒤짚는가 하면, 중요한 시기마다 '보도할 내용이 없다'며 자체 보도통제를 일삼아 기자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습니다.  

 

대변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말’입니다. 가장 선명한 언어를 구사해야 할 할 청와대 대변인이 저렇게 논점을 흐리는 화법으로 불신과 의혹을 키운다면 그의 자질은 이미 함량미달인 것입니다. 남들은 모두 간파하고 있었던 대변인의 됨됨이를 인사권자인 대통령 본인만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대통령만 몰랐던 이분의 실체>

유체이탈의 역사

 

영화나 소설 속에서는 유체이탈 후 영혼이 다시 돌아오는 경우가 많은데 박 대통령의 경우는 유체가 영영 합체하지 못하는 ‘유체분리’상태에 들어간 것 같습니다.

 

지난 5월 9일 박 대통령은 미 의회연설에서 "DMZ에 평화공원을 조성하겠다" 선언했습니다. 개성공단이 문닫은지 불과 5일 만에 나온 발언입니다. 개성공단을 파국으로 몰고간 당사자가 마치 강 건너 불구경하듯 장미빛 미래를 이야기한 것입니다. 유(遺)와 체(體)가 함께한다면 불가능한 현상입니다.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두고 청와대와 야당이 첨예하게 맞서던 지난 3월 박 대통령은 "정치에 묶여서 국민을 위한 정치가 실종돼 가고 있다. 과연 정치가 국민 입장에 서 있는지 돌아봐야 할 때"라며 책임회피성 대국민담화를 발표했습니다.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통과되지 못했던 것은 야당의 중재안을 거부하고 초지일관 자신의 초안을 고집했던 대통령의 몽니때문이었습니다.  

 

대통령이 보여준 유체이탈 화법의 정수는 지난 대선기간에 들고 나왔던 '박근혜로 정권교체'라는 구호였습니다. 지난 정권 내내 여당의 1인자로 군림해왔던 그녀가 돌연 여당의 반대편에 선 듯한 자세를 취한 것입니다. 박 대통령측은 이 요상한 '자세'로 순진한 유권자들을 현혹했지만, 얼마 뒤 국정원대선개입 사건의 전모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이&박이 사실상 '혼연일체'였음이 증명되었습니다.

 

8년 동안 10억이 넘는 보수를 지급받고 자신의 측근들을 이사장과 이사로 임명했던 정수장학회를 '나와는 무관한 일'이라며 발뺌했던 일이나, 아버지의 정치적 유산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그녀가 부친의 5.16, 유신과 거리두기를 했던 일 등 박 대통령의 유체이탈은 역사가 꽤나 깊습니다.  

  

하루빨리 '유체통일' 이루길

 

자신의 이야기를 남 이야기하듯 하는 사람은 멍청한 사람이거나 뻔뻔한 사람입니다. 둘 다 해당된다면 최악이겠죠. 대통령의 이야기를 모아보면 대한민국에는 마치 두 명의 대통령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한명은 일을 하고, 다른 한명은 그것을 부인합니다.

 

대통령 스스로도 책임정치가 되지 않는 상황에 정권차원의 책임정치가 이루어질리 만무합니다. 대통령의 유체이탈 상태를 계속 지켜볼 수 없는 이유입니다. 청와대는 심령술사를 고용해서라도 하루빨리 대통령의 '유체통일'을 이뤄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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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5.16 10:21 신고

    그 기사 보면서 말문이 턱 막히더군요. 내 실수, 내 불찰, 내 잘못...이런 말은 그 입에서 절대 나오지 않을 겁니다. 애비를 빼다박았습니다.

  2. 2013.05.16 12:26 신고

    촌철살인의 글 with wit
    늘 고맙게 생각합니다.

  3. 2013.05.16 13:04 신고

    본질을 볼 줄 모르는 사람이 대통령이라니...
    나라 앞날이 암담합니다.

  4. 2013.05.16 18:46 신고

    그러고보면, 직전의 그 누구와도 다른 듯 하면서 참 많이 닮았군요...

  5. 2013.05.17 02:17 신고

    윤 대변께서 비록 국민의 얼굴에 대변을 발랐지만 살신성인하셔서 박근혜 정권의 실상을 정확히 대변했지요.

  6. 2013.12.15 02:44 신고

    마지막 한줄이 인상적이네요ㅎㅎ 이글쓰신지 반년이 지났는데도 박근혜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네요. 오히려 더 증상이 심해지는듯

 

<최근 74%까지 지지율이 치솟은 아베 총리. 출처 블룸버그>

불안을 먹고 자라는 극우정치

 

지난 4월 16일 요미우리신문은 여론조사결과 아베 정권의 지지율이 74%까지 치솟았다고 발표했습니다. 작년 12월 출범당시 62%로 출발한 지지율이 아베 총리의 연이은 극우행보에 힘입어 무려 12%나 상승했습니다. 2차대전 패전 이후 일본에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극우정권이 들어선 것입니다.

 

어제 한국갤럽의 발표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은 취임 한달 째인 지난달 말 41%로 바닥을 찍은 이후 지난주 조사에서는 5% 상승한 46%를 기록했습니다. 한길리서치가 조사한 국정수행평가에서도 ‘잘한다’는 응답이 53.1%로 ‘잘못한다’는 응답 33.4%를 크게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국내정치에서 뚜렷한 호재가 없는 상황에서 이처럼 지지도가 올라간 원인은 북한 핵실험과 아베의 망언퍼레이드 같은 외부적 자극이 영향을 주었기 때문으로 해석됩니다.

 

정권초기 역대 최악의 지지율로 위기에 몰렸던 마가렛 대처는 포클랜드 전쟁을 벌인 후 지지율을 70%대까지 끌어올려 '철의 여인'시대를 열었습니다. 1928년 지지율이 3%도 안되던 나치당은 히틀러가 볼셰비키(공산당)에 대한 공포를 과장하여 설파하기 시작하자 지지율이 급상승했고, 5년 뒤 독일을 장악했습니다. 이처럼 대중의 불안을 야기시키는 안보이슈는 강한 국가주의를 발현시켜 지도자를 향한 안보결집효과(rally around the flag effect)를 가져옵니다.

 

지난해 여름 17%까지 떨어졌던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일본 의원들의 독도방문이 무산된 뒤 이루어진 '기습적인' 독도방문 이후 28%까지 급상승했습니다. 그저 무능한 대통령 정도로 인식되던 부시 대통령은 911테러 직후 무려 92%까지 지지율이 상승했습니다. 이처럼 '안보세일즈'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세계 우파지도자들에게 중요한 생존전략입니다.

 

북한발 안보위협이 안겨준 것들

 

지난해 12월 일본에는 패전 이후 가장 보수적인 우파정권이 들어섰고, 대한민국에는 87년 민주화이후 가장 보수적인 우파정권이 들어섰습니다. 이는 북한의 3대 세습권력 김정은체제의 등장과 맞물려 동북아시아에 곧 몰려올 격랑을 예고하는 것이었습니다.

 

<남∙북∙일 안보위협 트라이앵글. 표 by 다람쥐>

이 안보 트라이앵글을 게임이론으로 분석하면, 3자의 욕망이 서로 팽팽히 맞닿아 있는 내쉬균형(Nash equilibrium)상태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북한의 독재권력을 상수라고 볼 때, 북한발 안보위협에 영향을 받는 것은 한·일 양국 내부의 정치지형입니다. 김정은-아베-박근혜로 이어지는 3국의 안보카르텔 사이에서 한·일 양국의 평화세력은 설 곳이 없습니다.

 

불안과 공포가 엄습하면 대중은 낭만적으로 들리는 평화의 목소리보다는 강인하게 들리는 국가주의의 목소리에 더욱 쉽게 의탁합니다. 북핵에 대한 한·일 양국 국민들의 불안은 극우정권의 출범과 맞물려 강한 국가주의로 왜곡되어 표출되고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북측이 개성공단 패쇄를 언급하자 대화를 단절한 채 황당한 구출작전을 시사하더니, 25일에는 '협박성 대화제의'를 건냈다가 남북관계를 더욱 경색시켰습니다. 오매불망 북한의 도발을 기다리고 있던 일본의 극우세력에게 작년 북한의 핵실험은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좋은 빌미를 얻은 자민당, 유신회의 극우 정치인들은 내친김에 평화헌법개정까지 주장하며 12월 총선에서 대승을 거뒀습니다. 

 

개성공단을 대하는 박근혜 정부의 태도와 군비확장을 추진하는 아베 정부의 태도는 국가주의적 대북 강경책의 다른 버전입니다. 이런 대외 강경책을 펼친 양 정부의 지지율이 상승했다는 것은 불행하게도 그들의 안보세일즈가 성공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이 과정에서 개성공단조성을 주도했던 한국의 평화세력과, 대북 유화정책을 주도했던 일본의 평화세력은 그 목소리를 상실했습니다. 

 

관련글 - 아베의 야스쿠니와 박근혜의 5.16

     

 

북한이라는 '마르지 않는 셈'

 

지난 60여 년간 북한이라는 존재는 양국의 극우 국가주의자들에게 ‘마르지 않는 샘'이었습니다. 남한의 자유-공화-민정-민자-신한국-한나라-새누리당으로 이어지는 보수세력은 북한에 대한 대중의 불안과 공포를 이용하여 권력을 유지해왔고, 일본의 극우세력 자민당 역시 북한의 안보위협을 이용해 끊임없이 군비증강과 팽창주의를 주장하며 장기집권을 이어 왔습니다.

 

그런데, 민주정부 10년 햇볕정책의 결실로 세워진 개성공단은 양국의 우파들에게 이 샘이 마를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불러왔습니다. 실제로 개성공단 가동 이후 MB정권출범 이전까지 치러진 남한의 선거에서는 과거와 달리 '북풍'이 전혀 먹히지 않았고, 심지어 안보이슈에 가장 민감했던 휴전선 접경지역에서 조차 보수당이 패하는 역전현상까지 나타났습니다.

 

개성공단으로 상징되는 남북의 긴장완화는 일본의 우파세력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남북관계의 진전과 미·북간의 대화재개로 형성된 해빙무드는 2002년 9월 고이즈미 총리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평양 선언’을 이끌어 냈습니다. 이것은 곧 일본의 극우세력이 예전과 같은 북한발 안보효과를 누리지 못하게 됨을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개성공단의 존재로 정치적으로 손실을 입었던 세력이 누구였는지를 살펴보면 그것이 사라질 경우 누구에게 이득이 돌아갈지를 예상할 수 있습니다. 개성공단철수는 상시적 안보위협의 부활을 의미하며, 이는 곧 양국의 우파들이 장기간 득세할 수 있는 토양이 마련됨을 뜻합니다. 

 

<북한 핵실험을 규탄하는 보수단체의 시위. 출처 연합뉴스>

정략적인 안보세일즈 멈춰야

 

김정은-새누리당-자민당이라는 반 평화적인 세력들이 만들어내는 화약냄새가 동북아시아를 뒤덮고 있습니다. 북한의 핵은 미국을 대화테이블로 끌어들이려는 목적으로 개발됐지만, 그것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나라는 태평양 건너의 미국이 아닌 인접한 한국과 일본입니다. 양국 모두 북핵의 타겟인 미국의 우방이자, 북한의 적국입니다.

 

사실 한·일 양국의 외교정책이 북핵의 종속변수인 이상 한국과 일본의 노력으로 북핵을 어찌할 방도는 애초부터 없었습니다. 김정은체제가 하루빨리 연착륙하거나 미국이 대화에 나서기를 앉아서 바라는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러나 개성공단문제 정도는 핵문제와 달리 우리 외교의 통제범위 안에 둘 수 있었던 사안이었습니다. 정략적 의도가 아니라면 김정은의 벼랑끝 외교에 편승해 맞장구를 칠 이유는 없었던 것이죠. 박근혜 정부의 비상식적인 대응이 더욱 아쉬운 이유입니다.

 

김정은의 데뷔무대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조성된 한반도의 안보위기는 그리 오래가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설사 이것이 지속된다 하더라도, 21세기에 벌어지는 위험천만한 치킨게임에 양국의 국민들이 언제까지 지지를 보낼지도 의문입니다.

 

911테러 직후 지지율이 92%까지 치솟았던 부시 대통령은 테러정국이 끝난 뒤 결국 22%라는 역대 최악의 지지율로 물러났습니다. 부시의 초라한 퇴장은 돌발적인 안보위협 상황에서 형성된 지지율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말해줍니다. 눈앞의 지지율에 눈이 멀어 정략적인 안보세일즈를 지속한다면 부시의 초라한 퇴장이 박근혜-아베 정부의 미래가 될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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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4.29 12:49 신고

    그래서 북한과 한국의 보수는 공생관계라고 하나 봅니다.
    아무리 으르렁대지만 결국에는 서로가 서로에게 존재의 이유가 되니까요.

  2. 2015.08.21 20:56

    비밀댓글입니다

 

<양국의 우경화를 이끌고 있는 두 정치인>

현해탄을 사이에 둔 동지

 

박근혜 대통령은 어제 편집·보도국장 초청간담회에서 "(일본의) 우경화는 동북아시아 뿐 아니라 아시아 전반과의 관계를 어렵게 만들어 일본으로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습니다. 연일 계속되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망언에 대한 대응입니다. 어제 자리에 있던 많은 언론인들은 박 대통령의 말을 듣고 헛웃음을 지었을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대표적 우파 정치인인 박 대통령의 입에서 나온 '우경화'라는 말은 김정은의 입에서 나온 '빨갱이'만큼이나 어색합니다.  

 

지난 23일 일본의 현역 국회의원 168명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면서 동아시아 여러나라의 공분을 사고 있습니다. 이날 참배를 주도한 아베 신조 총리는 침략이라고 하는 것에 대한 정의는 학계에서도, 국제적으로도 정해져 있지 않으며 국가와 국가 간 관계에서는 어느 쪽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다"는 차원이 다른 수위의 망언으로 주변국들에게 충격을 안겨 줬습니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라는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죽은 전범들의 망령을 기리는 행위가 정상적으로 보일리 없습니다. 그러나 이웃나라 일본은 이같은 정치인들의 자극이 표로 연결되는 나라입니다. 90년대초 진보정치가 사실상 전멸한 이후 마땅한 견제장치조차 사라진 일본사회에서 우익정치인들에게 역사왜곡 망언은 손해볼 것 없는 꽃놀이패입니다.

 

정확이 이야기하면, 우경화라는 것은 우익정치인들에 의해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라 우경화된 국민들에 의해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자민당이나 새누리당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정당이 아니기 때문이죠. 집권한 우파정당이 자신감을 갖고 우경화를 시도할 수 있는 이유는 자신들에게 표를 준 우경화된 국민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정치인들의 망언은 지난 12월 총선에서 우익세력이 압승을 거둔 이후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같은 현상은 한국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경화의 공포는 현해탄 건너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박 대통령이 임명한 대한민국의 각료들은 하나같이 5.16을 쿠데타라 부르지 않았고, 몇일 전 공안검사출신의 법무장관은 "표현의 자유 제한할 수 있다"며 국민들을 겁박했습니다. 그들이 머리를 맞댄 첫 국무회의에서는 구애3회 처벌, 과다노출 처벌 같은 국민들의 기본권제한이 우려되는 법안이 나왔습니다. 이미 우파정권 5년을 보낸 대한민국에서도 박근혜 정부의 우경화는 그 농도가 다르게 느껴집니다.

 

 <기시 노부스케(왼쪽)와 박정희. 출처 한겨레>

'가업'으로 물려받은 우경화  

 

∙일 양국의 우경화는 모두 과거의 부정, 역사의 왜곡으로부터 시작됩니다.

 

(5.16은) 평가가 엇갈리니 역사의 평가에 맡겨야 한다 - 박근혜 대통령

 

(침략이란 표현은) 어느 쪽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다 - 아베 총리

 

이들의 유사한 화법은 양국의 우익세력이 과거를 대하는 태도를 잘 보여줍니다. 이미 명백하게 역사의 평가가 끝난 범죄에 대해 얄팍한 수사를 늘어 놓는 그들의 모습이 판에 박은 듯 닮아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5.16과 아베의 야스쿠니는 다르지 않습니다. 

 

아베 총리와 박근혜 대통령은 닮은 점이 참 많은 정치인입니다. 지난해 나란히 양국의 행정부 수반으로 선출된 두 사람은 양국의 대표적인 우파 정치인입니다. 잘 알려진 대로 아베 총리의 외조부는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A급 전범 기시 노부스케이며, 박근혜 대통령의 아버지는 5.16쿠데타의 주범 박정희 전 대통령입니다. 일본을 패망에 이르게 한 전범 기시 노부스케는 1957년 총리에 올랐고, 5.16으로 한국의 민주주의를 유린한 박정희는 1963년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이들은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났지만, 여전히 한일 양국에서 우익세력의 향수를 자극하는 보수의 아이콘으로 살아있습니다.

 

아베는 할아버지의 태평양전쟁과 동아시아 침탈을, 박근혜 대통령은 아버지의 5.16쿠데타와 유신체제를 옹호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우경화를 ‘가업’으로 물려받은 셈입니다. 선대 극우정치인들의 정치적 자산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직계자손들이 양국의 정치를 이끌고 있으니 한국와 일본의 정치적 우경화는 피할 수 없는 숙명입니다. 

 

배타적 민족주의의 강화

 

박근혜 대통령 입장에서 아베 내각의 과거사 왜곡은 선대의 업보이기도 합니다. 박정희 대통령과 기시 노부스케는 1965년 굴욕적인 한일협정체결의 주역입니다. 박정희 정권은 일제침탈에 대한 면죄부와 경제지원을 맞바꾼 한일협정을 국민들의 엄청난 반대속에서 날치기로 통과시켰고, 이로 인해 대한민국정부는 일본정부에 공식적으로 배상을 요구할 명분을 상실했습니다.

 

과거 박정희 대통령 시절 일본과 맺은 굴욕적인 한일협정은 지금까지도 일본 보수세력이 역사를 왜곡하는 빌미를 주고 있다. 한일 협정당시 일본과 박정희 대통령 사이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기시노부스케 전 총리는 현 아베 총리의 외조부로 박정희 대통령은 협정체결이후 기시에게 일등수교 훈장을 수여했었다. 선대 때 맺은 굴욕적 협정이 지금의 한일관계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만큼 역사를 바로세우기 위한 치열한 자기노력이 박 대통령에게 요구된다. - 4.23 민주통합당 정성호 수석대변인 

 

정성호 대변인은 일본의 우경화와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에게 결자해지의 자세를 요구하고 있지만, 박 대통령에게 그럴 의지가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그녀의 아버지가 통치하던 시대지금보다 반일감정이 훨씬 강했던 시절이었음에도 박정희 대통령은 일본의 극우 정치인들과 손을 잡고 공생관계를 유지했습니다.

 

인접국가와의 역사∙영토분쟁은 자국내에서 배타적 민족주의를 강화합니다. 이것은 아베 정권에게나 박근혜 정권에게나 결코 나쁜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적절한 시기'에 발생하는 양국 간의 긴장 관계는 궁지에 몰린 국내정치의 돌파구가 되기도 합니다. 지난해 일본의원들의 '독도방문 쇼'나 그이어 벌어진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방문은 그것들 간의 관계를 잘 보여줍니다. 이런 이유에서 평화헌법 개헌이나 독도 영유권과 관련한 일본 정치인들의 망언은 그것들의 실현가능성과 무관하게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  

 

<21년째 이어지고 있는 위안부할머니들의 수요집회>

 

양국의 우경화는 전체주의, 국가주의의 강화라는 점에서 그 속성이 같습니다. 일본은 외치(外治)에서, 한국은 내치(內治)에서 형태가 다르게 표출됐을 뿐이죠. 죽은 전범들의 무덤을 참배하는 것과 살아있는 국민들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것은 맥락이 다르지 않습니다. 

 

연일 보도되는 아베 총리의 망언에 분노하면서도 일본의 우경화를 규탄하기가 꺼려지는 이유는 내 허물을 모른 채 하고 남의 허물을 비난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 나라 우경화도 못막는 상황에서 남의 나라의 우경화를 어찌 막을까요? 이럴 때 쓰는 속담이 있습니다.   

 

 

-내 코가 석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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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전인수도 유분수

 

대한민국의 걸출한 가수 두 명이 몇 일 간의 터울을 두고 가요계에 컴백해 각자의 ‘현상’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이에 화답하듯 어제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정치인 두 명이 그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싸이 씨에게, 노원병 재보선에 출마한 안철수 후보는 조용필 씨에게 각각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훈훈한 모습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훈훈한 응원 뒤에는 어딘가 어색함이 있습니다.

 

20년 동안 한 번도 음악을 듣지 않았다던 안철수 후보는 갑자기 대중가수에게 '형님'이라 부르며 친근한 응원메시지를 보냈고박근혜 대통령은 싸이를 칭찬하면서 난데없이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창조경제를 설명했습니다. 두 장면 모두 썩 자연스러워 보이지는 않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어제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에 대한 업무보고에서 싸이의 '젠틀맨' 뮤직비디오를 창조경제와 연관시키며 일장연설을 늘어 놓았습니다.

 

고용없는 성장이라는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창조경제를 통한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우리 산업구조가 새롭게 변화하기 위해서는 산업의 기초체력에 대한 투자를 대폭 늘리고, 아울러 모든 산업의 부가가치를 결정짓는 핵심이 되는 소프트웨어와 콘텐츠 산업 육성에 더욱 매진할 필요가 있다.

 

싸이의 '젠틀맨' 뮤직비디오가 발표 80시간 만에 1억 뷰라는 대기록을 세웠다고 한다.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시건방 춤'에 대해 최초의 안무가에게 저작권료를 지불했다는 기사를 봤다. 그동안 관행으로는 춤을 살짝만 바꾸면 저작권료를 안 내도 되는 그런 환경에서 이렇게 남의 창의력을 인정하는 자세야말로 콘텐츠와 소프트웨어에 대한 모범적인 사례라고 생각한다.

 

드디어 며느리도 모른다던 창조경제의 참 뜻이 공개된 것입니다. 박 대통령이 생각하는 창조경제의 핵심은 놀랍게도 ‘저작권보호’였습니다. 그동안 창조경제의 뜻을 놓고 각자 온갖 화려한 해석들을 내놓았던 미창과부와 청와대 관계자들이 머쓱해지는 순간입니다.

 

저작권을 보호하자’ 혹은 '창의력을 인정하자'라는 평이한 말을 굳이 ‘창조경제’라는 해석이 난망한 말로 바꿔 쓸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저작권과 창조경제', '싸이와 창조경제' 이런 식의 아전인수식 해석이라면 이세상에 창조경제와 연관되지 않는 단어는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감자 하나도 제 손으로 사본 적이 없는 박 대통령의 눈에는 춤을 돈주고 산 싸이가 참 신기했나봅니다.

 

쉽게 설명좀 해주세요

 

일반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을 주변에 흔한 일상이나 현상과 연관시켜 설명하면 쉽게 이해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박 대통령 대한민국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법한 싸이현상을 창조경제를 설명하는데 이용하려 했지만 별 효과를 보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설명이 안되기 때문이죠. 저작권이나 창의력이 중요하다는 강조는 그저 듣기 좋은 '지당하신 말씀'일 뿐, 전혀 특별하거나 명확한 설명이 아닙니다. 오히려 싸이를 '곁들여' 설명하자 창조경제의 뜻은 더욱 오리무중에 빠져버렸습니다 

 

창조경제의 함정은 일반명사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려다 보니 빠지는 함정입니다. 싸이를 예로 들자 이런 함정이 더욱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싸이의 성공은 그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나 싫어하는 사람에게나 무척 흥미로운 사건임에 틀림없지만, 만약 100명의 평론가들에게 싸이현상에 대해 설명하라 한다면 100개의 다른 해석이 나올 것입니다. 그만큼 싸이현상이라는 것은 대단히 예외적이고 돌출적인 문화현상입니다. 이같이 특수한 사례를 일반화시켜 창조경제의 모델로 삼는다면 박 대통령은 창조경제의 다른모델을 하나도 보지 못한 채 임기를 마칠 가능성이 큽니다.

 

관련글 - 창조경제? 차라리 대동강 물을 팔아라

 

지난해 말 문화체육관광부는 '강남스타일'로 세계적인 대박을 터트린 가수 싸이에게 옥관문화훈장을, 영화 '피에타'로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사을 받은 김기덕 감독에게 은관문화훈장을 수여했습니다. 그들의 성취에 사실상 아무런 도움지 않았국가가 그들의 성공 앞에 갑자기 얼굴을 들이민 것입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문화예술정책의 핵심은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였고, 이명박 정부의 문화예술정책은 '성공한 문화현상에 숟가락 얹기'로 요약됩니다. MB정권은 성공한 스포츠스타와 영화감독, 연예인들에게 무수한 훈장을 나눠주고 각종 행사에 불러들여 생색내기에 열을 올렸습니다. 아직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정책에 대해 이야기하기엔 이르지만, 성공한 대중문화인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했던 어제 박 대통령의 태도를 볼 때 이명박 정부의 문화예술정책 기조를 그대로 이어가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고 김대중 대통령은 가수 서태지 씨의 앨법을 직접 사서 듣고 가사에 담긴 의미와 사용된 악기를 평가할 정도로 각별한 애정을 가졌지만, 단 한차례도 문화대통령 서태지를 정치적발언에 끼워넣거나 이용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 앞에서 박 대통령의 "싸이는 창조경제"발언은 한없이 초라해집니다.  

 

정치인의 민망한 숟가락 얹기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시선은 냉담합니다. 싸이가 박 대통령의 어제 발언을 들었다면 뭐라 말할까요?

 

<창조경제? 그게 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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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에 개입하는 국가?>

'민생'이라는 이름의 소일거리

 

지난 대선후보 TV토론 당시 박근혜 후보는 4대악 근절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그것들 중 하나로 불량식품을 언급했습니다. TV를 보고 있던 사람들은 의아한 표정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정말 우리가 생각하는 그 불량식품을 말하는 것인지 믿기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정말 그것이 '그것'이었는지는 다음날 확인보도가 나온 뒤에야 믿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 국민들에게 우리사회의 '4대악'을 꼽아보라고 했을때 그중 하나로 불량식품을 꼽는 사람이 몇명이나 있을까요? 정말 특이하면서도 가벼운 대통령의 국정인식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요즘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는 듯합니다. 4대악 근절, 경범죄처벌 강화와 같은 것들을 직접 지휘감독하는 박 대통령의 행보를 예쁘게 포장하면 ‘민생행보’가 됩니다. 유독 민생을 강조하는 정치인들의 면면을 가만히 살펴보면 한가지 공통점이 발견됩니다. 철학이 빈곤하다는 점입니다. 철학이 빈곤한 정치인은 다양한 가치들이 충돌하는 심오한 정책에 대해 접근할 능력이 떨어집니다. 그러다보니 누구나 쉽게 처리할 수 있는 1차원적인 업무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것이죠. 이와 비슷한 말로 ‘실용주의’라는 것도 있습니다. 유독 민생, 실용 같은 수사를 강조하는 정치인들이 누구인지 떠올려 보면 무능력과 철학의 부재라는 공통점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10번 찍어 안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속담은 이제 부자들의 전유물이 될 처지에 놓였습니다. 국가가 3회 이상 구애를 시도하는 사람에게 과태료를 부과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11일 경찰청 블로그 ‘폴인러브’는 지난달 22일부터 시행된 새로운 경범죄처벌법을 공개했습니다. 이에 따르면 이성이 명시적으로 거부했는데도 3회 이상 면회나 교제를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경우, 2회라도 상대방에게 공포나 불안감을 주는 명백한 사유가 있을 경우 스토킹으로 간주해 10만원 이하의 벌금이나 구류, 또는 과료형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국가가 이런 황당하고 우스꽝스러운 법안을 내놓자 시민들은 SNS를 통해 수많은 패러디와 조롱으로 응답했습니다.

 

 <무시무시한 '4대악' 불량식품>

국가의 불쾌한 참견

 

'피해자가 명시적으로 거절의사를 표현하지 않으면 당장 처벌되지 않는다'는 경찰측의 설명에 따르면 다행히 이 법에 의해 선량한 남녀가 처벌받을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일선 현장에 이 법을 만든 사람들만큼 센스없는 경찰관이 없다면 말이죠.

  

문제가 된 경범죄처벌법 개정안은 지난달 11일 열린 박근혜 정부의 첫번째 국무회의에서 처리된 결과물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 이후 첫 작품이 '과다노출 5만원', '구애3회 10만원'인 셈입니다. 분명 스토킹은 가벼운 범죄가 아니며, 처벌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도 이해는 갑니다. 화가 나는 것은 개인을 대하는 국가의 태도입니다. ‘구애 3회’라고 하는 문구의 촌스러움은 차치하더라도, 가장 사적인 영역인 구애의 횟수까지 구체적으로 명시한 '국가'의 꼼꼼함은 정말 혀를 내두르게 합니다. 국가는 '법으로 허용가능한' 고백의 횟수를 법조문에 기계적으로 명시함으로써 국가가 개인의 프라이버시에 아주 가까이 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지극히 사적인 영역인 연얘에까지 국가의 감시가 작동한다는 사실은 자유주의자로서 매우 불쾌한 일입니다. 이 법은 이 나라에서 사랑을 하는 사람을 모두 잠재적 범죄자로 만든 셈입니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범죄예방이라는 미명 아래 국가가 개인의 삶을 감시하는 암울한 세계를 보여줍니다. 처벌여부를 떠나 개인의 사적인 영역에 머무르는 국가의 '시선'은 그 자체로 폭력입니다. 자유주의국가의 시민은 국가와 타인의 부당한 감시와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가 있습니다. 국가가 개인에게 제공해야 할 공공서비스인 치안이 개인의 사적인 영역을 침범하는 폭력이 되어선 안됩니다.

 

'구애 3회'같은 민망한 법조항이 스토킹예방에 어떤 효과가 있을지 의문입니다. 개정된 법안에 따르면 '통행을 방해하거나 귀찮게 하는 구걸행위'도 처벌대상이며, '가려야 할 곳'을 내놓아 다른 사람에게 부끄러운 느낌이나 불쾌감을 준'행위도 처벌대상입니다. '귀찮게 하는 행위'가 무엇이며 '가려야 할 곳'은 또 어디인지 들여다볼수록 참 깝깝해지는 법안입니다.  

 

<출처 한겨레>

이런 것들에서 나타나는 국가의 태도는 시민을 향한 계도와 훈육입니다. 여기서 박 대통령이 지나간 '박통시대'의 답습을 꿈꾸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대통령이 이렇게 고루한 국가관으로 5년을 이끌어간다면 이 나라가 어디까지 촌스러워질런지 걱정이 큽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3년도의 대한민국이 계도와 훈육으로 통제되는 국가가 아니라는 사실을 하루빨리 깨달아야 합니다.

 

구걸행위와 과다노출, 불안감 조성 등 공공장소에서 질서유지는 시민사회의 성숙함으로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다. 타인에게 아무런 법익침해를 줄 위험이 없는 행위를 경찰력으로 단속하고 처벌하는 것은 전형적인 가부장적 국가역할을 전제로 한 것이다. 경범죄 처벌법의 가장 근원적 문제는 바로 이 지점에 있다. - 이호중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상정리는 이제 그만

 

취임이후 박근혜 대통령의 행보를 보면 마치 아무것도 할 줄 아는게 없는 신입사원이 하루 종일 책상정리만 하고 있는 모습처럼 보입니다. 뭔가 의욕을 가지고 열심히 하려해도 할 줄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보니 누구나 할 수 있는 ‘잡무’에 매달리게 되는 것이죠. 불량식품척결, 과다노출 5만원, 아청법 집중단속, 고백3회 처벌 같은 것들이 그런 잡무의 결과입니다. 물론 저런 것들이 중요하지 않은 일들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일국의 행정부 수반으로써 고도의 정치행위에 매달려야 할 대통령이 팔을 걷어 붙이고 추진한 일들이라 하기엔 너무나 사소하고 초라해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국가가 있어야 할 곳들>

 국가가 있어야할 곳

 

대통령의 꼼꼼함은 분명 미덕입니다. 문제는 그 꼼꼼함이 엉뚱한 곳에 쓰여지고 있다는데 있습니다. 할 줄 아는게 없는 신입사원의 가장 흔한 실수는 일의 우선순위를 분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갓 전입온 어리버리 이등병은 걸레를 먼저 빨아야 할지, 총을 먼저 닦아야 할지를 모릅니다. 우리 대통령님의 처지도 이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관련글 -  실종된 국가, ‘원세훈을 잡아라!’

 

대통령이 나서서 불량식품과 전쟁을 치를 만큼 대한민국은 평온하지 못합니다. 불량식품이 사람 몸에 축적돼 죽음에 이르려면 못해도 10년은 걸리겠지만, 이 나라에는 당장 목숨이 경각에 달려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은 150일 넘게 송전탑에 올라 있고, 100년 넘게 지역의 공공의료를 책임져왔던 진주의료원은 문닫을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요즘 국가정보기관을 선거에 개입시킨 대역죄인 원세훈을 찾아 헤매는 것은 국가가 아닌 기자들입니다. 모두 국가가 나타나야 할 곳에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입니다. 이렇게 시선을 조금만 돌려보면 '진짜 전쟁터'가 사방에 널려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국가는 자신이 있어 야할 곳과 비켜야 할 곳을 구분해야 합니다. 국가가 있어야 할 곳은 국민들의 연애현장이나 컴퓨터 하드디스크가 아닌, 치열한 갈등의 현장입니다. 사회적 갈등을 외면한 채 시민에 대한 계도와 훈육에만 몰두하는 국가는 무능하고 촌스러운 국가입니다. 촌티나는 대통령이 참 부끄러운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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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4.16 14:30 신고

    불량식품 얘기를 하길래 유해성분, 원산지 표시 위반한 식품, 유통기한 지난 식품 등을 얘기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문방구 단속을 한다고 하더라고요.

    손톱 밑 가시를 뽑겠다고 하더니 중병 걸린 환자의 병은 안고치고 정말로 가시만 뽑네요.

  2. 2013.04.16 18:33

    비밀댓글입니다

  3. 2013.04.16 21:58 신고

    물론 박 대통령이 철학이 극심할 정도로 빈곤한 인물이라는 건 저도 백 번 동감합니다. 하지만 구애 3회 처벌이라든지 구걸행위, 과다노출, 불안감 조성 등의 이른바 경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것 자체는 한 번 해 볼만 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한국 시민사회의 자정능력은 생각만큼 그리 대단하지 않습니다.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들의 의식수준과 비교해 보면 한국은 아직 한참 멀었습니다. 물론 이 법안들은 어디까지나 한시적으로 둬야겠죠. 시민사회의 자정능력이 선진국에 버금갈 수준으로 향상될 때까지 말입니다. 타인에게 혐오감을 주는 행위는 어떠한 경우라도 강력하게 처벌해야 합니다. 그래야 시민의식이 살죠.

현대국가의 군중동원은 주로 권력의 이미지를 만드는데 사용됩니다. 다음 사진을 봅시다.

 

                                                                  

손을 맞댄 두 사람은 활짝 웃고 있군요. 카메라 앵글안에 수십 명의 얼굴이 잡혔지만.. 극명한 표정의 대비가 칫한 느낌마저 들게 합니다. 군중들의 표정에서 느껴지는 정서는 ‘춥다’, ‘집에 가고 싶다’정도로 읽힙니다. 충분히 훈련되지 못한 동원이 빚어낸 참사로 보입니다. 

박근혜 당선자의 취임식을 3일 앞둔 어제 오전 9시 영등포 소방서 소속 소방관 100여명이 국회 앞마당에 집결했습니다. 이들 중에는 비번이었던 소방관 70여명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의 임무는 취임식을 위해 국회 앞마당에 깔아 놓은 4만 5천여개의 의자에 쌓인 눈을 치우는 것이었습니다. 오마이뉴스와 민주통합당 임수경 의원실이 이 '이상한 작전'에 대해 취재를 시작하자 소방관들은 제설작전 투입 두 시간만에 국회에서 철수했습니다. "안전과 관련된 것이니 소방관의 업무에 해당한다"고 둘러대던 고참 소방관의 말이 무색해지는 순간입니다. 그들은 왜 소방호스를 들어야 할 손으로 빗자루와 걸레를 들었던 것일까요? 행안부 차관의 변명처럼 단순한 '행정착오'였을까요? 긴급한 상황에 대비해야 할 소방인력 100여명을 장시간 엉뚱한 현장에 투입시킨 행정착오라면 담당자는 공개적인 문책이 불가피할 것입니다. 물론 그게 착오일 리 없지만 말입니다. 

<소방호스가 들려있어야 할 소방관들의 손에는 빗자루와 걸레가 들려 있었다>

                  

군대 다녀온 남자라면 누구나 겪었을 법한 이야기입니다만, 우리부대에 사단장 방문이 예고된 뒤 약 한달 전부터 ‘부대미화’작업이 시작됐습니다. 방문날짜가 임박해오자 행정병, 취사병에 심지어 평소엔 얼굴도 잘 보기 힘들던 보일러병까지 투입돼 밤 늦게까지 풀을 뽑고 삽을 들었습니다. 그때 누군가 목숨을 걸고 중대장에게 "왜 이렇게까지 해야합니까"라고 물었다면 중대장은 "우리가 우리집 깔끔하게 단장하는게 무슨 문제냐"고 했을 겁니다. 모두가 알고 있던 문제는 '집단장'이 아닌 중대장의 '과잉 충성'이었습니다. 그걸 알고 있으면서도 별도의 조치없이 방문을 강행한 사단장에게도 책임이 없다 말할 수 없을 겁니다. 

이번 해프닝이 발생한 원인도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누군가의 과잉 충성이 불러온 코메디겠죠. 물론 나라의 중요한 행사를 앞두고 상황이 다급하다면 별도의 가용인력이 투입될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제의 상황이 과연 비번 소방관들까지 투입해야 할 정도로 긴박한 상황이었을까요? 기상청 발표에 따르면 어제 서울의 낮 최고온도는 영상 4.3도 였고 오후 내내 영상의 포근한 기온이 유지됐습니다. 내일도 모래도 오후 내내 영상의 기온속에서 구름한점 없는 날씨가 예보되고 있습니다. 가만 놔둬도 햇볕에 녹을 눈이었다는 이야기죠. 소방관들은 그걸 치우러 출동했던 겁니다. 뻔히 눈소식이 예보되었는데도 뚫린 하늘아래 의자를 미리 깔아둔 것도 이상합니다. 폭풍전야에 모래성을 쌓은 것 만큼이나 바보같은 일입니다. 여기에는 소방관들의 열악한 근무여건이나 처우같은 이야기는 끼어들 틈도 없습니다. 소방관들이 나라에서 연봉 수억을 받는다 해도 그런 일에 투입될 이유는 없기 때문이죠.


박근혜 당선자는 공교롭게도 '동원'과 관계가 많은 정치인 입니다. 당선자는 지난해 9월 가천대학교 특강에서 학생들을 강제동원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망신을 당했고, 이후에도 한국비보이연맹, 한국노총 등 여러 단체들이 지지선언에 엉뚱한 사람들을 동원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충격을 줬습니다. 선거가 끝났지만 박근혜 당선자는 또 다시 예상치 못했던 동원논란에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이번 소방관 동원 해프닝은 이전의 동원들과 목적은 다르지만 충성 경쟁이라는 원인은 같습니다. 그 목적이 무엇이든 대부분의 불합리한 동원은 무리한 충성 경쟁에서 비롯됩니다. 

<대통령의 중요한 자질로 '민주적 리더십'을 강조했던 윤여준 전 장관>

물론 박근혜 당선자는 당연히 그런 일에 직접 관여했을 리 없습니다. 그런데, 유독 당선자 주변에서는 왜 이런일이 자주 일어나는 것일까요? 한번 생각해 볼 일입니다. 이것은 당선자가 가진 리더십의 성격과 연관지어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과잉충성을 유발하는 리더십의 종류는 어떤 것일까요?

권위적인 지도자는 관료사회와 <명령- 복종>, <충성 - 보상>의 형태로 관계를 맺습니다. 이런 관계아래에서는 아랫사람들이 과잉 충성에 대한 유혹을 느끼기 쉽습니다. 박근혜 당선자가 핸드폰에 박정희 육영수의 사진을 걸고 다니던 김병관 씨를 국방장관에 내정한 사실은 이런 혐의를 강하게 뒷받침합니다. 한국현대사에서 가장 활발한 '동원'이 이루어졌던 시기는 박정희 정권 시절이었습니다. 정부기관은 물론, 각종 관변단체와 초 중 고 학생들까지도 정부의 목적에 따라 각종 행사에 동원됐습니다. 권위주의적인 권력은 필연적으로 동원을 유발합니다.   

반면
민주적인 리더십을 가진 지도자의 주변에서는 이런 일이 자주 발생하지 않습니다. 아랫사람들이 과잉 충성의 보상이 없다는 사실을 금방 깨닫기 때문이죠. 또 민주적 지도자는 동원을 하면서까지 이미지세탁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대통령에게 민주적 리더십이란 매우 중요한 덕목입니다. 박근혜 당선자 주변에서 아랫사람의 과잉 충성으로 인한 문제들이 종종 발생한다는 사실은 당선자의 리더십이 매우 비민주적이고 권위적이라는 신호입니다. 후보검증 기간에도 수많은 언론과 평론가들이 박 당선자의 이런 점을 지적해왔습니다. 혹, 실제로 그렇지 않다 해도 당선자의 모습이 관료사회에 그렇게 비춰졌다면 문제는 발생합니다. 

대통령의 민주적 자질은 그 나라의 민주주의 수준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대한민국은 이미 군인출신의 권위적인 대통령 치하에서 민주주의가 심각하게 훼손되었던 뼈아픈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박근혜 당선자는 이제부터라도 민주적이고 수평적인 리더십을 보일 필요가 있습니다. '실패한 권위주의 대통령'으로 기록되길 원치 않는다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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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2.23 23:20 신고

    옳으신 말씀이라 생각합니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소리를 듣지 않을 것 같아 걱정이 됩니다.

  2. 2013.02.27 23:25 신고

    You are so sharp!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이 확정된 2002년 12월 19일 밤 정대철, 추미애 등 당시 민주당의 핵심인사들이 모 지상파 TV에 출연했습니다. 승리에 한껏 취한 분위기속에 민주당 인사들의 자화자찬이 이어지던 순간 모처럼의 축제자리에 찬물을 끼얹은 이가 있었습니다. 그들의 덕담들을 잠자코 듣고 있던 유시민 씨는 “국민은 민주당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노무현이란 인물을 선택한 것이다. 노무현이란 존재는 민주당에게 ‘선물’같은 존재다. 그를 모함하고 내치려 했던 민주당은 승리에 취할 자격이 없는 정당이다.”며 일갈을 쏟아냈습니다. 이 작은 에피소드는 유시민이란 사람의 성정을 잘 보여줍니다. 때와 장소, 상대를 가리지 않고 잔칫집분위기를 일거에 초상집으로 바꿔버리는 사람, 그게 유시민이었습니다.
 


유시민 전 장관은 19일 오전 자신의 트위터에 이같이 짧은 글을 남기며 영욕의 정치인생 10년을 마감했습니다. 가는 곳마다 구름관중을 몰고 다니던 대표적 스타정치인이었고,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야권의 가장 유력한 대권주자로 손꼽혀왔던 유시민이기에 그의 급작스러운 은퇴소식은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오전에 알려진 유시민 씨의 정계은퇴 소식에 여러 정당과 지인들이 관련된 논평과 심경을 전했습니다. 아쉬움과 애증이 섞인 반응들이 쏟아지는 가운데 제가 가장 공감이 가는 논평은 이정미 진보정의당 대변인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남긴 “좋은 교육가였다”는 평이었습니다.

 

이정미 대변인의 표현처럼 유시민은 한국정치사에서 몇 안되는 계몽적 정치인 이었습니다. 유시민이 교육가로서 보인 자질과 태도는 그가 성공한 이유인 동시에 실패의 원인이기도 했습니다. 베스트셀러 작가이며 탁월한 학자이자 비평가, 활동가였던 유시민은 어떤 정치인보다도 뛰어난 계몽가적 능력을 갖고 있었고, 직업정치가로 변신한 뒤에도 한동안 그런 자질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유시민은 늘 언론과, 다른 정치인들과 치열하게 논쟁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그는 논쟁이 아닌 계몽을 하고 있었습니다. 늘 상대방보다 한 수 위의 논리와 지식을 갖고 있었던 그는 때와 장소, 상대를 가리지 않고 가르치고 훈계하려 했습니다. 단지 상대방이 계몽되기를 거부했을 뿐이죠. 어떤 정신과의사는 유시민의 그런 태도에 대해 ‘지적 권위주의자’라는 괴상한 타이틀을 붙여주기도 했고 사람들은 그에게 분열주의자, 정당브레이커 등등 제법 어울리는 낙인을 찍었습니다. 비평가시절 스스로가 가장 경계한 것이었던 ‘인상비평’이 자신의 이름 뒤에 수없이 따라붙은 셈입니다.

 

한국사회는 현실정치가의 계몽적 태도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지배적인 곳입니다. ‘종이 주인을 가르치려 든다’는 식입니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길가의 거지에게는 배워도 정치인에게는 배우려 하지 않습니다. 이런 나라에서 번번이 국민들을 가르치려 들었으니 미운털이 박힌 것은 인과응보 일 겁니다. 얼마전 계몽적 정치에 관해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어느 곳보다도 정치불신이 팽배한 대한민국에서 유시민이 가진 계몽적 성향은 분명 정치인으로서 불리한 것입니다. 학자나 비평가에 어울리는 성격이죠. 정확히 표현하자면 유시민같은 탁월한 학자의 식견이 쓰여지기에는 아직 이나라의 정치환경이 성숙하지 못했다고 해야겠습니다.

유시민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주로 그의 '말'을 기억하고, 유시민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주로 그의 '글'을 기억합니다. 그를 탁월한 학자로서 자리매김 시킨 것은 글이었고, 늘 곤경에 몰아넣은 것은 ‘말’이었습니다. 그는 누구보다 달변가였고 그 말들은 대부분 틀리지 않은 것이었지만, 그런 것은 정치인에게 중요치 않습니다. 정치불신이 지배하는 나라의 정치인에게 중요한 것은 말의 내용이 아닌 말의 태도입니다. 장관 재임을 전후로 확연히 달라진 그의 화법도 독하게 붙은 꼬리표들을 떼어내지는 못했습니다.

분열과 갈등은 그 자체로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닙니다. 질병이 아닌 ‘증상’일 뿐인 것이죠. 원인이 아닌 현상에 대해 좋고 나쁨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한 일입니다. 국가주의가 강한 힘을 가진 사회에서는 갈등과 분열자체를 죄악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사회에서는 갈등의 해결을 위해 앞장선 사람들이 마치 갈등을 유발한 죄인처럼 취급받기도 합니다. 유시민 같은 인물이 대표적 경우입니다. 탈당과 분당, 창당을 오갔던 그의 행보를 유심히 살펴보면 그것들을 관통하는 공통점이 발견됩니다. 이미 존재하는 갈등에 대해 가장 먼저, 가장 선명한 입장을 밝혔왔다는 점입니다. 노무현 경선부터 통진당 사태까지 유시민은 지난 10년간 우리사회의 가장 논쟁적인 이슈에 대해 누구보다 선명한 입장을 드러내왔습니다. 그가 취했던 입장들이 옳은 것이었나에 대한 가치판단은 각자의 몫이겠지만, 당면한 갈등들을 누구보다 용기있게 마주해온 정치인이라는 점은 분명 인정해야 할 사실입니다. 진짜 갈등을 부추기는 사람은 갈등을 부정하는 사람입니다. 갈등을 인정하는 사람만이 갈등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가장 먼저 갈등을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해결의지를 보인 사람이 갈등의 유발자처럼 묘사되는 사회라면 누가 나서서 그 사회의 갈등을 해결하려 할까요? 이런 측면에서 유시민이란 인물이 갈등의 화신, 분열의 씨앗으로 묘사되는 것은 부당하다 생각합니다.

박근혜 당선자는 취임을 앞두고 내각과 청와대를 구성할 인물들을 속속 발표하고 있습니다. 인물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하나같이 의(義)와는 거리가 먼 인물들입니다. 병역면제, 위장전입, 세금포탈 등 수많은 의혹을 받고 있는 그들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탐관오리(貪官汚吏)’입니다. 나라님이 탐관오리들을 중용 할 때 가장 먼저 일어나는 현상은 의로운 이들이 초야에 묻히는 일입니다. 탐관오리들이 득세하는 시대는 ‘불의(不義)의 시대’입니다. 불의의 시대에 의로운 뜻을 가진 이들은 설 자리가 없습니다. 박근혜 정부에 등용될 새 얼굴들과 유시민의 정계은퇴는 이런 인과관계를 극단적으로 보여줍니다.
 

 

 


무엇이 정의이고 무엇이 불의인가를 함부로 규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의를 쫒는 삶을 살아온 정치인들이 오늘날 어떤 처지에 놓여 있는가를 생각해보면 불의가 득세하는 시대를 금방 체감할 수 있습니다. 유시민 같은 논쟁적인 인물을 감히 의로운 사람이라 부를 수 있는 까닭은 현 시대의 불의가 너무도 명확한 탓입니다. 적어도 새 정부에 참여하는 인물들 보다는 유시민 같은 인물이 선에 가까운 인물이라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역사는 불의의 시대를 그리 길게 허락하지는 않습니다. 언젠가 불의의 시대를 종식시킬 시점이 오면 자연인 유시민보다 정치인 유시민의 힘이 다시 필요하게 될런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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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다람쥐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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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2.20 13:08 신고

    글 잘 읽었습니다. 오랫동안 유시민 지지자로 있으면서 왜 사람들이 그를 싫어하는지 알지 못했는데, 이 글을 보니 그들의 관점이 어떤것이었는지 무릎을 치게 만드네요. 저는 그의 계몽의 관점을 받아들이는 사람이었다는 것도. 생각해보니, 정말 그는 좋은 선생이었네요.

    글 내용에 조금 첨언하자면,
    트윗내용으로만 보았을 때, 정계은퇴라는 말은은 다소 부적절하지 않은가 싶습니다.
    '직업으로서의 정치'는 선출직을 의미하는 것이고, 평소 그의 정치관?에 비추어 볼 때
    당원으로서 기본적인 활동은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 2013.02.20 14:31 신고

      정계은퇴란 표현은 언론보도를 기계적으로 옮겨 적은 것이니 의미를 두지 않으셔도 됩니다. 글 말미에 여운처럼 저도 그분의 복귀를 희망합니다.

  2. 2013.02.20 13:31 신고

    여기 유시민의 오랜 팬 한명 추가요
    다람쥐주인님이 보시는 유시민이 가장 와 닿네요
    불의의 시대 다시 유시민이 돌아올 수 밖에 없을 겁니다
    시민광장에 펌질 해가면서 줄 타이틀에 정계은퇴란 말은 뺐습니다
    본문 옮길 땐 다 그대로 넣었고요
    죄송합니다
    수정하라 하시면 할께요

  3. 2013.03.27 17:56 신고

    이번 대통령은 유시민이 될 줄 알았던 유시민 지지자입니다.
    정말 좋은 글 고맙습니다.

    똑똑하고 정직하고 검소한 사람이 왜 욕을 먹는지 몰랐는데 조금 이해가 됩니다.

    고맙습니다.

  4. 2013.07.01 17:15 신고

    은퇴는 아쉬웠지만
    이제야 좀 정치인스럽다고 느꼈죠..
    DJ께서 대통령당선때 연세가 몇이셨죠?
    국민이 유시민을 울부짓을때가
    다시올겁니다 건강관리나 잘하셨음 좋겄소
    오래 사셔야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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