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하라"

 

낭만적인 신사의 언어다. 세상 모든 일이 사과로 해결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불행히도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리 낭만적이지 못하다. "사과하라"는 말 뒤에는 공통적으로 생략된 말이 있다.

 

"사과하라" (그리하면 용서하겠다)

 

사과는 용서의 전제조건이다. 사과를 요구한다는 것은 내가 용서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을 상대에게 알리는 것이다. <사과-용서>라는 '신사협정'이 맺어지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하나는 '용서의 준비'이며, 다른 하나는 '용서의 자격'이다. 사과받는 쪽이 용서할 준비가 돼있지 못하다거나, 용서의 자격을 갖고 있지 않다면 협정은 성립되지 못한다.     

 

지난 주말 거리에 나선 민주당이 광장의 시민들과 함께 첫 집회를 가졌다. 그런데, 그들의 집회에서는 이상한 구호가 등장했다.

 

"박근혜 대통령은(부정선거에 대해) 사과하라"

 

대통령을 향한 사과요구는 민주당이 야심차게 준비한 '남해박사'(남재준 국정원장을 해임하고 박근혜 대통령은 사과하라)라는 구호에도 담겨있다. 대통령의 진심어린 사과와 야당의 통큰 용서, 그리고 이어지는 뜨거운 화해, 뭐 이런 아름다운 드라마라도 꿈꾸는걸까?

 

아니다. 민주당은 대통령이 사과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다. 사과요구는 늘 그래왔듯 관성에 의한 정치공세일 뿐이다. 일반적인 정치상황이라면 대통령에 대한 사과요구로 많은 것을 얻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엔 단단히 틀렸다. 국정원 대선개입사건은 대통령의 사과로 해결될 수 있는 범위를 한참 넘어선 사건이다. 세상에 부정선거를 '사과하라'고 요구하는 야당이 어디에 있나? 이쯤되면 온건함을 넘어 멍청함이다. 이럴땐 남미나 아프리카의 야성미(野性美)넘치는 야당이 부러워진다.   

 

만일, 대통령이 덜컥 사과를 해버리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이렇게 될 경우 먼저 사과를 요구한 민주당은 역으로 용서와 화해를 강제받게 된다. 진상규명이 이루어지기도 전에 용서와 타협을 강요받는,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민주당이 대통령의 사과만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의 요구대로 대통령이 사과를 한다면 다른 요구사항들은 힘이 빠질 수밖에 없다. 다행히도(?) 어제 대통령은 '반민주'의 상징 김기춘 옹을 비서실장에 임명하면서 사과의 의지가 전혀 없음을 시사했다.

 

<국민들은 이런걸 보고 싶은게 아니다>

 

대통령에 대한 사과요구는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 적절하지 못하다.

 

첫째, 사과의 의미가 없다. 민주주의는 '사과'로 구현되지 않는다. 50년 전 3.15 부정선거에 분노한 시민들이 이승만에게 "사과하라”고 외쳤다면 어땠을까? 26년 전 4.13 호헌에 분노한 시민들이 고작 '전두환의 사과'를 요구했다면? 그랬다면 독재자들은 청와대에 앉아 코웃음을 쳤을 것이고, 4.19혁명과 6월항쟁 같은 빛나는 역사도 없었을 것이다. 물론 국정원사건이 그것들에 비견될만한 중대성을 갖는가에 대해서는 여러 이견이 있다. 그 간극을 좁히기 위해서라도 섣부른 사과요구보다 철저한 진상규명이 우선돼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무엇을 사과해야 하는지도 알 수가 없다. 만약 대통령이 국정원의 부정행위에 개입했거나 사전에 인지했다면 사건의 '가해자'가 된다. 나는 그 가능성이 높다고 보지 않으며, 설사 그런 일들이 있었다해도 밝혀지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수혜자'의 지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부정선거 수혜자에게 어떤 책임을 물을 것인가에 대해서도 이견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사전에 인지를 했든 못했든)를 생각해봐도 대통령의 사과는 필요하지(중요하지) 않다. '다른 방식'의 책임이 필요할 뿐이다.  

 

관련글 - 장외투쟁, '국정원 개혁'이라는 함정

 

<그는 영수(領袖)의 자격이 있나?>

 

둘째, 민주당에겐 '용서의 자격'이 없다. 김한길 대표는 뭔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 민주당의 장외투쟁 첫날 김한길 대표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엉뚱하게도 1:1 영수회담 제안이었다. 여기서 '영수회담'이란 말이 어색하게 들리는 이유는 양쪽 영수(領袖) 모두가 대표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건의 수혜자인 대통령은 물론, 김한길 대표 역시 그가 야권의 대표성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 많은 야권지지자들이 의문을 품고 있다. 그가 현재 민주당의 대표이긴 하나 야권과 시민사회 전체의 영수는 아니다. 민주당이 우물쭈물하는 사이 한달이나 먼저 거리로 나왔던 진보정당들도 있다. 의석수가 많은 당의 대표라는 이유만으로 거리에 나와 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 당의 대표가 '촛불대장'노릇을 할 이유는 없다. 나역시 야권지지자중 한사람이지만 나와 정치적 지향이 전혀 다른 정치인 김한길이 왜 내 의사를 대리-대표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같은 이유로, 민주당은 사과를 요구할 자격이 없다. 그들은 그럴만한 대표성도 없으며, 그렇다고 시민의 뜻을 잘 대리하지도 못하고 있다. 따라서 대통령이 사과를 한다해도 민주당은 용서할 자격이 없다. 앞서 이야기했듯 '용서의 자격'이 없는 자가 사과를 요구하는건 이치에 맞지 않는다. 그들은 '남해박사'라는 쓸모없는 슬로건을 빨리 폐기해야 한다.  

 

거리로 '동원'된 민주당의 신세

 

거리에 나온 시민들의 열망이 모두 같은 것은 아니다. 어떤 이는 대통령의 즉각 하야와 당선무효를 외치기도 하고, 어떤 이는 국정조사 정상화나 특검도입을 주장하기도 한다. 그 요구들을 모두 담아낼 수는 없는 민주당의 고충도 이해한다. 그러나 '대통령의 사과'가 그것들의 교집합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민주당은 제발로 거리로 나온 것이 아니다. 국회에서 새누리당에게 떠밀려 나온 것이며, 거리의 시민들에게 ‘동원’된 것이다. 아무리 내키지 않는 거리투쟁이라도 시민들을 현혹하거나 시민들의 열망과 동떨어진 구호를 외쳐서는 안된다. 더구나 대통령의 사과나 국정원개혁같은 것들은 진상규명이 아닌 사태수습과 관련된 문제들이다. 이시점에서 저런 요구들을 하는 것은 진상규명도 하기 전에 새누리당에게 출구를 열어주는 꼴이다.

 

무더운 여름날 비에, 땀에 젖어가며 시민들이 거리로 나온 이유는 대통령에게 사과를 받기 위해서가 아니다. "사과해라", "안한다" 같은 밀당을 보고싶었던 것도 아니다. 그들을 거리로 내몬 것은 국정원 대선개입사건의 전말을 밝혀내야 한다는 의무감이다. 철저한 진상규명은 시민들의 다양한 요구를 함축하는 교집합이다. 대선기간 국정원이 벌인 일들이 과연 원세훈 원장의 자발적 충성이었는지, 이명박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는지, 정권과의 교감은 없었는지 등등 아직 밝혀내야 할 문제들이 산더미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의 사과 따위가 무슨 의미인가?   

 

100년 뒤 <한국정치사>책에는 민주당이 이렇게 기록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100년 전, 부정선거에 사과를 요구했던 낭만적인 야당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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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다람쥐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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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8.06 11:35 신고

    정말 답답하더라구요,,도대체 거리에까지나와서 전단지 돌리면서 한다는 말이 고작 남해박사라니뇨....
    이나라가 도대체 어떻게 될까요 밖으로는 일본 방사능때문에 걱정스럽고 안으로는 깝깝한 사람들이 한자리 차지하고 앉아서...무더운데 정말 더 덥습니다...

  2. 2013.08.06 11:39 신고

    진짜 저런 소리하는 민주당이 더 밉습니다.
    장난하는것도 아니고... 워터게이트 사건 듣지도 못했나?
    저러니까 새누리당 들러리라는 소릴듣지....

  3. 2013.08.06 13:09 신고

    민주당을 대체할 정당출현은 정말 요원한 꿈에 불과할까요.
    그놈의 미워도 다시 한번.....지긋지긋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게 절망스러울 뿐입니다.

  4. 2013.08.06 13:22 신고

    맞는 말씀!

  5. 2013.08.06 21:26 신고

    그럼 사과가 아니고 뭘까요. 하야? 그것밖에 없겠군요.
    물론 "대대적인" 부정선거가 있었고, 박근혜가 "그것을 직접 지시 내지 묵인했다면" 그것은 분명 하야할 만합니다.
    그런데 지금 밝혀진 내용이 그렇게 대대적인 부정선거인지는 의문입니다. 댓글 몇 개가 고작이니까요. 물론 공무원이 업무 시간에, 아마도 지시를 받아서 여당후보를 지지하는 댓글을 달았다면 이건 분명 부정이며 흑백을 가려야 할 문제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선거의 판도를 좌우할 만한 "대대적인" 부정선거는 아니겠죠.
    또 지금으로서는 그 일이 박근혜가 지시 내지 묵인한 일인지, 아랫선에서 생긴 일인지 알 수 없습니다. 후자가 맞다고 해도 박근혜는 어느 정도 도의적 책임을 져야겠지만, 하야를 할 정도로까지는 보이지 않습니다.
    "당연히 지시를 했겠지. 자기 맘대로 했겠느냐?"고 하시는 분들은, 이야기가 다른 쪽이지만, 곽노현 전 교육감은 돈주는 일을 전혀 몰랐고 아랫사람들이 제멋대로 벌인 일이라고 했는데 왜 그건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면서 박근혜는 당연히 주도했을거라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결국 지금 무엇보다 필요한 일은 진상조사입니다.
    이 일이 어느 정도까지의 사안인지 확실히 알고 나서, 사과를 요구하든 하야를 요구하든 해야 합니다.
    그러기도 전에 사과하면 그만두겠다고 하는 것도 오버지만, 일단 부정이 있는 이상 닥치고 하야라는 것도 오버입니다. 당파적이고요.

    • 2013.08.06 21:46 신고

      "고작 댓글몇개"라는 태도만큼 당파적인 태도가 있을까요.
      글에 있는 내용을 반박하는양 중언부언하시는걸보니 글을 안읽으신듯하네요.

    • 2013.08.07 08:18 신고

      댓글 몇개 달았다고 대선 판도가 바뀌는게 아니란걸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댓글의 개수가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정보기관이 선거에 개입하는거 자체가 헌법에 명시된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는 행위인거죠. 따라서 이 상황에서 헌누리를 옹호하는 사람은 부카니스탄으로 가는게 맞습니다.

  6. 2013.08.06 22:22 신고

    민주당이 새누리당에 빌붙어 천년만년 알량한 기득권을 유지하고 살 작정입니다.
    참 안스럽네요......
    이 들을 믿고 있었던 저를 포함한 국민들이 불쌍합니다.

  7. 국민이로소이다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2013.08.07 01:06 신고

    빙고. 사과는 무슨 개풀 뜯는 사과 ? 책임을 지고 하야해야지.

  8. 2013.08.07 01:46 신고

    경북지역들 진자 짜증이다.. 민주당도 잘한건 아닌데 중립에 서서 판단해야 할것아닌가

  9. 2013.08.07 01:48 신고

    이건 뭐.. 박근혜가 어디까지 개입을 했던, 진상조사를 하던 말던
    이미 맘은 그리로 쏠렸군요.
    박근헤가 분명 개입했을 것이고 따라서 하야하라는,....
    사과하라느니 하야하라느니... 그런 소리 나오기 전에 진상을 밝히는 게 우선 아닌가요?

  10. 2013.08.07 07:35 신고

    구구절절. 옳은 말씀 얼마나. 우스운지. 민주당이. 답답해라

  11. 2013.08.07 07:46 신고

    건강한 대한민국 만들기 프로젝트 <정부야닷컴> 국민의 의견을 듣습니다. http://jungbuya.com

  12. 2013.08.07 08:30 신고

    대통령사과는 원래 말로사과가 아니예요 책임지고 후속조치를 하지않으면 야당은 의미없는사과로 우롱한다고 한번더 칠수있어요 언론만 받쳐주면 ㅆㅂ

  13. 2013.08.07 17:25 신고

    사과가 아닌 탄핵을 말해야 합니다. 공권력에 의한 선거개입은 당연히 부정선거 원천무효가 돼야합니다.

  14. 2013.08.21 07:54 신고

    민주당 뭔가 열심히 하려고 하는 의지는 보여지지만 새누리를 상대하기엔 벅차게 느껴집니다.
    청문회를 보노라면 새누리당 의원들은 저사람들이 정녕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위해서 정치를 하는 사람들인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입니다. 왜 우리 국민들은 저런 국회의원들밖에 뽑을수 없는것인지 개탄스럽기도 하구요.
    세상을 살아갈수록 느끼게 돼는건 오늘날 모든 부정부패의 근원이 잘못됀 법과 집행에 있음을 깨닫게 됍니다
    바로 그 법이란걸 만드는 국회의원이란 사람들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우리 국민들은 인식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 지식인들은 그러한 국민의식을 깨우는 일에 앞장서야하고 교육이 이를 뒷받침해야 합니다
    민주당은 이미 방송에 관련해서 무능함을 보여줬고 그 결과 이지경에까지 이른것이며 이번 국정원 사건마저 무능함을
    보인다면 민주당은 더이상 국민을 입에 담기도 부끄러워 해야합니다.

  15. 2013.08.23 23:29 신고

    미국이 한국을 지배한지 반세기이상,
    그 기간동안 무수히 많은 간첩들이 한국의 상류층에 기생한다.
    자유당이 한국 독재정권으로 군림한지 반세기이상, 민주당내 새누리 간첩이 없을쏘냐? 난, 김한길을 지목한다.

    • 2013.10.29 16:29 신고

      그런 심증만 가지고 지목하고 가십화 한다는게 웃기네요.
      그런일은 국정원이 해야지..(정치댓글이나 달고 앉았으니..)언제부턴가 간첩,빨갱이 70년대 들었던 말들이 사방으로 퍼져나간 시기가 언제부턴지 아시죠?

  16. 2013.09.03 11:31 신고

    크크크 다람쥐님 글 오늘 처음 보았는데.. 잘 쓰십니다.
    저도 그게 안타까웠습니다... 왜 사과해라야?? ㅂㅅ같이(버선같이)......
    님의 글을 애독하겠습니다...가끔 댓글도 올리겠습니다 존경하게 만드네요,. 님을.....

 

<서울광장으로 나온 민주당 출처:오마이뉴스>

 

민주당이 거리로 나왔다. 원내투쟁과 장외투쟁 사이에서 고민하던 민주당이 결국 31일 서울광장에 '민주주의 회복과 국정원 개혁 국민운동본부'를 설치하고 첫 '천막 의원총회'를 가졌다. 뜻밖이다. 김한길 대표 체제 아래서 민주당이 적극적으로 거리정치에 나설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광장에 천막본부까지 설치한 것을 보면 꽤나 수위가 높다. 줄곧 국정조사 무용론을 제기해 온 필자와 같은 입장에서는 반가운 일이다.  

 

그런데 내용을 들여다보면 장외투쟁에 임하는 민주당의 태도가 그리 강경한 것은 아니다. 어제 국민운동본부 민병두 본부장은 "시민사회단체의 장외 촛불집회의 요구사항은 남재준 국정원장 해임,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 국정원 개혁으로 압축된다"면서 그들의 뜻과 함께하는 것이 장외투쟁의 취지라고 설명했다. 김한길 대표 역시 "민주당은 민주주의 회복과 국정원 개혁을 위해 국민과 함께 나설 것"이라며 이번 투쟁의 목적을 밝혔다.     

 

'민주주의 회복'이라는 뜬구름 잡는 구호를 들어내고나면 민주당의 천막투쟁 목적은 국정원개혁만 남는다. 여러 언론에서는 벌써 '국정원개혁 운동본부'라고 줄여쓰고 있다. 거대야당이 거리로 나선 목표가 고작 국정원 개혁이라면 너무 초라하다. 대포로 파리를 쏘는 격이다.

 

물론 '민주주의 회복'이라는 구호는 해석에 따라 많은 의미를 담아낼 수 있다. 그안에는 국정원 개혁이나 국정원장 해임, 대통령의 사과와 같은 여러 가지 의미가 혼재돼 있다. 당내 강경파과 온건파의 입장을 적절하게 뭉뚱그려 놓은 정치적 구호로 보인다. 아쉽다. 이왕 '대군'을 이끌고 거리에 나섰다면 민주당은 그 명분을 좀 더 명확히 할 필요가 있었다. '국정원사건 진상규명'이라는 명료한 구호를 놔두고 굳이 저런 애매모호한 말로 초점을 흐려야 했는지 모르겠다.

 

대포로 파리 쏠텐가

     

'국정원 개혁'이라는 구호가 전면에 나서는 것 역시 좋은 일이 아니다. 국정원 개혁은 피할 수 없는 과제이자 당위이지만, 지금 시점에서 이것이 이슈의 중심에 놓이는 것은 몇 가지 측면에서 위험하다. 

 

첫째, 순서의 문제다. 국정원 개혁은 사태의 본질을 비껴간 '재발방지대책'이다.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만, 그것이 진상규명과 처벌보다 앞설 문제는 아니다. 정보기관의 조직적인 대선개입이라는, 이미 발생한 중대한 문제를 제껴둔 채 부차적인 재발방지대책을 먼저 이야기하는 것은 순서가 틀렸다.

 

장장 6개월간 이루어진 검경의 수사과정에서는 온갖 외압과 은폐가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추진했던 국정조사는 새누리당의 발목잡기로 좌초됐다. 원세훈 원장에 대한 구속수사조차 이루어지지 못했던 말도 안되는 수사가 끝났을 뿐이다.

 

국정원과 전정권, 현정권의 책임범위가 서로 어디까지인지 파악되지 않은 상태에서 재발방지대책부터 논의한다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태도다. 국정원이 이번 사건의 몸통이었는지, 수족이었는지 아무것도 밝혀진바가 없다. 이런 상태에서 국정원 개혁을 말하는 것은 공허하고 이상하다. 국정원 개혁이나 대통령의 사과 같은 문제들(국정원장 해임의 문제는 조금 다르다)은 사건의 전말이 명확히 드러난 뒤 그 결과에 따라 적절하게 논의되어야 할 '후순위'의 문제들이다.

 

둘째, 의도의 문제다. 올해초 국정원사건의 전모가 서서히 드러나자 지상파와 종편, 보수언론들은 약속이나 한듯 역대 정보기관장들의 흑역사에 대해 특집보도를 내보냈다. 김형욱, 이후락 같은 인물들의 비화가 이번 사건과 대체 무슨 연관성이 있는지 모르겠다. 청와대와 여당, 보수언론들이 국정원 대선개입사건의 초점을 국정원 개혁에 맞추는 것은 사건의 특수성을 은폐하고 '보편성'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즉, 이번 사건을 오래전부터 상존했던 정보기관의 문제의 연장선으로 치부하는 것이다. 이런 시각에서 바라보면 국정원사건의 본질은 개혁되지 못한 정보기관의 문제로 귀결된다. 대단히 위험한 접근이다.

 

국정원 대선개입사건에 개혁되지 못한 정보기관의 '구습'이 한몫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건이 대단히 특수한 상황에서 벌어진 민주주의 파괴행위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국가 최고정보기관이 대선 등 각종 선거에 개입하기 위한 목적을 가진 전담조직을 설치하고 조직적으로 여론몰이에 나섰다. 전례를 찾을 수 없는 초유의 일이다. 한국의 TV는 이런 사건을 늘 있었던 일처럼 담담하게 보도한다. 확실히 정상은 아니다. 정보기관이 권력에 유착해온 것이 어제 오늘 일은 아니나, 이번처럼 노골적으로 민주주의의 목에 칼을 들이댔던 사건은 없었다. 이것이 ‘늘 있어왔던 문제’쯤으로 일반화된다면 사건의 본질은 희석되고 문제해결은 방향을 잃게 된다.

 

이시점에서의 '국정원 개혁' 구호가 위험한 세번째 이유는 이것이 새누리당의 출구전략이기 때문이다. 국정원사건과 관련해 여야와 청와대의 입장이 대체로 일치하는 부분은 국정원 개혁이 유일하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새누리당이 크게 반대하지 않는 유일한 사안이다. 장기적으로 볼때 국정원 개혁은 국정원정국에 대한 새누리당의 출구전략이 될 가능성이 높다. 진상규명 이전에 문제해결의 초점을 국정원 개혁에 맞추면 국정원을 이번 사건의 몸통으로 예단하는 오류에 빠지게 된다. 그들 입장에서는 정권의 정통성문제를 건드리지 않고도 민심을 수습할 수 있는 '적정수준'의 해결책인 것이다. 국정원개혁이라는 부차적인 문제를 사태해결의 본질로 이해하는 순간 새누리당의 출구전략을 돕는 꼴이 된다. 

 

이런 이유들로 국정원 개혁의 목소리가 전면에 나오는 것은 우려스럽다. 이런 우려는 민주당 뿐 아니라 장외투쟁에 나선 모든 정당과 시민사회에도 공히 해당된다. 국정원을 개혁하든 해체하든 그런건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끝난 뒤 이루어질 일이다.

 

<'국정원 개혁'은 잠시 뒤로 미루자>

 

승복과 불복 논할 때 아냐

 

야 3당이 모두 거리에 나서자 새누리당은 이를 '대선불복'이라며 비난하고 나섰다. 허나 이것은 대선불복 or 승복의 문제라기보다는 선거부정을 인정하는가 or 인정하지 않는가의 문제로 보는 편이 정확하다. 민주주의는 결과가 아닌 과정으로 구현된다. 과정의 문제를 규명하려는 노력을 '대선불복'같은 반민주적인 표현으로 매도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이는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노력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   

 

검∙경의 수사는 지난 대선과정에서 벌어진 국정원사태의 의문을 전혀 풀지 못했다. 이것을 해결하고자 추진했던 국정조사는 여당의 방해로 실패했다. 과정에 대한 의문이 해소되지 못한 상태에서 승복∙불복을 논하는 것은 순서가 틀렸다. 지금 해야 할 일은 사태수습이 아닌, 진상규명을 위한 노력이다. 그 수단이 국정조사든, 특검이든, 전면 거리투쟁이든 목표는 다르지 않아야 한다.

 

어떤 야권지지자들은 새누리당의 일사불란한 조직문화를 부러워한다. 물론 민주정당에게 일사불란함은 좋은 덕목이라 할 수 없지만, 이것은 장외정치에서 가장 필요한 덕목이기도 하다. 민주당같은 거대정당에게 장외정치란 둘도 없는 비상상황이다. 국회에서 우왕좌왕하며 새누리당에게 휘둘려왔던 민주당이 거리에서마저 좌고우면 한다면 정말 심각한 위기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 지도부는 분명한 입장정리를 통해 이전과는 다른 리더십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민생이니 국정원 개혁이니 하는 어설픈 구호로 장외투쟁의 갈피를 잃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모처럼 야성을 드러낸 민주당이 작은 함정에 빠져 일을 그르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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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다람쥐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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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8.02 08:57 신고

    동감합니다~
    글 잘읽고 갑니다~

  2. 2013.08.02 15:46 신고

    국정원 개혁 또는 해체.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불투명 하여 작금의 민주당 장외투쟁을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민주당 장외투쟁이 부정선거 구호로 관철되려면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한 유권자들이 납득할 만한 명분이 있어야 합니다. 공개된 자료는 아직까지는 심증만 있을 뿐이요, 구체적 물증은 될수 없다 봅니다.

    종합적으로 현 야권이 취할 수 있는 액션은 원활한 조사가 되도록 가능한 심증은 숨긴채, 국정원 개혁의 일환으로 국정조사, 경찰 검찰의 조사가 투명하게 진행되도록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하는 것이죠.

    국정조사든, 검.경 조사든 투명하고 객관적인 조사로 국정원의 대선개입 및 부정비리가 명명백백 밝혀진다면, 저 국회의원들 보다 일반 국민이 먼저 봉기할 것 입니다. 국민 믿고 올곧은 장외투쟁 하기 바람니다.

  3. 2013.08.02 21:11 신고

    민주당의 장외투쟁은 국정원사건을 마무리하려는 새누리당 연출 민주당 주연인 쇼일 가능성이 커보인다.
    새누리당 입장에선 사건을 빨리 마무리 하는 것이 유리할 것이고,
    민주당 지도부 입장은 빨리 끝내고 새누리엉아들하고 놀아야 하는데 명분이 없어
    그러니 나가서 으쌰으쌰 몇번하고 뭉개다가 할만큼 했어 그러면서 다시 기들어가는거지 뭐
    안봐도 비디오지.

 

헌 술은 헌 부대에

 

민주당의 전당대회가 끝이 났습니다. 당대표에는 예상대로 김한길 의원이 선출되었고, 예고했던 대로 개정된 강령이 발표됐습니다. 민주통합당→민주당으로의 당명개정과 함께 민주통합당의 정체성을 담고 있었던 당강령 역시 2011년 재창당 이전의 그것으로 상당부분 회귀했습니다.

 

사실 대한민국 대중정당들의 강령이라는 것은 '좋은 말들의 합'이나 다름없습니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강령들은 엇비슷한 문구 속에 미묘한 뉘앙스의 차이만이 존재합니다. 잘 모르는 일반인들에게 당명을 가린 채 두 당의 강령을 보여준다면 쉽게 골라내지 못할 것입니다. 앞으로 창당될 안철수신당의 그것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강령을 세세하게 읽고, 외우며 당이 그것에 맞는 정치행위를 하는지 따져보는 꼼꼼한 지지자들도 거의 없습니다.

 

강령을 손본다는 것은 실질적인 내용의 변화라기보다는 하나의 선언이자 공언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이번 선언의 키워드는 잘 알려진대로 '보수회귀'입니다. 흔히 어떤 조직의 장이 바뀌면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말로 조직의 변화를 설명합니다. 그런데 민주당의 변화에는 이말이 어울리지 않습니다. 답습과 회귀에서 새로움을 느낄 수는 없기 때문이죠. 

 

김한길 의원은 과거 열린우리당 시절부터 줄기차게 중도지향, 즉 우클릭을 외쳐온 인물입니다. 개정된 강령은 김 의원이 혼자 만든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의 주장을 충실히 담고 있습니다.

 

문구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일은 의미가 없습니다. 나쁜 말을 강령에 넣는 바보정당은 없기 때문이죠. 따져 보아야 할 것은 문구들의 지향점입니다. 김한길 대표의 선출과 개정된 강령이 말하고 있는 것은 '헌 술은 헌 부대에'입니다.

 

반값등록금, 무상의료 추진과 한미FTA, 뉴타운 재검토 조항을 삭제했다는 것은 새누리당과 민주당을 갈랐던 몇 안되던 변별력마저 사라졌음을 의미합니다. '기업의 건전하고 창의적인 경영활동 존중 및 지원', '복지와 함께 선순환하는 질 좋은 성장 지향', '미래지향적 한미동맹의 발전' 이런 개정된 강령들이 주는 느낌은 새누리당 2중대라는 비아냥을 넘어선 '새누리당 그 자체'에 가깝습니다. 이것이 우클릭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은 '정치적 색맹'입니다.

 

 

<민주당 VS 안철수> 의미없는 제로섬 게임

 

현재 대한민국 언론이 가장 관심을 두는 부분은 민주당과 안철수 의원과의 관계입니다. 안 의원의 민주당입당은 현실성이 없어 보입니다. 이 시점에서 가장 쉽게 예측할 수 있는 상황은 안 의원의 신당창당 이후 민주-안철수 양당이 야권의 맹주자리를 놓고 자웅을 겨루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한국정치라는 큰 틀에서 바라볼 때 새로운 민주당과 안철수세력 간의 경쟁 혹은 결합은 별 의미가 없는 일입니다. 동질한 세력들간의 제로섬게임이기 때문이죠. 안철수신당의 '새로움'이나, 민주당의 '전통' 같은 군더더기를 빼고 순수하게 두 당이 서 있는 지점만을 바라보면 아무런 차이를 느낄 수 없습니다. 중도지향을 강화하자던 민주당 쇄신파(?)의 주된 논리는 안철수현상을 흡수하자는 것이었고, 실제로 그것이 이루어진 지금 새누리당 왼쪽에 비슷한 색의 두 세력이 공존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두 당의 경쟁이나 결합이 의미하는 것은 보수2당체제냐, 보수 3당체제냐의 차이일 뿐입니다.  

 

민주통합당은 재창당 이후 한 번도 위기가 아니었던 적이 없었지만 이번 위기는 이전의 것들과 강도가 다릅니다. 5.4전당대회 직전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발표한 정당 지지율을 보면 새누리당과 안철수 신당이 30.7%, 30.9%였고 민주당의 지지율은 그들의 절반 수준인 15.4%였습니다. 심지어 지지율이 10%에도 못미치는 여론조사도 나오는 것을 보면 당에 망조가 들었다는 지지자들의 한탄이 공허한 것이 아님을 알게됩니다. 지금 민주당이 처한 위기가 과연 화합, 탕평과 같은 수사로 타개할 수 있는 수준의 것인지에 대해 많은 이들이 의구심을 갖고 있습니다.  

 

민주당내 중도진보지지층의 향배

 

제도정치에서 시민의 정치적 의사표출을 대리하는 대중정당은 자신들이 어떤 정당인지, 무엇을 지향하는지를 선명하게 답할 필요가 있습니다. 민주당은 이에 대해 김한길 대표의 선출과 개정된 강령으로 답을 내렸습니다. 이제 지지자들에게 남은 것은 변화된 당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것인가, 맞지 않는 옷을 벗고 다른 대안을 선택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김한길호 출범 이후 가장 눈여겨 봐야 할 부분은 민주당이 사실상 철수를 선언한 중도진보진영의 민심이 어떻게 움직이는가 입니다. 이들의 향배에 따라 한국정치가 경직된 보수일색의 정치지형을 맞이하게 될 지, 건강한 좌우 날개를 갖는 지형을 맞이하게 될지가 판가름날 것입니다. 크게 4가지 경우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1. 민주당에 대한 비판적 지지를 계속 이어간다.

 

2. 민주당 지지를 철회하고 진보정당 지지로 선회한다.

 

3. 안철수신당 or 새누리당 지지로 선회한다.

 

4. 어떤 당에도 흡수되지 않고 무당파 정치냉소층으로 남는다.

 

이중 이성적 평가가 불가능한 3번 부류를 논외로 하고 나머지 경우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1. 민주당에 대한 비판적 지지를 계속 이어간다>가 주를 이룰 경우

 

충성도 높은 민주당의 지지자들이 '위험한 변화'보다는 '피곤한 안정'을 택하는 경우입니다. 문재인으로 대표되는 민주당내 온건사민주의 세력이 이탈하지 않고 그대로 당에 잔류하는 경우입니다. 이 경우 중도진보 성향의 지지자들이 민주당의 우클릭을 용인하면서 내부적으로 소극적인 노선투쟁을 이어가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한국의 정치지형은 새누리-민주-안철수 3당이 독점하는 사실상의 '보수대연정'상태로 돌입합니다. 이 경우 3당의 지지율 총합이 90%를 넘어서는 상황이 고착화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진보정치의 입장에서 볼 때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경우이며, 가장 현실화 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기도 합니다. 진보정치가 사실상 말살된 일본식 보수대연정의 정치지형이 형성되는 것이죠. 4번 부류가 많을 경우에도 비슷한 양상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대선 이후 민주당 진보개혁세혁의 구심점이 된 문재인 의원>

<2. 민주당 지지를 철회하고 진보정당 지지로 선회한다>가 주를 이룰 경우

 

지지자 개인의 차원에서 볼 때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지만, 여기에는 결정적인 전제조건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문재인으로 상징되는 민주당내 개혁세력의 이탈입니다. 지난 대선을 거치면서 문재인이라는 인물은 (당내의 위상과는 무관하게) 민주당내 중도진보개혁세력의 상징으로 부상했습니다. 지금 상황에서 문 의원이 움직이지 않은 채 지지층만이 분리∙이탈하는 상황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만약 문 의원이 탈당을 결심한다면 그를 따르는 현역의원의 수와 무관하게 야권지지층을 크게 요동시킬 것입니다. 

 

시기상으로 보면 가까운 시일내 대거 탈당이 이루어질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정치는 명분의 예술입니다. 민주당의 우클릭이 노골화되자 많은 지지자들이 민주당내 개혁세력에게 분당탈당을 요구하고 있지만 명분없는 탈당은 정치적 자해행위나 마찬가지입니다. 전당대회까지 민주당과 함께 한 이상 일정기간 결과에 승복하는 모습을 보일 의무가 있습니다.   

 

문 의원의 성정상 특별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이상 스스로 구심점 역할을 자처하면서 탈당을 주도할 가능성은 낮아 보입니다. 다만 대선평가논쟁과 같은 격한 세력갈등이 지속적으로 이어지거나 당내 인사문제 등이 불거져 탈당의 명분이 무르익는다면 의외의 결단을 내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더욱이 민주당내 개혁진영과 진보정의당 사이의 연결고리 역할을 해왔던 유시민 씨의 정계은퇴는 문 의원의 어깨에 더 강한 짐을 지우고 있습니다. 만약 이들 세력이 민주당에서 이탈해 독자세력을 형성한다면 대한민국정치사에서 최초로 대중적 지지기반을 갖춘 대중정당이 출현하게 됩니다.

 

잔류냐 이탈이냐

 

그동안 민주당 안에는 지나치게 상이한 가치관과 철학을 가진 세력들이 공존해왔고, 대선패배 이후 나타난 심각한 내분과 이탈은 그 공존이 실패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내년 지방선거는 그들이 갈라서는 분기점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선거를 앞두고 논의될 야권연대는 두 세력이 가진 철학과 노선의 차이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날만한 이슈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향후 야권정계개편의 향방은 문재인으로 상징되는 민주당내 중도진보세력이 잔류하느냐 이탈하는냐에 달려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민주당에 잔류한다면 대한민국은 거대보수3당이 지배하는 정치지형을 갖게 될 것이며, 만약 그들이 이탈해 독자세력화한다면 대한민국 최초의 대중적 진보정당이 탄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어느 쪽이 한국정치의 발전에 도움이 될지 현명한 판단을 기대합니다.

 

관련글 - 민주당의 우향우, 그들에게 분열을 허하라

관련글 - 문재인의 민주당과 김한길의 민주당, 그 살벌한 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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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다람쥐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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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5.06 12:24 신고

    민주당은 확실히 한 표는 잃었습니다.
    그동안 비판적 지지니 야권대통합이니 하는 구호에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찍어주곤 했는데
    앞으로는 그럴 일이 절대 없을 것 같으니 말입니다.

  2. 2013.05.06 13:52 신고

    새누리당은 김한길 체제를 옹호하는 듯한 태도를 취할 겁니다. 그러면서 민주당 내 우경세력과 진보세력 사이에서 이간질을 하겠지요. 민주당 분열이 목적일 겁니다.

  3. 2013.05.07 05:17 신고

    분열을 일삼던 김한길 이 미친새끼 더러워 민주당 떠난다

?

 

<민주통합당의 우향우를 주도하고 있는 김한길 의원>

 

분열은 죄악이 아니다

 

정당을 뜻하는 영단어 party는 부분, 일부를 뜻하는 라틴어 pars라는 단어에서 유래하여 '부분으로 나누다'는 뜻의 중세 영어 partie를 거쳐 오늘날의 의미를 담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어원을 따라 올라가면 정당이란 조직이 ‘분열’에 기초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전체주의가 강한 힘을 발휘하는 나라에서는 갈등과 분열을 죄악시하는 경향이 나타납니다. 분열과 갈등은 그 자체로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닙니다. 질병이 아닌 ‘증상’일 뿐인 것이죠. 오히려 경우에 따라 분열은 갈등의 좋은 해결책이 될 수 있습니다. 원인이 아닌 현상에 대해 좋고 나쁨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한 일입니다. 정당과 정당간의, 혹은 정당 내부의 갈등과 분열을 바라보는 시각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다당제가 허용되는 민주국가에서, 더욱이 대한민국과 같이 정당정치가 온전히 뿌리내리지 못한 나라에서 일어나는 정당들의 분열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분당(2007),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분당(2008), 통합진보당과 진보정의당의 분당(2012)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주요 정당들의 ‘분당사’입니다. 이것들이 이전에(20세기에) 나타났던 분당들과 달랐던 점은 당 내부의 철학과 노선을 달리하는 세력들 간의 분열이었다는 점입니다. 서로 다른 철학을 확인한 정치인들이 다른 정당으로 갈라서는 것은 극히 자연스럽고 바람직한 현상입니다. 그러나 한국의 야권지지자들은 정당의 분열을 바라보는 시각이 대체로 부정적입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분열자체를 죄악시하는 전체주의적 문화 때문이며, 다른 하나는 분열에 대한 평가가 지나치게 정치공학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적전분열론’입니다. “거대 보수정당을 앞에 두고 우리끼리 분열하면 안된다”라는 논리이죠. 우리 국민들을 이렇게 ‘정치공학자’로 만든 것은 결선투표가 존재하지 않는 이나라의 불완전한 민주적 절차입니다. 이것은 유시민 씨의 말처럼 우리사회가 매우 강한 양당제 복원력을 갖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정당의 분열이 죄악처럼 여겨지는 나라. ‘분열의 인정’에서부터 비롯된 정당이라는 조직이 분열을 인정하지 못하는 모순에 빠진 것입니다.

 

'중도지향'이라는 함정

 

지난 15일 민주당 전당대회준비위원회는 민주통합당의 당명을 '민주당'으로 변경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또 당강령 중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정당'이라는 어구도 '중산층과 서민'으로 변경하고, '한미FTA재검토'라는 문구도 제외한다고 밝혔습니다. 시민사회, 노동계의 결합으로 민주당이 재창당지 1년 5개월만에 사실상의 '보수회귀'를 선언한 셈입니다. '중도지향'이라는 말은 '탈진보'와 같은 말입니다. 보편적 복지, 경제민주화와 같은 진보개혁노선에 힘을 실어 왔던 민주당이 예전의 보수성을 회복해 노무현 이전의 민주당으로 회귀하려 하는 것입니다. 

 

그동안 민주당 안에는 지나치게 상이한 가치관과 철학을 가진 세력들이 공존해왔고, 대선패배 이후 나타난 심각한 내분은 그 공존이 실패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평가하는 이유는 갈등의 크기가 아닌 갈등의 양상때문입니다. 김한길 의원으로 대표되는 친노퇴진론자들의 '우향우' 주장은 민주당의 진보개혁노선을 바라던 지지자들에겐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종류의 것들입니다. 이는 지금의 민주당이 포괄한 스펙트럼의 폭이 얼마나 광범위하고 비현실적인 것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제도정치에서 시민의 정치적 의사표출을 대리하는 대중정당은 자신들이 어떤 정당인지, 무엇을 지향하는지를 선명하게 답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음 대선이 4년 8개월이나 남아있고, 지난 대선패배의 충격이 어느정도 가신 지금이 그 적기일지 모릅니다. 민주당은 지금 노무현 이전의 보수성을 회복하고 '구 민주당'으로 회귀하느냐, 이들과 싸워 자유주의+사민주의정당의 길을 걸어가느냐 하는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습니다. 

 

한쪽은 오른쪽으로 움직여서 안철수현상을 흡수해야 한다는, 다른 한쪽은 왼쪽으로 움직여서 새누리당과의 차별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지나치게 넓게 포괄하고 있는 스펙트럼에서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양쪽이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선택에 대한 결과는 크게 다를 것입니다. 다음은 그 차이에 관한 글입니다.

 

관련글 - 문재인의 민주당과 김한길의 민주당, 그 살벌한 간극 

 

  <민주당 대선평가보고서를 주관한 한상진 교수. 오마이뉴스>

거짓상관관계

 

얼마 전 발표된 민주통합당의 대선평가보고서가 화제입니다. 일반 직장이었다면 저런 보고서를 제출한 사람은 분명 시말서를 써야 했을 겁니다. 누구에게, 무엇을, 왜 보고하려 하는지부터 무척 혼란스러운 저 보고서는 심지어 '누가' 작성했는지조차 나와있지 않습니다. 작성자 스스로가 떳떳하지 못한, 보고서의 기본적인 요건마저 갖추지 못한 '괴문서'를 바탕으로 대선패배를 분석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입니다. 물론 이 보고서의 내용을 신뢰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36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보고서를 요약하면 "친노 물러가라"입니다. 민주당이 지나치게 좌클릭한 결과 중도층의 이탈을 가져왔고 그것이 대선패배의 결정적인 원인이었다는 것이 보고서의 핵심입니다. 

 

한마디로 '거짓상관관계'입니다. 민주당의 진보개혁노선 선택은 시대적 요구에 발맞춘 합리적인 선택이었고, 2000년대 이후 달라진 한국의 정치지형에서 민주당이 제1야당으로 명맥을 이어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보고서의 주장은 김한길 의원이 근 10년간 주장해온 '친노퇴진론'과 놀랍게도 유사합니다. 보고서의 내용을 그대로 받아 '중도지향'을 공약하고 있는 김 의원은 때마침 보고서 발표시기와 맞물려 당권을 향해 순항중입니다.

 

관련글 - 홍준표와 김한길, 그 얄팍한 증오의 정치

 

야권의 합리적 분화 인정해야

 

이제 우리사회는 정당의 합리적 분열을 인정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당의 ‘합리적 분화’는 정당들 간의 경쟁을 유도하며 유권자들의 다양한 정치적 요구를 제도정치권으로 표출해주는 순기능을 합니다. 예를 들어 민주당 지지자들 중에는 한미FTA에 찬성하는 사람도 있고, 반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보편적 복지를 지지하는 사람과 선별적 복지를 지지하는 사람이 섞여 있습니다. 이들이 똑같이 민주당에 표를 던진다면 민주당은 저 이슈들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게 될까요? 오늘날의 무능하고 유약하며, 우유부단한 민주당의 이미지는 이렇게 형성된 것입니다. 

 

김한길 의원과 대선평가보고서를 작성한 이들이 간과한 것은 이미 야권지지자들이 민주당이외의 대안에 익숙하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의 인식은 야권에 민주당이외의 마땅한 선택지가 없었던 20세기에 머물러 있습니다. 진보진영에 걸출한 스타정치인들이 즐비해 있고 진보정당이 두자리수 의석을 보유하고 있는 오늘날의 현실과는 동떨어진 인식입니다. 지난 대선은 더이상 거대 야당 혼자의 힘만으론 정권창출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줬습니다. 사표방지라는 양당체제 유지의 중요한 목적이 사라진 것이죠.

 

2004년 유시민 씨가 촉발한 사표논쟁은 그 변화를 알리는 신호였습니다. 진보정당의 지지율이 2%에도 못 미치던 20세기, 민주당은 사표방지호소만으로 간단하게 야권 전체를 응집시킬 수 있는 골리앗이었습니다. 2000년대 초 진보진영의 성장으로 인해 더 이상 사표방지호소가 먹히지 않자 민주당은 야권연대라는 고육지책을 선택해야 했고, 그 결과 더 많은 야권지지자들이 민주당만이 대안이 아님을 인식하게 됐습니다.

 

문재인 후보를 비롯해 그동안 민주당의 진보개혁노선을 주도했던 인물들도 그것을 모르지 않을 것입니다. 더 중요한 사실은 예전과 달리 민주당내 개혁세력과 군소진보정당들간의 스펙트럼 차이가 그리 크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미 수차례 선거에서 성사됐던 야권연대의 경험이 이를 증명합니다. 더이상 민주당의 우경화를 당내에서 견제할 길이 없다면 다른 합리적선택을 하는 쪽이 나아 보입니다.   

 

여전히 거친 정치환경에서 벗어나지 못한 대한민국에는 오래전에 야성을 상실한 거대야당보다 작지만 강력한 야성을 가진 여러개의 야당이 더 필요할지 모르겠습니다. 야성을 잃은 맹수는 자연도태가 순리입니다. 민주당의 합리적 분열을 지지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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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다람쥐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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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4.18 10:54 신고

    변화된 정치지형과 진화한 국민의 요구에 민주당이 부응하지 못하고 있어, 답답한 건 진보 성향의 국민들입니다. 1980년대의 영화 우뢰매가 아이들에게 인기를 끌었다고 오늘날에도 통하리라 생각하는 건 오산이죠. "분열 자체를 죄악시하는 전체주의적 문화"라는 단어가 특히 마음에 와닿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2. 2013.04.18 13:12 신고

    쓰디쓰고 슬픈 일입니다
    글 잘읽고갑니다~

<이들이 같은 깃발아래 뭉치는 것이 가능할까>


장님 코끼리 만지기

 

어떤 사람은 민주당을 “새누리당 2중대”라며 비난하고, 어떤 사람은 “무능한 좌파정당”이라 비난합니다. 이런 비난들은 모두 맞으며, 모두 틀립니다. 민주통합당과 같이 거대한 스펙트럼을 포괄하고 있는 대중정당의 정체성을 한마디로 함축하기란 불가능합니다. 문재인의 민주당도, 김한길의 민주당도 모두 같은 당입니다. 이렇게 민주당에 대한 평가가 장님 코끼리 만지듯 나오다보니 이 당이 처한 난국을 타개할 해법도 중구난방일 수밖에 없습니다.  

 

어느 당이든 당권을 향한 내부의 힘겨루기는 존재합니다. 당권경쟁은 당의 경쟁력을 강화시키기도 하고, 반대로 당을 망하게 하기도 합니다. 당권경쟁의 양상이 정략적이고 소모적인 권력투쟁인지, 가치관과 철학에 따른 합리적 노선투쟁인지를 구분하려면 '계파'를 이루고 있는 무리의 속성을 파악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골육상쟁에 가까운  당권투쟁을 벌였던 새누리당의 '친이'와 '친박'같은 계파의 경우 정치적 스펙트럼상의 차이가 거의 없는, 동일선상의 무리들이었습니다. 굳이 분류하자면 '정통수구'와 '이권수구'의 차이정도랄까요? 그런 면에서 친박과 친이라는 무리는 두 거물급 정치인들을 향한 충성관계에 따라 형성된 일종의 정치적 이익결사체였고, 그들의 투쟁은 어느 쪽이 당권을 장악하더라도 당의 철학이나 노선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친이가 장악했던 한나라당과 친박이 장악한 새누리당사이에서는 아무런 철학의 차이를 읽어낼 수 없습니다.

 

그런데 모든 당의 당권투쟁이 저렇게 1차원적인 것은 아닙니다. 대선이후 벌어지고 있는 민주당의 당권경쟁의 양상은 그것보다 조금 복잡합니다. 그것을 '주류 VS 비주류'라 부르든 '친노VS 비노'라 부르든 경쟁의 내용과 구도는 다르지 않습니다. (이 글에서 '친노', '주류'와 같은 표현은 편의상의 구분임을 밝힙니다)

 

민주당의 주류와 비주류는 새누리의 친이, 친박과는 달리 정치적 스펙트럼에서 확연한 차이를 가집니다. 소위 '친노', '주류'라 표현되는 민주당의 인사들은 손학규, 김한길로 대표되는 비주류에 비해 상당히 진보적인 정체성을 가집니다. 친노라는 세력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이들의 정체성은 단순히 죽은 정치인과의 친소관계가 아닌 이념과 가치관을 중심으로 한 가치연대에 가깝습니다. 이러한 경향성은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출마했던 문재인 후보의 공약에서 잘 드러납니다. 당시 민주장 비주류의 기수였던 손학규 후보는 참여정부의 실정을 집요하게 파고들었고 민주당이 노선을 대폭 수정해 적극적으로 중도표심을 잡아야 한다 역설했습니다. 반면 문재인 후보는 참여정부의 과오를 인정하면서도 진보정당들의 공약과 비교해도 별반 차이가 없을 정도의 개혁적인 정책들을 공약으로 내세웠습니다. 결국 민주당의 지지자들은 경선에서 문재인 후보에게 13연승을 몰아주면서 민주당의 변화를 지지했습니다.  

 


잡탕정당의 비애

 

민주통합당은 다당제 정치제도하에 존재했다면 2~3개의 정당으로 갈라지는 것이 당연한 정당입니다. 민주당이 포괄하는 스펙트럼이 지금처럼 비대해진 이유는 제도적으로 강제된 양당제 속에서 거대 보수1당과 맞서기 위해 지나치게 외연을 확장해온 결과입니다. 사실 민주통합당이 안고 있는 문제들은 전세계 모든 포괄정당(catch-all party)들이 안고 있는 보편적인 문제입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또 다른 포괄정당인 새누리당에게는 왜 이런 문제가 나타나지 않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두 정당이 한국의 정치지형에서 자리하고 있는 지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새누리당에서도 (한나라당 시절) 민주당의 '주류VS비주류'경쟁과 유사한 내부 노선투쟁이 있었습니다. 한나라당의 중도투쟁을 주도하던 소장파들의 활약은 친박과 친이의 계파경쟁이 본격화 된 2000년대 중반 이후 맥이 끊겼습니다. 중도정치, 서민정치를 주장하던 소장파의 목소리가 사라진 지금 새누리당의 스펙트럼은 완전히 오른쪽에 고착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새누리당은 자신들의 오른쪽에 정당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새누리당이 외연의 문제에서 유일하게 신경써야 할 것은 왼쪽의 중도진영을 얼마나 포괄하는가의 문제인데, 왼쪽과 오른쪽 모두를 신경써야 하는 신세의 민주통합당보다는 한결 수월합니다.

 

2000년대 초만 해도 민주당도 새누리당과 비슷한 입장에 서 있었습니다. 자신의 왼편에 유의미한 진보정당이 존재하지 않던 시절 민주당은 새누리당과 거의 차이가 나지 않는 정체성을 공유하면서 안정된 반반싸움을 펼쳐왔습니다. 그런데 2002년 지방선거와 2004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의 약진이 나타나면서 민주당내에서도 노선투쟁이 벌어집니다. 진보정당의 성장은 우리사회에 진보적 개혁의 에너지가 싹을 틔웠음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민주당에서는 이러한 변화의 바람에 발맞춰 '정풍운동'이 일어났고,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과 맞물려 새로운 세력이 전면에 등장했습니다. 이른바 ‘친노세력’입니다. 그들은 기존의 보수적인 민주당의 틀로는 담아내기 불가능했던 진보적 에너지를 담아냈지만, 반대편에서는 보수세력의 이탈을 가져와 분당, 탈당과 같은 내홍을 불러오는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열린우리당 시절 실용주의를 내세우며 당의 보수화를 주도했고, 2008년 23명의 의원들과 함께 당을 탈당하여 독자노선을 선언했던 김한길 의원은 그 대척점에 섰던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문재인의 민주당, 김한길의 민주당

 

5월 4일 예정된 민주통합당 전당대회에서는 김한길 의원이 당대표로 선출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대의원을 상대로한 여론조사결과 김한길 후보가 다른 후보들을 압도적인 차이로 이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바일투표가 폐지된 이번선거에서 큰 반전이 일어나지 않은 한 김한길체제의 출범은 기정사실화 되는 분위기입니다. 표면적으로 보면 김한길 체제의 출범은 '비주류의 반격'이나 '친노시대의 종식'쯤으로 이해됩니다. 그가 줄기차게 친노퇴진을 외치던 비주류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좀 더 멀리서 바라본다면 이것은 일종의 회귀입니다. 김한길 의원은 작년 4.11총선 배패의 원인이 민주당의 좌클릭때문이라 주장한 바 있습니다. 당시 당쇄신의 해법으로 친노퇴진을 제시했던 김 의원의 문제인식은 이번 대선패배의 원인을 문재인 후보에게서 찾는 것과 맥락이 같습니다. 김 의원은 비단 지난 총선과 대선뿐 아니라 17대 국회이후 민주당이 패배한 모든 선거의 원인을 '친노'에게서 찾았습니다. 김한길이란 인물의 정치사에서 '친노퇴진'이란 구호를 빼고나면 먼지만 남습니다. 김한길의 민주당은 노무현 이전의 민주당, 즉 확실히 보장된 양당제 속에서 한나라당과 '안전한 전투'를 벌이던 시절의 보수정당으로 회귀를 뜻합니다. 민주당의 이러한 우클릭이 과연 당의 위기를 수습하는데 적절한 대안인가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우려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김한길의 민주당이 몰락의 길을 걸을 가능성이 큰 이유는 대한민국의 달라진 정치지형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보수일색의 정치환경에서 벗어나 시민들의 다양한 정치적 요구가 분출되고 있는 21세기 대한민국에는 거대한 보수정당이 두 개나 존재해야 할 이유가 사라진 것이죠. 지금의 민주통합당은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발맞춰 지난 2011년말 시민사회, 노동계의 연합을 통해 재창당된 정당입니다. 때문에 민주통합당은 기존의 민주당과는 달리 태생적으로 일정한 진보적 색채를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재창당 이후 대선까지 민주통합당의 주류가 표방하 정체성은 기존 민주당에서 한 발짝 왼쪽으로 다가간 진보적 자유주의나 온건한 사민주의쯤 되는 것이었니다. 민주당의 이러한 좌클릭은 한국사회의 달라진 정치지형의 반영이었습니다. 그 결과 군소진보정당들과의 간극이 좁아졌고 이러한 왼쪽으로의 외연확대는 여러 선거에서 진보정당들과 야권연대가 성사됐던 배경이 되었습니다. 안정적인 보수양당체제의 한 축이었던 민주당이 적극적으로 진보정당들과 연대를 모색했다는 것 자체가 예전과는 달라진 정치환경을 인정한 셈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외연의 확대가 기존 민주당의 보수성을 그대로 간직한채 이루어진 결과 스펙트럼이 지나치게 확장되었다는데 있습니다. 쉽게 말해 가랑이가 찢어진 것이죠.   

 

대중정당은 시대정신과 함께 호흡할 때 존재의 의미를 갖습니다. 과거 독재정권에 맞서던 시절 제도권 내의 유일한 대항세력이었던 민주당은 존재의 이유가 명확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정치적 열망이 넘쳐나는 2013년의 대한민국에 또 다른 거대보수정당은 존재의 의미가 없습니다. 곧 용도폐기 될 것만 같은 그들의 병든 노년을 지켜보는 마음이 씁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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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다람쥐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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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4.15 10:23 신고

    너무 답답하고 씁쓸하고 ...맘도 아픕니다.

  2. 2013.05.03 17:00 신고

    처음으로 이 곳 글을 읽었는데, 글이 참 찰지네요 ㅎㅎㅎ
    잘 읽었습니다. 더불어, 빵터졌던 부분
    [김한길이란 인물의 정치사에서 '친노퇴진'이란 구호를 빼고나면 먼지만 남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음에 또 올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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