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국회가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제출요구안을 의결했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회의록 공개 찬성을 당론으로 정한 가운데 진보정당 의원들과 안철수 의원 등 무소속 3명, 민주당 의원 4명 등 총 17명만이 반대표를 던져 본회의 표결은 압도적으로 가결됐다.  

 

많은 사람들이 정상회담 회의록을 ‘판도라의 상자’라고 표현한다. 열어서는 안 될 것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이것의 공개에 반대하는 시각을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1. 국가 정상간의 대화록이 국내정치 정쟁의 수단으로 사용되어선 안된다는 시각 

 

 2. 국정원정국의 국면전환을 노리는 여권의 공작이라는 시각

 

 3. 대화록의 내용이 자신들에게 불리하기 때문에 공개에 반대하는 시각

 

<1번>은 대화록 공개에 찬성하는 사람도 반대하는 사람도 모두가 동의하는 대원칙이다. 다만 공개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소모적인 NLL 정쟁을 끝내야 한다는 등의 '목적'이 1번의 대원칙을 넘어선다고 판단한 것이며, 공개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고 판단했을 뿐이다.

 

<2번>은 야권과 시민사회의 우려, <3번>은 여권과 청와대의 우려다. 2, 3번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민주 양당은 공개 찬성이라는 전략적 판단을 내렸다. 이것이 양당의 본심인지는 알 수 없다. 이미 표결 자체가 찬성이 강요된 기싸움이었기 때문이다. NLL 포기발언의 진위를 놓고 치열하게 맞섰던 두 당이 먼저 꼬리를 내리는 모양새를 취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새누리당에게 유리한 경우

 

<2번>의 우려가 현실화되는 경우다. 지난달 21일 문재인 의원은 긴급성명을 발표하고 새누리당의 사과를 요구하고 10.4 대화록 전문을 공개할 것을 주장했다. 소모적인 정쟁을 끝내자는 선의의 제안이었을지 모르나, 처음부터 NLL 포기발언의 진위에는 관심이 없어보였던 새누리당이 그런 '순수한' 사과요구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만무했다. 문 의원이 의원직을 내건 초강수를 던진 것은 고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의 '누명'을 벗겨야한다는 책임의식의 발로일 것이다. 문 의원은 그 '목적'이 <1번> '대원칙'보다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나는 그의 선택이 오판이라 생각한다. 대화록 내용에 자신이 있었던 민주당은 문 의원의 입장을 받아들였고, 결국 NLL 논쟁을 연장전으로 몰고갔다.

 

28일 한국갤럽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NLL 포기발언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여론이 55%, '맞다'라고 생각하는 여론이 34%로 나타났다. 리얼미터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정원의 대화록 무단투척 이후 새누리당이 전주 대비 5.2%p 하락한 43.4%, 민주당은 3.8%p 상승한 25.3%를 기록했다. 양당의 지지율 격차는 전주 27.1%p에서 18.1%p로 대폭 좁혀졌다. NLL 역풍으로 해석된다.

 

민주당은 이미 승부가 난 게임에 연장전을 제안한 셈이다. 대화록 전문을 공개한다고 해서 나머지 34%의 인식이 달라질거라 보지 않는다. 민주당이 굳이 원칙을 거스르는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확인사살'을 할 이유가 있었는지 의문이다. 새누리당은 이미 진 게임을 연장전으로 끌고가게 됐다. <2번>의 이익을 확실히 누리게 된 것이다.  

 

대화록 NLL 발언과 관련한 새누리당의 한글파괴적 해석은 합리적인 논쟁이 도저히 불가능한 수준의 것이었다. 개와 고양이가 대화를 나눌수는 없는 일이다. 이러한 NLL 논쟁의 비합리성을 잘 알고 있을 민주당이 대화록 공개에 찬성하는 모습을 보면서 민주당이 국정원정국에 불이 붙는 것을 원치 않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었다.

 

민주당에게 유리한 경우

 

새누리당이 <3번>을 걱정하는 이유는 회의록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포기발언이 없었다는 사실을 그들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국정원이 대화록을 기습공개한 다음날 조선일보는 “노무현 사실상 NLL 포기”라는 기사를 1면 타이틀로 실었다. 일반에게 전문이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일반에게 회의록 전문이 공개된다면 새누리당은 이런 지원군을 만나기 어려워진다. 아무리 대화록의 양이 방대하다 하더라도 일반에 공개되어 국민들의 접근성이 높아진다면 이전과 같은 막무가내식 우기기는 곤란해질 것이다. “의원직을 걸겠다”는 문재인 의원의 강수에 새누리당이 "뭐 그럴 것까지는 없고.."라며 한발 물러섰던 것도 이런 맥락이다. 

 

한국인의 문맹률은 1%가 채 되지 않는다. 회의록 전문이 일반에게 공개된다면 한글을 읽을 줄 아는 국민이라면 누구나 새누리당의 주장이 거짓임을 확인 할 수 있게 된다. 새누리당의 입장에서는 똑똑한 국민들을 둔 것이 뼈아플 일이다.  

 

이미 망한 싸움

 

여론조사로 드러나는 숫자들은 회의록 공개가 민주당에게 유리함을 보여주는 듯하지만, 새누리당에게 치명적인 이슈인 국정원정국을 비껴갈 시간을 벌었다는 측면에서 보면 새누리당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이슈라고도 할 수 없다. 회의록 공개를 두고 양당이 꾸고 있는 동상이몽은 매우 전형적인 '정쟁'을 불러왔다. 그들이 회의록 공개를 찬성한 이유에서는 <1번>의 원칙을 무시할만한 어떠한 대의명분도 발견되지 않는다.

  

회의록 전문공개는 새누리-민주 각자에게 파국을 불러올 판도라의 상자일수도, 희망을 안겨줄 지니의 램프일수도 있다. 그들의 손익계산이 어떻든 분명한 것은 회의록 공개가 대한민국의 불행이라는 사실이다. 이것이 공개되는 순간 대한민국은 정상회담 대화록이 자국정치에서 정쟁의 수단으로 활용되는 나라로 공인된다. 어떤 나라의 정상이 이런 나라의 대통령과 ‘비밀스런 이야기’를 나누고자 하겠는가. 우리는 이미 망한거다.

 

관련글 - 노무현의 NLL과 박정희의 독도폭파론

관련글 - 정문헌-서상기, 그들의 공갈배수진(恐喝背水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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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다람쥐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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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7.03 19:59 신고

    아아 그렇군요 뭔가 석연치않았어요 문재인의원의 전면공개를 주장할땐 정면승부를 거는거같아 시원하긴 했는데 이미 어느정도 끝난 엔엘엘문제로 더중요한 국정원문제해결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드네요
    정말 대화수준이 안되고 한글해독력이 파괴적인 인간의탈을쓴 저들과 승부하려는거자체가 무리고 험난한일이네요
    진공청소기로 싹 쓸어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정말 새누리당것들 보기만해도 역겹습니다

  2. 2013.07.04 08:37 신고

    국정원 대선개입 문제가 이미 결정난 승부일까요 ?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전 국정원장 원세훈의 일관된 주장이

    있습니다. 노무현,문재인,민주당은 종북이다. 종북세력의 집권은 막아야한다. 그럼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가 무엇

    인가 하면 NLL 양보라는 논리입니다. NLL 을 양보했으니 노무현, 문재인은 종북이다 라는 원세훈의 주장이

    근거없다라고 결정되지 않는한 선거개입이 아니라 국정원의 고유임무로 판정될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새누리의 NLL 이슈화는 국정원 사건의 물타기가 아니라 국정원 사건의 정당성, 원세훈의 무죄를

    주장하는 근거라는 것입니다. 원세훈이 무죄라면 국정원의 지시를 받은 김용판도 무죄라는 것이며, 결국

    새누리의 NLL 논쟁에 적극적인 대처와 사실확인이 명확하지 않으면 국정원 사건도 해결될수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현재의 상황은 대화록 비공개와 국정원 사건 지지부진이냐, 대화록 공개와 국정원 사건 해결이냐는

    양대 선택의 문제라고 보는 것입니다. 아프지만 선택할수 밖에 없는 결정입니다.

 

<기자들과 산행중인 문재인 의원 출처:오마이뉴스>

장장 6개월간의 지지부진한 수사가 끝나고 국정원 대선개입사건에 대한 검찰수사결과가 발표됐다. 사건의 책임에 대한 시각은 저마다 다르다. 원세훈 전 원장의 처벌에 만족할 사람도 있고, 이명박 전 대통령의 처벌을 원하는 사람도 있다. 박근혜 정부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사람도 있으며,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고 판단은 각자의 몫이다.

 

결코 해서는 안될 말 "이제 와서"라니

 

어제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석패했던 문재인 의원이 이와 관련해 자신의 명확한 입장을 밝혔다. 이날 문 의원은 지난 대선 기간 출입기자들과 함께한 산행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대선 때 박근혜 당시 후보가 '자기를 음해하기 위해서 민주당이 (국정원 사건을) 조작했다고 나를 공격하면서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날 경우 내가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뒤집어 말하면 사실로 드러나면 박근혜 대통령이 책임져야 한다는 것"

 

직설화법으로 박근혜 대통령에게 책임을 물은 것이다. 문 의원은 이어서 '책임의 수위'에 관해서도 언급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나 이제와서 선거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는 없고, 그건 바람직하지 못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원 사건을 제대로 수사하게 하고 엄정하게 처리해 국정원과 경찰을 바로 서게 만드는 계기로 만들어 주면, 그것으로 책임을 다하는 것"

 

문 의원은 강한 어조로 대통령의 책임을 이야기했지만, 그 책임의 범위는 '엄정수사'로 분명히 못박았다. 몇몇 당혹한 진보매체들은 애써 문재인의 '분노'에 초점을 맞췄지만, 어제 발언에서 주목할 부분은 그런 일반론적인 발언에 있지 않았다. 대선패배의 당사자가 사실상 국정원 대선개입사건이 박근혜 정권의 정통성과는 무관하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필자는 문 의원의 입장에 동의하지 못하나 그의 판단을 존중한다. 패배의 당사자로서 조심스러울 수 있으며, 실제로 그렇게 판단했을 수 있다. 그러나 문재인 의원은 국정원사건에 대한 자신의 입장이 무엇이었든 상관없이 결코 해서는 안 될 실언을 했다. “이제 와서”라는 표현이 그것이다. 이 말이 얼마나 절망적이고 비참한 것인지 보자.

 

<명언의 주인공 새누리당 장윤석 의원>

부정을 사후승인하다

 

한국현대사의 비극을 한마디로 함축하는 '명언'이 있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 - 1995. 장윤석 검사(현 새누리당 의원)

 

전두환 씨의 내란죄 혐의를 수사했던 검찰이 '공소권없음'결정을 내리면서 그에 대한 이유로 들었던 유명한 궤변이다. 그런데, 저 문장 앞에는 생략된 말이 있다. 그 말을 붙여쓰면 이렇게 된다.

 

“(이제 와서)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

 

다음은 어제 문재인 의원의 발언이다.

 

“이제 와서 성공한 부정선거 책임을 대통령에게 물을 순 없다”

 

물론 두 발언이 나온 맥락은 조금 다르다. 전두환 씨는 12.12쿠데타를 일으킨 가해자였지만, (지금까지 밝혀진 결과에 따르면) 국정원사건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가해자가 아닌 수혜자일 뿐이다. 문 의원은 가해자가 아닌 수혜자에게 부정선거의 책임을 묻는 것에 대해 반대한 것이다.

 

그러나 두 문장에서 “이제 와서”의 사용법은 문맥상 정확히 일치한다. 두 문장은 공히 책임의 옳고 그름이 아닌 '시기의 문제'를 따지고 있다. 부정의 성공을 '사후승인'하는 태도다. 

 

당시 검찰의 "성공한 쿠데타"발언은 엄청난 국민적 공분을 불러왔고, 전두환을 보호하려했던 이 발언은 역설적으로 그해 12월 '5·18특별법'이 만들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국민들이 장윤석 검사의 말에 분노했던 것은 이 말이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해선 안된다'는 도덕률을 어기고 있기 때문이었다.    

 

한국현대사의 비극은 친일세력과 쿠데타세력을 단죄하지 못하고 사후승인했던 것에서 비롯됐다. "이제 와서 처벌할 수 없다"는 비겁한 타협가들의 논리는 한국의 현대사를 망가뜨리고 사회정의를 실종시킨 주범이다. 도덕적인 원칙주의자라고 믿어왔던 문재인 의원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온 것은 대단히 실망스럽다. 그가 투사이길 바라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국정원사건과 박근혜 대통령의 무관함을 말하려했다면 그는 "이제 와서"가 아닌 다른 근거를 들었어야 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은 생전에 "제가 새시대의 맏이 인줄 알았더니 알고 보니 구시대의 막내였다"고 술회한 적이 있다. 문재인 의원 역시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는 구시대의 논리로 불의와 타협한다면 결코 새시대를 열 주인공이 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지난 대선기간 문재인이 '매우 훌륭한 대통령감'이라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다만 어제 발언을 듣고 한 가지 단서가 붙었다.

 

평화롭고 정의로운 나라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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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다람쥐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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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6.17 12:21 신고

    저도 문재인 의원의 견해는 존중하지만
    책임소재의 규명은 별개로 봅니다.
    패배자로서, 지도자로서의 책임감은 책임소재 규명 다음의 문제겠지요.
    어쨌든 박근혜 대통령이 경쟁자였던 아니 피해자였던 문재인 의원이 밝힌대로 최소한의 책임이나마 질 수 있을지 지켜보겠습니다.

  2. 2013.06.17 16:48 신고

    격하게 공감하고 갑니다.
    "이제와서" 가 용인된다면,
    아무리 큰 잘못을 해도, 버티면 끝나는 거 겠지요.

  3. 2013.06.21 14:04 신고

    문재인의원의 생각이 49% 응원하고 지지한 국민들의 생각은 아닌듯합니다.
    아니 박에게 투표한 51%도 생각이 많이 바뀌었을 것입니다.
    이나라는 국회의원보다 국민들이 나라를 더 생각합니다.
    49%를 대표했던 문재인의원이 그런 결정을 내리기 전 국민들께 물어보셨나요?

  4. 2013.06.21 22:49 신고

    언론에서 조작한 신문기사 타이틀이었습니다.
    청와대 정무수석실은 이날 밤늦은 시간 ‘문재인, 박 대통령이 책임져야’라고
    기사 제목을 단 매체에 전화를 돌려 제목을 바꿔줄 것을 요청했다고 합니다.
    조선비즈에서 다룬 기사 내용입니다.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6/19/2013061901647.html

    문 의원은 이날 작심한 듯 “분노한다”라는 단어를 연거푸 사용하며 “박근혜 대통령이 책임져야 한다”고 격정을 토로했습니다. 그는 “대선 때 박근혜 당시 후보가 자기를 음해하기 위해 민주당이 조작했다고 공격하면서 사실이 아닐 경우 제가, 문 후보가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했었다”라며 “뒤집어 말하면 사실로 드러나면 박 대통령이 책임져야 한다는 말 아니겠나. 저는 박 대통령이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 기사 내용 중 발췌-


    대부분의 사람들은 문재인이 책임의식 없이 말을 함부로 꺼내어
    실망했다고 할 겁니다.
    하지만 문재인 씨는 분명 '박근혜 책임져야' 라고 말을 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엔 총칼만 안 들었지 군부독재의 망령이 다시
    일어서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입니다. 시국선언을 한 총학생회더러
    '전체가 시국선언에 찬성하는 건 아니다' 라며 남북학생연합회인지 뭔지는
    시국선언을 중단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고 하지요.
    이렇게 대한민국에 꼴통들이 많았는지는 몰랐네요.
    모쪼록 국정원 수사는 꼭 해야 하고, 밝혀져야 합니다.

  5. 2016.11.22 21:11 신고

    문재인처럼 착한 지도자는
    태평성대라면 모를까
    난세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헌 술은 헌 부대에

 

민주당의 전당대회가 끝이 났습니다. 당대표에는 예상대로 김한길 의원이 선출되었고, 예고했던 대로 개정된 강령이 발표됐습니다. 민주통합당→민주당으로의 당명개정과 함께 민주통합당의 정체성을 담고 있었던 당강령 역시 2011년 재창당 이전의 그것으로 상당부분 회귀했습니다.

 

사실 대한민국 대중정당들의 강령이라는 것은 '좋은 말들의 합'이나 다름없습니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강령들은 엇비슷한 문구 속에 미묘한 뉘앙스의 차이만이 존재합니다. 잘 모르는 일반인들에게 당명을 가린 채 두 당의 강령을 보여준다면 쉽게 골라내지 못할 것입니다. 앞으로 창당될 안철수신당의 그것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강령을 세세하게 읽고, 외우며 당이 그것에 맞는 정치행위를 하는지 따져보는 꼼꼼한 지지자들도 거의 없습니다.

 

강령을 손본다는 것은 실질적인 내용의 변화라기보다는 하나의 선언이자 공언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이번 선언의 키워드는 잘 알려진대로 '보수회귀'입니다. 흔히 어떤 조직의 장이 바뀌면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말로 조직의 변화를 설명합니다. 그런데 민주당의 변화에는 이말이 어울리지 않습니다. 답습과 회귀에서 새로움을 느낄 수는 없기 때문이죠. 

 

김한길 의원은 과거 열린우리당 시절부터 줄기차게 중도지향, 즉 우클릭을 외쳐온 인물입니다. 개정된 강령은 김 의원이 혼자 만든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의 주장을 충실히 담고 있습니다.

 

문구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일은 의미가 없습니다. 나쁜 말을 강령에 넣는 바보정당은 없기 때문이죠. 따져 보아야 할 것은 문구들의 지향점입니다. 김한길 대표의 선출과 개정된 강령이 말하고 있는 것은 '헌 술은 헌 부대에'입니다.

 

반값등록금, 무상의료 추진과 한미FTA, 뉴타운 재검토 조항을 삭제했다는 것은 새누리당과 민주당을 갈랐던 몇 안되던 변별력마저 사라졌음을 의미합니다. '기업의 건전하고 창의적인 경영활동 존중 및 지원', '복지와 함께 선순환하는 질 좋은 성장 지향', '미래지향적 한미동맹의 발전' 이런 개정된 강령들이 주는 느낌은 새누리당 2중대라는 비아냥을 넘어선 '새누리당 그 자체'에 가깝습니다. 이것이 우클릭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은 '정치적 색맹'입니다.

 

 

<민주당 VS 안철수> 의미없는 제로섬 게임

 

현재 대한민국 언론이 가장 관심을 두는 부분은 민주당과 안철수 의원과의 관계입니다. 안 의원의 민주당입당은 현실성이 없어 보입니다. 이 시점에서 가장 쉽게 예측할 수 있는 상황은 안 의원의 신당창당 이후 민주-안철수 양당이 야권의 맹주자리를 놓고 자웅을 겨루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한국정치라는 큰 틀에서 바라볼 때 새로운 민주당과 안철수세력 간의 경쟁 혹은 결합은 별 의미가 없는 일입니다. 동질한 세력들간의 제로섬게임이기 때문이죠. 안철수신당의 '새로움'이나, 민주당의 '전통' 같은 군더더기를 빼고 순수하게 두 당이 서 있는 지점만을 바라보면 아무런 차이를 느낄 수 없습니다. 중도지향을 강화하자던 민주당 쇄신파(?)의 주된 논리는 안철수현상을 흡수하자는 것이었고, 실제로 그것이 이루어진 지금 새누리당 왼쪽에 비슷한 색의 두 세력이 공존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두 당의 경쟁이나 결합이 의미하는 것은 보수2당체제냐, 보수 3당체제냐의 차이일 뿐입니다.  

 

민주통합당은 재창당 이후 한 번도 위기가 아니었던 적이 없었지만 이번 위기는 이전의 것들과 강도가 다릅니다. 5.4전당대회 직전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발표한 정당 지지율을 보면 새누리당과 안철수 신당이 30.7%, 30.9%였고 민주당의 지지율은 그들의 절반 수준인 15.4%였습니다. 심지어 지지율이 10%에도 못미치는 여론조사도 나오는 것을 보면 당에 망조가 들었다는 지지자들의 한탄이 공허한 것이 아님을 알게됩니다. 지금 민주당이 처한 위기가 과연 화합, 탕평과 같은 수사로 타개할 수 있는 수준의 것인지에 대해 많은 이들이 의구심을 갖고 있습니다.  

 

민주당내 중도진보지지층의 향배

 

제도정치에서 시민의 정치적 의사표출을 대리하는 대중정당은 자신들이 어떤 정당인지, 무엇을 지향하는지를 선명하게 답할 필요가 있습니다. 민주당은 이에 대해 김한길 대표의 선출과 개정된 강령으로 답을 내렸습니다. 이제 지지자들에게 남은 것은 변화된 당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것인가, 맞지 않는 옷을 벗고 다른 대안을 선택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김한길호 출범 이후 가장 눈여겨 봐야 할 부분은 민주당이 사실상 철수를 선언한 중도진보진영의 민심이 어떻게 움직이는가 입니다. 이들의 향배에 따라 한국정치가 경직된 보수일색의 정치지형을 맞이하게 될 지, 건강한 좌우 날개를 갖는 지형을 맞이하게 될지가 판가름날 것입니다. 크게 4가지 경우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1. 민주당에 대한 비판적 지지를 계속 이어간다.

 

2. 민주당 지지를 철회하고 진보정당 지지로 선회한다.

 

3. 안철수신당 or 새누리당 지지로 선회한다.

 

4. 어떤 당에도 흡수되지 않고 무당파 정치냉소층으로 남는다.

 

이중 이성적 평가가 불가능한 3번 부류를 논외로 하고 나머지 경우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1. 민주당에 대한 비판적 지지를 계속 이어간다>가 주를 이룰 경우

 

충성도 높은 민주당의 지지자들이 '위험한 변화'보다는 '피곤한 안정'을 택하는 경우입니다. 문재인으로 대표되는 민주당내 온건사민주의 세력이 이탈하지 않고 그대로 당에 잔류하는 경우입니다. 이 경우 중도진보 성향의 지지자들이 민주당의 우클릭을 용인하면서 내부적으로 소극적인 노선투쟁을 이어가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한국의 정치지형은 새누리-민주-안철수 3당이 독점하는 사실상의 '보수대연정'상태로 돌입합니다. 이 경우 3당의 지지율 총합이 90%를 넘어서는 상황이 고착화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진보정치의 입장에서 볼 때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경우이며, 가장 현실화 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기도 합니다. 진보정치가 사실상 말살된 일본식 보수대연정의 정치지형이 형성되는 것이죠. 4번 부류가 많을 경우에도 비슷한 양상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대선 이후 민주당 진보개혁세혁의 구심점이 된 문재인 의원>

<2. 민주당 지지를 철회하고 진보정당 지지로 선회한다>가 주를 이룰 경우

 

지지자 개인의 차원에서 볼 때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지만, 여기에는 결정적인 전제조건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문재인으로 상징되는 민주당내 개혁세력의 이탈입니다. 지난 대선을 거치면서 문재인이라는 인물은 (당내의 위상과는 무관하게) 민주당내 중도진보개혁세력의 상징으로 부상했습니다. 지금 상황에서 문 의원이 움직이지 않은 채 지지층만이 분리∙이탈하는 상황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만약 문 의원이 탈당을 결심한다면 그를 따르는 현역의원의 수와 무관하게 야권지지층을 크게 요동시킬 것입니다. 

 

시기상으로 보면 가까운 시일내 대거 탈당이 이루어질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정치는 명분의 예술입니다. 민주당의 우클릭이 노골화되자 많은 지지자들이 민주당내 개혁세력에게 분당탈당을 요구하고 있지만 명분없는 탈당은 정치적 자해행위나 마찬가지입니다. 전당대회까지 민주당과 함께 한 이상 일정기간 결과에 승복하는 모습을 보일 의무가 있습니다.   

 

문 의원의 성정상 특별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이상 스스로 구심점 역할을 자처하면서 탈당을 주도할 가능성은 낮아 보입니다. 다만 대선평가논쟁과 같은 격한 세력갈등이 지속적으로 이어지거나 당내 인사문제 등이 불거져 탈당의 명분이 무르익는다면 의외의 결단을 내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더욱이 민주당내 개혁진영과 진보정의당 사이의 연결고리 역할을 해왔던 유시민 씨의 정계은퇴는 문 의원의 어깨에 더 강한 짐을 지우고 있습니다. 만약 이들 세력이 민주당에서 이탈해 독자세력을 형성한다면 대한민국정치사에서 최초로 대중적 지지기반을 갖춘 대중정당이 출현하게 됩니다.

 

잔류냐 이탈이냐

 

그동안 민주당 안에는 지나치게 상이한 가치관과 철학을 가진 세력들이 공존해왔고, 대선패배 이후 나타난 심각한 내분과 이탈은 그 공존이 실패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내년 지방선거는 그들이 갈라서는 분기점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선거를 앞두고 논의될 야권연대는 두 세력이 가진 철학과 노선의 차이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날만한 이슈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향후 야권정계개편의 향방은 문재인으로 상징되는 민주당내 중도진보세력이 잔류하느냐 이탈하는냐에 달려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민주당에 잔류한다면 대한민국은 거대보수3당이 지배하는 정치지형을 갖게 될 것이며, 만약 그들이 이탈해 독자세력화한다면 대한민국 최초의 대중적 진보정당이 탄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어느 쪽이 한국정치의 발전에 도움이 될지 현명한 판단을 기대합니다.

 

관련글 - 민주당의 우향우, 그들에게 분열을 허하라

관련글 - 문재인의 민주당과 김한길의 민주당, 그 살벌한 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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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다람쥐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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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5.06 12:24 신고

    민주당은 확실히 한 표는 잃었습니다.
    그동안 비판적 지지니 야권대통합이니 하는 구호에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찍어주곤 했는데
    앞으로는 그럴 일이 절대 없을 것 같으니 말입니다.

  2. 2013.05.06 13:52 신고

    새누리당은 김한길 체제를 옹호하는 듯한 태도를 취할 겁니다. 그러면서 민주당 내 우경세력과 진보세력 사이에서 이간질을 하겠지요. 민주당 분열이 목적일 겁니다.

  3. 2013.05.07 05:17 신고

    분열을 일삼던 김한길 이 미친새끼 더러워 민주당 떠난다

<이들이 같은 깃발아래 뭉치는 것이 가능할까>


장님 코끼리 만지기

 

어떤 사람은 민주당을 “새누리당 2중대”라며 비난하고, 어떤 사람은 “무능한 좌파정당”이라 비난합니다. 이런 비난들은 모두 맞으며, 모두 틀립니다. 민주통합당과 같이 거대한 스펙트럼을 포괄하고 있는 대중정당의 정체성을 한마디로 함축하기란 불가능합니다. 문재인의 민주당도, 김한길의 민주당도 모두 같은 당입니다. 이렇게 민주당에 대한 평가가 장님 코끼리 만지듯 나오다보니 이 당이 처한 난국을 타개할 해법도 중구난방일 수밖에 없습니다.  

 

어느 당이든 당권을 향한 내부의 힘겨루기는 존재합니다. 당권경쟁은 당의 경쟁력을 강화시키기도 하고, 반대로 당을 망하게 하기도 합니다. 당권경쟁의 양상이 정략적이고 소모적인 권력투쟁인지, 가치관과 철학에 따른 합리적 노선투쟁인지를 구분하려면 '계파'를 이루고 있는 무리의 속성을 파악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골육상쟁에 가까운  당권투쟁을 벌였던 새누리당의 '친이'와 '친박'같은 계파의 경우 정치적 스펙트럼상의 차이가 거의 없는, 동일선상의 무리들이었습니다. 굳이 분류하자면 '정통수구'와 '이권수구'의 차이정도랄까요? 그런 면에서 친박과 친이라는 무리는 두 거물급 정치인들을 향한 충성관계에 따라 형성된 일종의 정치적 이익결사체였고, 그들의 투쟁은 어느 쪽이 당권을 장악하더라도 당의 철학이나 노선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친이가 장악했던 한나라당과 친박이 장악한 새누리당사이에서는 아무런 철학의 차이를 읽어낼 수 없습니다.

 

그런데 모든 당의 당권투쟁이 저렇게 1차원적인 것은 아닙니다. 대선이후 벌어지고 있는 민주당의 당권경쟁의 양상은 그것보다 조금 복잡합니다. 그것을 '주류 VS 비주류'라 부르든 '친노VS 비노'라 부르든 경쟁의 내용과 구도는 다르지 않습니다. (이 글에서 '친노', '주류'와 같은 표현은 편의상의 구분임을 밝힙니다)

 

민주당의 주류와 비주류는 새누리의 친이, 친박과는 달리 정치적 스펙트럼에서 확연한 차이를 가집니다. 소위 '친노', '주류'라 표현되는 민주당의 인사들은 손학규, 김한길로 대표되는 비주류에 비해 상당히 진보적인 정체성을 가집니다. 친노라는 세력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이들의 정체성은 단순히 죽은 정치인과의 친소관계가 아닌 이념과 가치관을 중심으로 한 가치연대에 가깝습니다. 이러한 경향성은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출마했던 문재인 후보의 공약에서 잘 드러납니다. 당시 민주장 비주류의 기수였던 손학규 후보는 참여정부의 실정을 집요하게 파고들었고 민주당이 노선을 대폭 수정해 적극적으로 중도표심을 잡아야 한다 역설했습니다. 반면 문재인 후보는 참여정부의 과오를 인정하면서도 진보정당들의 공약과 비교해도 별반 차이가 없을 정도의 개혁적인 정책들을 공약으로 내세웠습니다. 결국 민주당의 지지자들은 경선에서 문재인 후보에게 13연승을 몰아주면서 민주당의 변화를 지지했습니다.  

 


잡탕정당의 비애

 

민주통합당은 다당제 정치제도하에 존재했다면 2~3개의 정당으로 갈라지는 것이 당연한 정당입니다. 민주당이 포괄하는 스펙트럼이 지금처럼 비대해진 이유는 제도적으로 강제된 양당제 속에서 거대 보수1당과 맞서기 위해 지나치게 외연을 확장해온 결과입니다. 사실 민주통합당이 안고 있는 문제들은 전세계 모든 포괄정당(catch-all party)들이 안고 있는 보편적인 문제입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또 다른 포괄정당인 새누리당에게는 왜 이런 문제가 나타나지 않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두 정당이 한국의 정치지형에서 자리하고 있는 지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새누리당에서도 (한나라당 시절) 민주당의 '주류VS비주류'경쟁과 유사한 내부 노선투쟁이 있었습니다. 한나라당의 중도투쟁을 주도하던 소장파들의 활약은 친박과 친이의 계파경쟁이 본격화 된 2000년대 중반 이후 맥이 끊겼습니다. 중도정치, 서민정치를 주장하던 소장파의 목소리가 사라진 지금 새누리당의 스펙트럼은 완전히 오른쪽에 고착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새누리당은 자신들의 오른쪽에 정당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새누리당이 외연의 문제에서 유일하게 신경써야 할 것은 왼쪽의 중도진영을 얼마나 포괄하는가의 문제인데, 왼쪽과 오른쪽 모두를 신경써야 하는 신세의 민주통합당보다는 한결 수월합니다.

 

2000년대 초만 해도 민주당도 새누리당과 비슷한 입장에 서 있었습니다. 자신의 왼편에 유의미한 진보정당이 존재하지 않던 시절 민주당은 새누리당과 거의 차이가 나지 않는 정체성을 공유하면서 안정된 반반싸움을 펼쳐왔습니다. 그런데 2002년 지방선거와 2004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의 약진이 나타나면서 민주당내에서도 노선투쟁이 벌어집니다. 진보정당의 성장은 우리사회에 진보적 개혁의 에너지가 싹을 틔웠음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민주당에서는 이러한 변화의 바람에 발맞춰 '정풍운동'이 일어났고,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과 맞물려 새로운 세력이 전면에 등장했습니다. 이른바 ‘친노세력’입니다. 그들은 기존의 보수적인 민주당의 틀로는 담아내기 불가능했던 진보적 에너지를 담아냈지만, 반대편에서는 보수세력의 이탈을 가져와 분당, 탈당과 같은 내홍을 불러오는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열린우리당 시절 실용주의를 내세우며 당의 보수화를 주도했고, 2008년 23명의 의원들과 함께 당을 탈당하여 독자노선을 선언했던 김한길 의원은 그 대척점에 섰던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문재인의 민주당, 김한길의 민주당

 

5월 4일 예정된 민주통합당 전당대회에서는 김한길 의원이 당대표로 선출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대의원을 상대로한 여론조사결과 김한길 후보가 다른 후보들을 압도적인 차이로 이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바일투표가 폐지된 이번선거에서 큰 반전이 일어나지 않은 한 김한길체제의 출범은 기정사실화 되는 분위기입니다. 표면적으로 보면 김한길 체제의 출범은 '비주류의 반격'이나 '친노시대의 종식'쯤으로 이해됩니다. 그가 줄기차게 친노퇴진을 외치던 비주류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좀 더 멀리서 바라본다면 이것은 일종의 회귀입니다. 김한길 의원은 작년 4.11총선 배패의 원인이 민주당의 좌클릭때문이라 주장한 바 있습니다. 당시 당쇄신의 해법으로 친노퇴진을 제시했던 김 의원의 문제인식은 이번 대선패배의 원인을 문재인 후보에게서 찾는 것과 맥락이 같습니다. 김 의원은 비단 지난 총선과 대선뿐 아니라 17대 국회이후 민주당이 패배한 모든 선거의 원인을 '친노'에게서 찾았습니다. 김한길이란 인물의 정치사에서 '친노퇴진'이란 구호를 빼고나면 먼지만 남습니다. 김한길의 민주당은 노무현 이전의 민주당, 즉 확실히 보장된 양당제 속에서 한나라당과 '안전한 전투'를 벌이던 시절의 보수정당으로 회귀를 뜻합니다. 민주당의 이러한 우클릭이 과연 당의 위기를 수습하는데 적절한 대안인가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우려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김한길의 민주당이 몰락의 길을 걸을 가능성이 큰 이유는 대한민국의 달라진 정치지형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보수일색의 정치환경에서 벗어나 시민들의 다양한 정치적 요구가 분출되고 있는 21세기 대한민국에는 거대한 보수정당이 두 개나 존재해야 할 이유가 사라진 것이죠. 지금의 민주통합당은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발맞춰 지난 2011년말 시민사회, 노동계의 연합을 통해 재창당된 정당입니다. 때문에 민주통합당은 기존의 민주당과는 달리 태생적으로 일정한 진보적 색채를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재창당 이후 대선까지 민주통합당의 주류가 표방하 정체성은 기존 민주당에서 한 발짝 왼쪽으로 다가간 진보적 자유주의나 온건한 사민주의쯤 되는 것이었니다. 민주당의 이러한 좌클릭은 한국사회의 달라진 정치지형의 반영이었습니다. 그 결과 군소진보정당들과의 간극이 좁아졌고 이러한 왼쪽으로의 외연확대는 여러 선거에서 진보정당들과 야권연대가 성사됐던 배경이 되었습니다. 안정적인 보수양당체제의 한 축이었던 민주당이 적극적으로 진보정당들과 연대를 모색했다는 것 자체가 예전과는 달라진 정치환경을 인정한 셈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외연의 확대가 기존 민주당의 보수성을 그대로 간직한채 이루어진 결과 스펙트럼이 지나치게 확장되었다는데 있습니다. 쉽게 말해 가랑이가 찢어진 것이죠.   

 

대중정당은 시대정신과 함께 호흡할 때 존재의 의미를 갖습니다. 과거 독재정권에 맞서던 시절 제도권 내의 유일한 대항세력이었던 민주당은 존재의 이유가 명확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정치적 열망이 넘쳐나는 2013년의 대한민국에 또 다른 거대보수정당은 존재의 의미가 없습니다. 곧 용도폐기 될 것만 같은 그들의 병든 노년을 지켜보는 마음이 씁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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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다람쥐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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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4.15 10:23 신고

    너무 답답하고 씁쓸하고 ...맘도 아픕니다.

  2. 2013.05.03 17:00 신고

    처음으로 이 곳 글을 읽었는데, 글이 참 찰지네요 ㅎㅎㅎ
    잘 읽었습니다. 더불어, 빵터졌던 부분
    [김한길이란 인물의 정치사에서 '친노퇴진'이란 구호를 빼고나면 먼지만 남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음에 또 올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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