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sns에서 간곡한 링크 하나를 받았다. 세월호에 탑승했다가 비명에 간 아르바이트생의 장례비를 회사가 지급하게 해달라는 청원이었다. 꽃다운 나이에 삶을 등진 학생은 생전에 최저임금도, 보험도 적용받지 못했으며, 죽은 뒤에도 회사로부터 장례비조차 받지 못하는 상태라는 것. 학생의 죽음을 책임져야 할 해양수산부와 청해진해운 측은 놀랍게도 그 학생이 승무원이 아닌 승객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들은 죽은 학생의 장례비와 보상금을 물지 않기 위해 알바생의 ‘선원 아님’을 항변하는 것이다. 이보다 서러운 죽음이 또 있을까. 


"단원고가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가는 학교야?"


"그 학교 수준이 어때?"


세월호 침몰사건이 터진 뒤 주변에서 한번쯤 들어봤을 말들이다. 단순한 호기심이리라. 그래서 더 공포스럽다. 악의 없이도 죽음에 등급을 매길 수 있는 보통의 사람들. 섬짓하고 섬짓하다.  


정규직 승무원들에게 지급한 장례비를 아르바이트생에게는 지급하지 않겠노라 통보한 해운업체와, 단원고가 공부잘하는 아이들이 가는 학교냐고 캐묻는 어른들. 이번 사건으로 알게 된 한가지는 이 나라에는 삶의 등급 뿐 아니라 다양한 '죽음의 등급'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세월호 참사라는 압도적인 절망 앞에서도 등급매기기를 포기하지 않는 괴물들을 보면 우리 사회가 얼마나 공고한 '등급제 사회'인가를 실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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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등급은 권력의 입맛에 따라 다르게 매겨지기도 한다. 지난달 세월호 참사 이후 범국민적인 애도분위기가 조성되자 안전행정부는 시·군·구 등 기초자치단체를 합동분향소 설치 대상 지역에서 제외하라는 공문을 내려 보냈고, 17개 광역단체 분향소도 시·도 청사 안에 한 곳씩만 설치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명시했다. 소요경비도 지자체 자체예산으로 충당하라고 지시했다. 


4년 전 천안함 사건이 발생했을 때 관주도로 애도분위기를 유도하던 정부의 태도와는 심한 온도차가 느껴진다. 당시 정부는 시민의 왕래가 잦은 곳에 임의로 분향소를 설치하라고 지시했고, 예산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그 결과 합동분향소 91곳을 비롯해 전국적으로 분향소가 340곳이나 설치됐다. 


차가운 바다에서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천암함 희생자와 세월호 희생자. 그들의 목숨값이 다를 리 없지만, 이를 대하는 정부의 태도는 판이하다. 정부의 낯빛이 달랐던 이유는 두 사건의 ‘죽음의 성격’이 달랐기 때문이다. 천안함 사건의 애도분위기는 당시 대북강경책을 고수하던 정부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는 이슈였지만, 정권심판론으로 흐르고 있는 세월호 참사 애도분위기는 현정권에게 매우 불리한 이슈다. 결국 두 사건의 희생자들 사이에 매겨진 죽음의 등급은 정권의 정치적 판단에 의한 것이었다. 

 

죽음에도 신분이 있을 수 있을까?


삶의 등급에는 너무나도 익숙하다. 인간세계의 정치적 갈등은 대개 ‘삶의 등급’을 어디까지 인정하느냐에서 비롯된다. 근대 이후의 정치는 그것을 깨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과, 그것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한판 대결이었다. 그러나 삶의 등급에 대한 입장이 무엇이든 현실세계에 그런 등급이 존재한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이다. 이제 이 사회에서 이건희와 내가 '평등'하다고 믿는 사람은 바보거나 외계인이다. 


그런데, ‘죽음의 등급’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죽음 사이에 등급이 있다는 주술적인 가정은 2014년의 문명세계에서 통용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우리가 그것을 인정한다면 왕의 부활을 기다리며 피라미드를 쌓았던 시대의 사람들과 무엇이 다른가. 


나는 세월호 참사를 통해 이 사회에 존재하는 죽음의 등급을 발견했다. 정규직/비정규직 여부에 따라, 성적순에 따라, 혹은 정권의 입맛에 따라 관의 크기가 달라진다. 이유가 무엇이든 산자가 죽은 자의 등급을 나누려 하는 태도는 불쾌하기 짝이 없다. 우린 적어도 왕후장상의 죽음과 노비의 죽음이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아는 근대인이 아닌가. 죽음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고언이 배워서 알아야 할만큼 어려운 이야기인가. 산자들에 대한 응징 이전에 죽음에 대한 예의가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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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5.26 08:57 신고

    먼저 간 이들을 대하는 산 자들의 태도가
    이런 수준이라니....너무도 서열, 등급에 익숙해져 있는 탓일까요?
    세월호 참사 이후 드러낸 우리사회의 민낯은 차마 쳐다보기 힘들 정도입니다.

  2. 2014.05.26 12:05 신고

    살아서두 죽어서도 등급이 있다는 사실이..너무 비참하네요...ㅠㅠ

    ...너무 오랬만이여요^^반가워요ㅎㅎ

 

누가 그녀에게 '여성스러움'을 강요하는가

 

한 여자축구선수가 '여성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퇴출위기에 놓였다는 매우 '한국적인' 뉴스다. 여자 실업축구 WK리그 6개 구단이 지난 5일 서울시청의 간판인 박은선 선수의 성정체성에 문제를 제기했다. 이날 6개 구단 감독들은 박 선수를 계속 경기에 뛰게 하면 리그 자체를 보이콧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 시즌 득점왕에 올랐던 뛰어난 실력과 180㎝, 74㎏의 훤칠한 몸매, 짧은 머리 많은 팬들을 매료시켰던 그녀의 '남성스러움'이 그녀를 뜻밖에 곤경에 빠뜨렸다. 타구단 감독들이 '여성스럽지 못하다'는 이유로 박 선수의 퇴출을 요구한 것이다.

 

얼핏 이 문제는 단순한 생물학적인 성(sex)의 문제로 보인다. 그러나 내막을 들여다보면 이 사건에 섹스와 젠더(gender)의 문제가 어수선하게 뒤엉켜 있음을 알 수 있다. 단순한 섹스의 문제였다면 성별검사로 간단하게 매듭지어졌을 일이 왜 이렇게 시끄러워진 걸까?  

 

“성별 검사도 한두번 받은 것도 아니고, 월드컵, 올림픽 때도 받아서 경기 출전하고 다 했다. 그때도 어린 나이에 기분이 많이 안 좋고 수치심을 느꼈는데 지금은 말할 수도 없다. 한 가정의 딸로 태어나 28살이 됐는데, 절 모르는 분들도 아니고 저한테 웃으면서 인사해 주시고 걱정해 주셨던 분들이 이렇게 저를 죽이려고 드는 게 제가 고등학교 졸업 후 실업팀 왔을 때와 비슷한 상황 같아서 더 마음이 아프다. 그때(실업팀 입단 때)도 절 데려가려고 많은 감독님들이 저에게 잘해주시다 돌변하셨는데 지금도 그렇다" - 박은선 선수 페이스북 

 

박 선수의 퇴출을 주장하는 축구계의 논리는 여자축구선수면 '여자답게' 적당히 잘해야 하는데 '남자처럼' 너무 잘해서 문제라는 것. 놀라운 것은 박 선수의 퇴출을 주장하는 관계자들도 그녀가 생물학적인 여성임을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정리하자면, 그들은 박은선 선수가 여자임을 알고 있었음에도 그녀가 '여성스럽지 못하다'는 이유로 여자 축구리그에서 퇴출을 요구한 것이다. 이 대목에서 이것이 단순한 섹스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박 선수의 예가 극단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한국사회에서 여성들이 '여성성' 부족으로 인해 공격받는 일은 흔하다. 성별분업 사회에서 '여성스럽지 못함'은 분야를 막론하고 죄악으로 여겨진다. (남성들의 남성스럽지 못함 역시 마찬가지다) 이 공격에 대한 피해여성들의 대응매뉴얼은 대체로 정형화 되어 있다.

 

"겉으론 강해 보여도 알고보면 저도 나약한(마음여린) 여자에요...ㅠ"

 

실제로 박 선수를 옹호하는 목소리 중에는 "분명 여학생이었고 여성스러운 면도 있는 착한 아이인데..."라는 식의 가부장적인 온정이 다수를 이룬다. 저런 태도는 그들의 비판을 반박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동조하는 셈이다. 저 구차한 변명을 정확히 해석하면 이렇다.

 

"(여성성이 부족한 여성은 비반받아 마땅하다는) 당신들의 주장은 옳으나, 사실 내게도(그녀에게도) 당신들이 알지 못하는 숨겨진 여성성이 있다"

 

'여성성 결여'에 대한 비난을 '여성성의 증명'으로 모면하려는 태도다. 피해자들은 이런 식의 '변명'으로 당장의 곤경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그러나 이런 태도는 결과적으로 공격의 근거가 된 성별분업 프레임을 강화-재생산하는데 일조한다. 그런 면에서 박은선 선수의 대응은 꽤나 이색적이다. 그녀는 자신을 향한 축구계의 공격에 대해 "알고보면 저도 연약한 여자에요"라며 그들이 짜놓은 판 위에서 싸우지 않고, "니들 수작 다 보인다"며 문제의 본질을 정면으로 지적하고 있다. 그녀의 지적대로 문제의 본질은 박 선수의 성별이 아닌, 그녀가 가진 월등한 실력을 견제하려는 축구계의 비열함에 있다. 

 

여자축구리그 6개 구단은 치졸하게도 박 선수의 실력에 '여자답지 못한'이라는 전통적인 젠더 프레임을 덮어 씌웠다. '남성다움-여성다움'이라는 사회적 통념을 상대팀 에이스 죽이기에 활용한 것이다. 영민하고 저열하다. 이 말도 안되는 공격으로 박 선수가 퇴출된다면 그녀의 퇴출을 담합한 구단들은 내년 시즌에 보다 나은 성과를 거둘 가능성이 높아진다. 퇴출이 무산된다 해도 박은선 선수의 플레이는 이번 파문으로 인해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 이제 박 선수는 그라운드에서 몸싸움을 할 때마다, 골을 넣을 때마다 마음 한켠에 자신의 '남성스러움(실력)'이 부담으로 다가오지 않겠는가. 상대팀의 에이스에게 '남성성'에 대한 트라우마를 심어준 것 만으로도 그들은 소기의 성과를 거둔 것이다.  

 

나는 가능하다면 그녀가 이나라를 떠나 다른 리그로 진출하는게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덜 여성스러워도 되는' 리그로 말이다. 뛰어난 실력이 '남자다움'으로 매도당하는 리그라면 박은선 같은 훌륭한 선수를 품을 자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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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11.06 19:13 신고

    참 한심한 여자팀 감독 관련자들 ...같으니..

  2. 2013.11.06 23:10 신고

    진짜 뭐라 할말이 없네..ㅠㅠ...이런...

  3. 2013.11.07 11:53 신고

    머리를... 길러야 하나요???

  4. 2013.11.18 21:56 신고

    보고 있노라면 앞만 보고 있다고 믿으면서 정작 중요한 건 다 버리고 달려온 한국의 현실이 투영되 보여서 참..

 

<술이 문제인가?>

'술'이 성폭행했다?

 

지난 22일 육군사관학교내에서 4학년 남학생 생도가 2년 여학생 생도를 성폭행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사건이 벌어진 곳이 교정 안이라는 사실이 충격을 더하고 있는 가운데, 쉬쉬하던 육군은 사건발생 일주일이 넘어서야 대국민사과를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을 대하는 언론의 보도행태가 불편합니다. TV, 신문, 인터넷 할 것 없이 이 사건을 보도하는 언론의 포커스는 그날 있었던 폭탄주회식에 맞춰져 있습니다.

 

'교내에서 폭탄주 회식', '술 얼마나 마셨길래', '대학 축제문화 바뀌어야'

 

이번 사건 관련 기사의 헤드라인들입니다. 이들은 한결같이 사건의 원인을 과도한 음주와 군기강의 해이에서 찾고 있습니다. 육군 측 역시 "현재 육사의 음주 승인권자 범위가 적절한지 제도적으로 검토할 것"이라며 수사의 포커스를 대낮에 폭탄주를 마신 행위의 부적절성에 맞추고 있음을 밝혔습니다. 성범죄수사의 방향은 '가해자가 범죄를 저지르기 전에 어떤 사전행동을 했는가'가 아닌, '피해자가 어떤 피해를 입었는가'에 맞춰져야 합니다. 이런 상식적이고 간단한 수사의 원칙조차 알지 못하는 군 수사기관에 의해서 얼마나 수사가 잘 이뤄질지 의문입니다. 육군이 가해자를 수사하는 혐의가 성폭행이 아닌 '성 군기 위반'이라는 대목에서는 실소가 나옵니다.

   

성범죄에 대한 언론의 이러한 보도행태는 윤창중사건의 보도에서도 다르지 않습니다. 술과 성범죄와의 '인과관계'를 규명하려는 언론의 노력은 보수-진보매체를 가리지 않습니다. 청와대 대변인이 인턴 여성에게 성추행을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언론은 대변인의 부적절한 음주사실을 성추행만큼이나 크게 부각시켰습니다. 중요한 업무를 수행중이던 청와대 대변인이 만취할 정도로 술을 마신 것은 분명 부적절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성추행이라는 '범죄'의 본질과는 무관한 일이며, 다른 꼭지로 다뤄져야 할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성범죄사건 보도에 가해자의 음주 사실이 꼬리처럼 따라다녀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육사내 폭탄주회식이 적절했는가의 문제나 공식일정을 수행중이던 청와대 대변인의 음주가 적절했는가의 문제는 모두 이들의 성범죄와는 무관한 다른 차원의 문제들입니다. 성범죄는 사람이 저지른 범죄입니다. '술'이라는 무생물이 사람과 성범죄의 책임을 나누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이자는 술의 노예란 말인가>

진부한 시나리오

 

가해자의 만취상태가 강조된 성폭행사건 보도가 불편한 이유는 은연중에 성폭행의 원인이 '술'에 있다는 뉘앙스를 풍기기 때문입니다.

 

'만취상태의 남성이 여성을 끌고가 성폭행했다'

 

저 문장에서 '만취'를 강조하면 성폭행이라는 행위의 주체는 사람이 아닌 '술'이 되어버립니다.

 

술이 남성을 만취상태로 만들었다 만취상태는 남성의 성욕을 통제불가능의 상태로 만들었다 성욕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한 남성은 결국 성폭행을 했다

 

성범죄자의 음주사실을 접한 마초들의 머리속에서는 순식간에 이런 알고리즘이 형성됩니다. 분명 성폭행을 저지른 것은 사람인데 그 '사람'이 마신 술에게 책임이 전가되는 모양새가 만들어지는 것이죠. 성범죄가 발생했을때 술을 의인화시켜서 사람이 빠져나가는 기이한 현상은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흔하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폭탄주 강요'에 포커스를 맞추면 모양새는 더욱 우스꽝스러워집니다. 강요에 의해 폭탄주를 마신 가해자가 술기운에 의해 심신이 미약해진 상태에서 성폭행을 저질렀다는 저들의 '시나리오'는 진부함 그 자체입니다. 언론의 보도태도를 그대로 받아들이면 - 성폭행 사건의 직접적인 원인은 가해자의 음주이고, 사건의 '배후'는 가해자에게 술을 강요한 상사들이며, 나아가 사건의 근본적인 원인은 술을 강권하는 대한민국의 회식문화가 됩니다. 분명 피해여성은 가해 남성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는데 지탄의 화살은 엉뚱한 곳으로 날아갑니다.  

 

신화에 빠진 언론

 

성범죄의 원인을 '술'에서 찾는 태도는 '통제 불가능한 남성의 성욕'이라는 가부장적 신화에서 비롯됩니다. 저 잘못된 통념을 받아들이는 순간 모든 성폭행범들은 책임을 나눠질 '공범'을 만나게 됩니다. 

 

'피해자가 미니스커트를 입어서' = '가해자가 술을 마셔서' 

 

이것들의 공통점은 '거짓상관관계'라는 것입니다. 이런 시각에서 볼 때 -가해자들의 성욕을 통제불가능 상태로 몰고간 '촉발원인'이라는 점에서- 가해자의 '술'은 피해자의 '미니스커트'와 같습니다. 우리사회가 이런 것들을 성범죄의 촉발원인으로 바라보는 이상 성범죄자에 대한 온전한 처벌은 불가능합니다. 이런 저열한 시각을 여과없이 보도∙재생산하고 있는 언론은 자신들의 가부장성을 반성해야 합니다. 설령 그들이 술의 '도움'을 받았다한들 음주라는 사전행위는 가중처벌의 대상이지 정상참작의 대상일 수 없습니다. 살인범이 살해전에 칼을 간 행위나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성폭행사건의 판결문에 ‘심신이 미약한 상태에서 저지른~’이란 문장이 꼬리표처럼 붙어다디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술이 남성의 심신을 미약하게 하여 성욕을 통제불가의 상태로 몰고갔다는 가부장적인 논리를 대한민국의 사법부가 승인했던 것입니다. 법이 성폭행의 책임을 술과 사람이 나눠 지라는 '기발한 명령'을 내린 것이죠.

 

성범죄 가해자의 음주, 만취상태를 부각시키는 언론의 보도행태역시 저 우스꽝스런 판결문 구절과 다르지 않습니다. 성범죄의 원인을 '술'에서 찾는 한국 언론들의 태도는 흑사병의 원인을 마녀에게서 찾았던 중세의 교회만큼이나 야만적입니다.

  

 

관련글 - 오바마의 사과와 윤창중의 '엉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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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5.30 10:20 신고

    성범죄는 가해자의 상황과 처지가 고려되어서는 안됩니다.
    반드시 피해자의 입장에서 철저히 처벌되어야 합니다
    언론과 방송도 그런 입장에 서서 다루어야 합니다
    글 공감하면서 잘읽고 갑니다~

  2. 2013.05.30 11:30 신고

    우리사회가 술에 너무 관대했죠. 판결이니 언론에 그 관대함이 고스란히 묻어 나오는 것이고~
    이런 점에선 최근에 조금 바뀐 듯 합니다만, 대학 등지에선 어떤지 모르겠네요.
    MT니 축제니, 요즘에도 사고기사가 눈에 띄던데...

  3. 2013.05.30 14:26 신고

    개념을 잘못 이해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거짓상관관계'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음주와 성추행 간에 상관관계는 분명히 성립합니다. 다만 논쟁거리가 되는 것은 이 경우에 인과관계도 성립하는가에 있습니다. 보통은 상관관계가 현저하고 인과적 설명 외에 이를 설명할 다른 방법이 없을 때, 인과관계도 성립한다고 추론합니다. 단순히 상관관계가 성립한다는 사실만으로는 어떠한 책임도 물을 수 없습니다. 예컨대 삼성전자 백혈병 사건 때도 사측은 업무와 백혈병 발병 간에 상관관계가 성립한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인과관계가 성립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법정에서 이를 가려야 했던 것입니다.

    • 2013.05.30 14:50 신고

      말씀인즉 '상관관계는 맞지만 인과관계는 아니다(알 수없다)'인데, 둘의 상관관계가 어떻게 증명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성범죄자의 음주율을 조사한다해도 그들이 음주를 하지 않았을때 성범죄를 저지를지 여부를 알 수 없기 때문에 그것들간의 상관관계는 증명할 수 없습니다.

  4. 2013.12.15 06:27 신고

    굳이 상관관계를 도식으로 나타내보자면 술=심신미약=/성추행 정도 될것입니다. 즉 음주는 심신미약에 상관관계가 있고 인과관계도 있지요. .. 근데 인과관계라 함은 결과에 그 요인이 한몫했다면 인과관계가 성립하게 될텐데(결정적이든 아니든) 음주를 했다면 심신미약인 상태일것이고 -> 심신미약의 상태는 성추행의 발생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는 것이 논란의 핵심인 것이지요. 상관관계와 인과관계에 대한 개념이 혼동되고 있군요 위에서는. 상관관계가 결정적이면 인과관계가 된다 이런 개념은 아닌 것입니다.

 

<작은 말실수로 곤욕을 치른 오바마 대통령. 출처:연합뉴스>



오바마는 왜 사과했을까?

 

지난 달 버락 오바마 미국대통령은 한 기금모임행사에 함께 참석한 캘리포니아 주 카말라 해리스 법무장관에게 "그녀는 똑똑하고 헌신적이면서 강인하고 모두가 원하는 그런 법무장관이다. 그녀는 전국에서 가장 외모가 훌륭한 법무장관(the best-looking attorney general in the country)이다"라고 칭찬했습니다. 이 발언은 SNS를 통해 삽시간에 퍼져나갔고, 미국사회는 대통령에게 엄청난 비난을 쏟아냈습니다. 결국 오바마는 다음날 장관에게 사과전화를 걸었고, 대변인을 통해 국민들 앞에 사과메시지를 전해야 했습니다. 오바마는 왜 사과한 것일까요?  

 

오바마의 칭찬 중 문제가 된 부분은 '최고 미인 법관'이라는 표현이었습니다. 오바마의 '칭찬' 뒤 미국 각 매체의 여성언론인들은 즉각 "여성은 능력보다 외모로 판단되어야 하는가?"라는 논조의 비판기사들을 쏟아냈고, 백악관 홈페이지에는 "미국사회에 만연한 외모의 장벽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비난이 들끓었습니다. '얼짱장관', '얼짱국회의원' 같은 헤드라인이 난무하는 한국사회에서 오바마의 사과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것은 당연합니다.   

 


엉덩이 '툭툭'이 중요한가

 

지난 주말 대한민국의 모든 이슈 윤창중이라는 블랙홀에 완전히 흡수되었습니다. 지난 8일 워싱턴 경찰에게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이 한국대사관에서 자신의 수행으로 배치한 여성 인턴을 호텔바와 자신의 호텔방에서 성추행했다는 신고가 접수됐습니다. 곧 한국에는 대통령의 방미일정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해야 할 대변인이 밤새 술을 마신 뒤 처음 만난 21세 여성의 엉덩이를 만지고, 알몸상태로 모텔방에 불렀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소식이 사실이라면 정상적인 언어로는 그 '부적절함'의 정도를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그날 새벽 전격 경질된 뒤 홀로 귀국한 이남자 11일 기자회견을 자청하고 '성추행의도는 없었다'며 결백을 주장했습니다. 그가 결백을 주장하자 사건의 양상은 진실게임국면으로 접어들었습니다. 그런데 언론과 청와대, 윤창중이 벌이고 있는 진실게임의 양상은 정말 괴상합니다.  

 

그는 여성의 엉덩이를 움켜쥐었는가? 아니면 ‘톡톡’ 친 것인가?

 

그는 호텔방에서 팬티를 입고 있었나? 벗고 있었나?

 

이 저열하기 짝이없는 진실게임은 대한민국 사회의 젠더의식수준을 잘 보여줍니다. 엉덩이를 톡톡 치든, 툭툭 치든, 퍽퍽 치든 그런 의성어의 종류는 사건의 본질과 관련된 문제가 아닙니다. 성추행여부를 소리로 판단하는 국가는 세상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가 팬티를 입었든, 벗었든, 반쯤 입고 있었든 그 차이는 의미가 없습니다. 성추행 여부는 가해자에게 의도를 물어 판단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현재 사건의 공방이 가해자의 입에서 나온 변명을 검증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피해자의 구체적 진술이 나온다면 많은 부분이 추가되거나 뒤집힐 가능성이 높습니다. 가해자의 입에서 나온 진술을 토대로 진위를 가리려 하는 노력은 의미가 없습니다.   

 

이 사건의 진위를 밝히는 핵심은 윤창중이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했는가 여부입니다. 위 질문들에 대한 답이 무엇이든간에 윤창중이 '누가 나의 몸을 만질 것인가', '언제, 어디서, 누구와 성적인 행위를 할 것인가'라는 그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터치의 소리나 팬티착용 여부와 같은 자극적인 '쟁점'들은 사건의 본질과는 한참 떨어져 있는 가십에 불과한 것이죠.  

 

<문제의 '나쁜 손' 출처:연합뉴스>



'얼짱장관'이 뭐 어때서?

 

윤창중 사건이 보도되자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는 사건의 파장이 커지는 원인으로 ‘종북 페미니스트’를 지목했고, 황장수 미래경영연구소 소장은 사건의 원인이 “한국과 미국 간의 문화 격차 때문”이라 주장했습니다. “젖가슴도 아닌 겨우 엉덩이”라는 칼럼을 쓴 정재학이라는 사람이 초딩이 아닌, 시인이자 현직 중학교 교사라는 사실에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비참함을 느낍니다. 사회의 찌꺼기들이 모여드는 하수구는 어느 사회에나 존재합니다. 그러나 하수구의 썩은 냄새가 지상에까지 진동한다면 하수구를 청소할 때가 온 것입니다. 

 

물론 우리사회에는 저런 비상식적인 극우마초들보다는 건강한 의식을 가진 시민들의 수가 훨씬 많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중세의 인식들이 통용되는 세계가 우리사회에 엄연히 존재하며, 그것의 크기가 무시해도 좋을 만큼 작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극우마초들의 치명적인 언어 성폭력이 게재될 지면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가부장적 마초논리가 다수 대중들 사이에서 널리 소비되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한국사회에서 이런 사건이 불거지면 "대체 여자가 행실을 어떻게 했길래"같은 '행실론'에서부터, "그여자 뭔가 수상한데?"같은 '꽃뱀론', "별일도 아닌데 남자만 인생 조졌네"같은 '역 동정론' 등 다양한 마초식 대응 매뉴얼이 등장합니다. 몇몇 이름을 알만한 극우논객들이 아니더라도 대한민국에서 '중세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오바마의 사과와 윤창중의 엉덩이를 가르는 차이는 '젠더감수성'입니다. 여성장관에 대한 외모칭찬을 성차별로 받아들여 오바마의 사과를 이끌어냈던 미국사회의 젠더감수성과, 윤창중이 젊은 여성의 엉덩이를 '어떻게' 만졌는가에 집중하는 한국사회의 젠더감수성, 이것들의 차이는 무얼 의미할까요.

 

윤창중 같은 치한은 어느 나라에나 존재합니다. 문제는 이것을 바라보는 사회일반의 시선입니다. '얼짱장관'과 윤창중의 '엉덩이'는 젠더감수성이라는 측면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것들은 모두 아직 개화하지 못한 우리사회의 젠더의식을 드러내는 단면입니다. 우리가 얼짱장관이란 말에서 천박함을 느끼지 못한다면 윤창중의 '엉덩이'는 계속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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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다람쥐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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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5.13 09:44 신고

    이름조차 거론하고 싶지않습니다.
    일말의 수치심조차 없는 기자회견..
    기가막힙니다
    이로인해 중요하게 지켜봐야하는것들이 묻혀지지않기를 바랍니다
    글 공감하며 잘 읽고 갑니다~

  2. 2013.05.13 14:51 신고

    그래봐야 싹 갈아치울 기회를 주어도

    늘상 노예로 남기를 선택하는 일본 식민지의 민족의 후손들이 뭘 할 수 있을까요

    어차피 저 자리에 올라가면 한국인의 50%는 윤대변인보다 덜 하다고 볼수도 없겠구먼

    한국인들 특기가 남의 험담은 아주 기가 막히게 잘하면서

    자기도 그 인간과 다를바가 없다는 것을 모르고 살아간다는 점이겠죠?

    지금 미국이나 중국이 없다면 일본이 다시 쳐들어와서

    식민지가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개판이구먼

    말로만 독도는 우리땅 외치고 자빠졌죠 한국인들

  3. 2013.05.13 17:05 신고

    윤창중칼럼도 독하더니 얼굴값하고 왔네요 쩝
    다시한번 나를 돌아보는 계기로 삼겠습니다.
    글 자~알 읽고 갑니다.

  4. 2013.05.13 23:58 신고

    공지글, 공감하며 읽었은데, 다람쥐주인님의 글도 편하게 읽힙니다.
    좋은 글 잘 봤습니다.

  5. 2013.05.15 05:22 신고

    늘 좋은 글 잘 읽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공적인 정상회담에 대변인이 대변을 쌌다"고들 하던데 이 제목이 영 소화가 잘 안됩니다. 성공적인 방문이었나요. 아님 대변에 묻어가는 레토릭인가요. 이 부분도 한 번 괘도난마를 해주심,,,,

 

 
세계 인권의 날 기념 연설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
스위스 제네바
2011년 12월 6일

 

안녕하세요. 제가 여기 이 자리에 있는 것을 매우 영광스럽고 기쁘게 생각합니다. 유엔제네바사무소장 Tokayev, Ms. Wyden, 그 밖의 장관님들, 대사님들, 귀빈들, 유엔파트너들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번 주말, 우리는 지난 세기 가장 위대한 업적 가운데 하나를 기념하는 날인 세계 인권의 날을 축하할 것입니다.

 

1947년을 시작으로 여섯 개의 대륙에서 온 대표단이 혼신을 다하여 세상 모든 사람들의 기본적 권리와 자유를 새겨둘 선언을 작성하는 일에 몰두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많은 나라들이 앞으로의 참극을 막고 모든 인간의 천부적 인간성과 존엄성을 보호하도록 이같은 성명서가 있어야 한다고 요구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대표단이 일을 시작했습니다. 수 천 시간에 걸쳐 토론하고 작성하고, 다시 검토하고, 수정하고, 다시 작성하였습니다. 그리고 전세계의 정부, 단체, 개인들이 제안하고 수정한 내용들을 포함시켰습니다.

 

근 2년간의 원안작성과 마지막 긴 토론의 밤을 보낸 후, 1948년 12월 10일 새벽 3시에 유엔총회의장이 최종문안에 대한 표결을 요청했습니다. 찬성 48개국, 기권 8개국, 반대 없음. 그리하여 세계인권선언이 채택되었습니다. 세계인권선언은 단순하고도 강력한 사상을 선포합니다. 모든 인간은 태어날때부터 자유로우며 동등한 존엄성과 권리를 가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선언과 더불어, 정부가 그 권리를 부여해주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이 가지고 태어나는 권리라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어느 나라에 사는지, 지도자가 누구인지, 혹은 자신이 누구인지 조차도 전혀 상관 없습니다. 인간이므로, 우리는 그래서 권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권리가 있기 때문에 정부는 그 권리를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세계인권선언이 채택된 후 63년 동안, 많은 국가들이 인권을 인간의 현실로 만드는 위대한 진보를 이루어냈습니다. 한때 사람들이 충분한 자유, 온전한 존엄성의 경험, 충분한 인간성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도록 했던 장애물들이 하나 둘씩 사라져갔습니다. 여러 곳에서 인종차별적 법들이 폐지되었고, 여성을 이류신분으로 격하시켰던 법적, 사회적 관행들도 폐지되었으며, 종교적 소수자들이 자신들의 신앙을 자유롭게 실천할 능력이 지켜지게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이러한 진전들이 쉽게 얻어지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싸웠고 조직화했으며, 단지 법뿐만 아니라 마음과 정신을 바꾸기 위해 광장에서 그리고 사적인 공간에서 캠페인을 벌였습니다. 그리고 한때 부당하게 삶이 좁혀졌던 수백만명의 사람들을 위해 수 세대에 걸쳐 이러한 노력을 지속한 덕분에, 이제 이 사람들은 더 자유롭게 살 수 있게 되었고, 공동체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삶에 더욱 완전히 참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모두가 알고 있듯이, 아직 그 약속, 그 현실, 모든 사람을 위한 진보를 이루어내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이 훨씬 더 많이 남아 있습니다. 오늘 저는, 지금도 여전히 세계의 너무나 많은 곳에서 인권이 부정당하고 있는 하나의 집단을 보호하기 위해 해야 할 남겨진 일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여러 면에서 그들은 보이지 않는 소수자입니다. 그들은 체포되고, 구타당하고, 테러당하고, 심지어 사형에 처해지고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동료 시민들에게 모욕적이고 폭력적인 처우를 받고 있고, 반면 이들을 보호하도록 권한을 부여받은 당국은 보고도 못본척 무시하거나, 심지어 많은 경우 이 학대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이 보이지 않는 소수자들은 일하고 배울 기회를 거부당하고, 집에서 쫓겨나거나 나라에서 추방당하며, 위험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이 누구인지 은폐하고 부정하도록 강요받고 있습니다.

 

제가 말하고 있는 이들은 게이, 레즈비언,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들, 즉 태어날때부터 자유롭고 평등과 존엄성을 부여받은 인간으로 이제 우리 시대에 남아있는 인권 과제 중의 하나인 평등과 존엄성을 요구할 권리를 가진 이들입니다. 저는 동성애자 인권에 대한 제 조국의 성적이 완벽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면서 이 주제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2003년까지 미국의 일부 지역에서는 동성애가 여전히 범죄였습니다. 많은 LGBT미국인들이 자신들의 생활 속에서 폭력과 괴롭힘을 견뎌왔고, 많은 청소년을 포함해 일부 사람들에게는 집단따돌림과 배제가 일상사였습니다. 따라서 모든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저희가 자국내에서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더 있습니다.

 

저는 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민감한 사안이라는 것을 알고 있고, LGBT의 인권 보호를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들이 개인적, 정치적, 문화적, 종교적 신념에 깊이 뿌리박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기 여러분 앞에 존경과 이해, 겸손을 가지고 나와 있습니다. 비록 이 분야에서 진전을 이루어내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우리는 행동에 옮기는 것을 지체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LGBT 시민들의 인권을 어디서나 인정한다는 전 세계적인 합의에 도달하기 위해 우리가 함께 해결해야 할 이 어렵고 중요한 쟁점에 대해 이야기 하려고 힙니다.

 

첫번째 쟁점에서 문제의 핵심을 짚으려고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동성애자 권리와 인권이 분리되어 있고 구별된다는 말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 둘은 하나이며 같은 것입니다. 물론 60년전, 세계인권선언을 작성해서 통과시켰던 정부들이 그 선언이 LGBT 커뮤니티에 어떻게 적용될지에 대해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또한 원주민이나 아동이나 장애인이나 다른 소외된 집단들에 대해서도 어떻게 세계인권선언이 적용될지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난 60년간 우리는, 이러한 집단의 구성원들이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공통된 인간성을 공유하므로 온전한 수준의 존엄성과 권리에 대한 자격을 가진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인식이 한번에 모두 생긴 것은 아닙니다. 시간에 걸쳐 진화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이 생겼을때, 우리가 그들을 위해 새롭거나 특별한 권리를 만든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항상 가지고 있었던 권리를 존중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성이라는 것이 그렇듯, 인종적, 종교적, 부족적, 민족적 소수자라는 것이 그렇듯, LGBT라는 것이 여러분을 열등한 인간으로 만들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왜 동성애자 권리가 인권이고, 인권이 동성애자 권리인지에 대한 이유입니다.

 

성적지향으로 인해, 혹은 남자와 여자가 어떻게 보이고 행동해야하는 지에 대한 문화적 규범을 따르지 않는다고 해서 구타당하거나 살해된다면, 이것은 인권침해입니다. 정부가 동성애자임이 불법이라고 공표하거나, 동성애자를 해치는 사람들이 처벌받지 않게 허용한다면 인권침해입니다. 레즈비언이나 트랜스젠더 여성들이 소위 교정강간의 대상이 되거나, 강제적으로 호르몬 치료를 받게 하거나, 동성애자를 향한 폭력을 부르는 소리가 공공연하게 있은 후 사람들이 살해당하거나, 생명을 부지하려면 자신의 조국을 떠나 다른 나라로 망명하도록 강제되는 것도 인권침해입니다. 그리고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구조조치를 하지 않거나,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동등한 사법적 접근이 거부되거나,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공공 장소에 출입이 금해지는 것은 인권침해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생겼든, 어디에서 왔든, 누구이든, 우리는 모두 똑같이 인권과 존엄성을 누릴 자격을 갖고 있습니다.

 

두번째 쟁점은 동성애가 세계의 특정지역에서 발생하는지에 대한 질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동성애가 하나의 서구적 현상이며, 따라서 서구지역 밖의 사람들은 동성애를 거부할 근거를 가진다고 믿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글쎄요, 실제로는 동성애자들이 전세계 어느 사회에서나 태어나고 살고 있습니다. 동성애자들은 모든 연령에서, 모든 인종에, 모든 종교에 있습니다. 그들은 의사이고 교사이며, 농부이고 은행가이며, 군인이고 운동선수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알든 모르든, 인정하든 하지않든, 그들은 우리의 가족이고, 친구이며, 이웃입니다.

 

동성애자인것이 서양에서 고안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인간의 현실입니다. 그리고 동성애자이든 이성애자이든 모든 사람들의 인권을 보호하는 것이 서구의 정부에서만 하는 일이 아닙니다. 인종차별정책의 종결 후 작성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헌법은 동성애자를 포함한 모든 시민의 평등을 보호합니다. 콜럼비아와 아르헨티나에서도 동성애자의 권리가 법적으로 보호되고 있습니다. 네팔은 대법원에서 동등한 권리가 LGBT 시민들에게도 적용된다고 판결했습니다. 몽골 정부는 반동성애 차별에 대처할 새로운 법안을 만드는데 전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LGBT 커뮤니티의 인권을 보호하는 것이 단지 부유한 나라들이나 감당할 수 있는 사치라는 걱정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권리를 보호하지 않아 질병과 폭력으로 동성애자와 이성애자의 생명을 잃게 되어서, 또 커뮤니티를 강화할 수 있는 목소리와 시각들을 침묵시킴으로써 동성애자인 기업가들이 어떤 아이디어들을 쫓지않게 되어서 발생하는 비용들이 사실 모든 나라에 있습니다. 여성이든, 인종적 또는 종교적 소수자이든, LGBT이든, 어떤 집단을 더 열등하다거나 더 우수한 집단으로 대우할 때는 항상 비용이 발생합니다. 보츠와나(Botswana)의 전임대통령Mogae는 최근, LGBT들이 계속해서 음지에 있는 한 HIV와 AIDS를 해결할 효과적인 공중보건프로그램은 존재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다른 과제들에도 역시 통용되는 지적입니다.

 

세번째, 그리고 아마 가장 해결하기 어려운 쟁점은 LGBT 시민들의 인권을 침해하거나 보호하지 않으려는 이유로서 종교적이거나 문화적인 가치를 언급할 때입니다. 이는 명예살인(honor killing), 미망인 화장(widow-burning) , 또는 여성할례 (Female Genital Mutilation) 등 여성을 향한 폭력적 관습을 정당화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어떤 이들은 여전히 이러한 관습들을 문화적 전통의 일부로서 옹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성에 대한 폭력은 문화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범죄입니다. 노예제도와 마찬가지로, 한때는 하느님이 허락한 것으로 정당화되었던 것들이 이제는 당연히 비양심적인 인권침해로 매도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각각의 사건에서, 우리는 어떠한 관습이나 전통도 우리 모두가 가진 인권의 우위에 서지 않는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LGBT시민들에게 폭력을 가하거나, 그들의 상태와 행동을 범죄화하거나, 그들을 가족과 지역사회에서 쫓아내거나, 암묵적으로 또는 명시적으로 그들에 대한 살해를 수용하는 경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문화적, 종교적 전통과 교리가 인권보호와 실제로 상충되는 경우는 드물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합니다. 실제로 우리의 종교와 문화는 동료 인간을 향한 동정과 영감을 얻는 원천입니다. 종교에 기댄 사람들은 노예제도를 정당화한 사람들 뿐만이 아니라, 그 제도를 폐지하려고 하는 사람들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헌신하는 것과 LGBT의 존엄성을 옹호하기 위해 헌신하는 것이 같은 뿌리에서 나옴을 기억합시다. 우리 대다수에게, 종교적 믿음과 관습은 의미와 정체성의 매우 중요한 근원이며, 인간으로서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근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맺는 사랑과 가족의 결합 역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의미와 정체성의 매우 중요한 근원입니다. 다른사람을 돌보는 것은 온전한 인간됨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보여주는 하나의 표현입니다. 인간의 경험은 보편적이기 때문에, 인권은 보편적이고 모든 종교와 문화를 가로지릅니다.

 

네번째 쟁점은 어떻게 모두를 위한 권리를 향해 진보할 것인지에 관해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쳐준 것에 대한 것입니다. 진보는 정직한 논의에서 출발합니다. 그런데, 사람들 중에는 모든 동성애자들이 소아성애병자이고, 동성애가 감염되거나 치유될 수 있는 일종의 질병이며, 동성애자들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동성애자가 되도록 권유하고 있다고 말하고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글쎄요, 이러한 말들은 그저 사실이 아닐 뿐입니다. 이러한 생각들을 확장시키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그들의 두려움과 염려를 공유하도록 기회를 주지 않고 제쳐둔다면, 이러한 생각들이 사라지지도 않을 것입니다. 믿음을 포기하도록 강제당했다고 해서 믿음을 포기한 사람은 지금까지 아무도 없었습니다.

 

말이나 믿음이 다른 사람의 인간성을 훼손하게 된다 하더라고, 보편적 인권은 표현의 자유와 믿음의 자유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선택하는 대로 무엇이든 믿을 수 있는 자유가 있는 반면, 우리가 선택하는 대로 무엇이든 행할 수는 없습니다. 모두의 인권을 보호하는 세상에서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쟁점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연설 이상의 것이 필요합니다. 대화가 필요합니다. 사실 크고 작은 장소에서 수없이 많은 대화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대화를 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시작하기 위한 이유로서 적나라한 믿음의 차이를 눈으로 보겠다는 의지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진보는 법이 변화하는데서 옵니다. 저희 나라를 포함한 여러 나라에서, 법적 보호가 권리에 대한 폭넓은 인식에 선행하였지, 그에 뒤따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법은 교육효과가 있습니다. 차별하는 법은 다른 종류의 차별을 정당화합니다. 동등한 보호를 요구하는 법은 평등이라는 도덕적 의무를 강화합니다. 그리고 실제적으로 볼 때,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려면 먼저 법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 흔한 사실입니다.

 

저희 나라에서 많은 사람들은 트루만 대통령이 군대에서 인종간 격리폐지를 명했을 때 심각한 실수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인종간 격리폐지가 부대의 결속을 훼손시킬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트루만 대통령이 인종간 격리폐지를 추진해서 실행한 이후에야, 이 정책을 지지했던 사람들조차 예견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미국의 사회체계가 얼마나 강화되었는지 우리는 보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저희 나라에서 일부 사람들은 “묻지 말고 말하지 말라 (Don't Ask, Don’t Tell)”를 폐지하는 것이 군대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우려합니다. 그런데, 폐지를 가장 강하게 반대하는 사람 가운데 한명이었던 해병사령관이 말하기를, 자신의 우려가 근거없는 것이었고, 해병은 그 변화를 기꺼이 받아들였다고 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진보는 기꺼이 다른 사람의 입장으로 잠시 살아보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합니다. “만약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범죄라면 어떤 느낌일까? 바꿀 수 없는 내 자신의 어떤 점 때문에 차별받는다면 어떤 기분일까?” 우리가 깊이 품고 있는 믿음을 반추할 때, 모든 사람들의 존엄성에 대한 관용과 존중을 포용하려 할 때, 이해를 높이려는 바램으로 우리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들과 겸허하게 논쟁할 때, 이 과제가 우리 모두에게 적용됩니다.

 

다섯번째이자 마지막 질문은 우리가 어떻게 해야 LGBT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의 인권을 포용하는 세계를 만들 것인가입니다. 맞습니다. LGBT 당사자들이 도와 이 노력을 선도하여야만 합니다. 여러분 가운데 많은 분들이 그렇게 하듯이 말입니다. 그분들이 갖고 있는 지식과 경험이 매우 소중하며 그분들의 용기는 영감을 줍니다. 이 대의를 위해 말 그대로 자신의 목숨을 바친 용감한 LGBT 활동가들의 이름을 우리가 알고 있고, 결코 그 이름을 알지 못할 수 많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권리를 부정당하는 사람들은 원하는 변화를 이끌기에는 가장 힘이 없는 사람들인 경우가 많습니다. 소수자들만의 활동으로는 결코 정치적 변화에 필요한 과반수를 쟁취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인류의 어느 일부가 열외로 취급받을 때, 남아있는 사람들이 방관하고 있을 수 없습니다. 진보를 막는 장벽이 무너질때에는 항상 그 장벽의 양쪽에서 공동의 노력이 있었습니다. 여성의 권리를 위한 싸움에서는 남성의 지지가 결정적입니다. 인종평등을 위한 싸움에서는 모든 인종의 사람들의 기여에 의지했습니다. 이슬람공포증이나 반유대주의과 싸우는 일은 모든 신앙을 가진 사람들의 과제입니다. 그리고 평등을 위한 이 분투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반대로, 우리가 인권에 대한 부정과 침해를 보면서도 행동하지 않을 때, 그렇게 인권을 부정하고 침해하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자신의 행동에 대해 아무런 응보도 받지 않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주게 되고, 따라서 그들은 계속해서 그렇게 행동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실제로 행동할 때, 우리는 강력한 도덕적 메시지를 보냅니다. 올해 여기 제네바에서, 국제사회는 LGBT의 인권에 관해 전세계적 합의를 강화하기 위해 행동하였습니다. 3월 인권이사회에서 전 지역에 걸친 85개 국가들이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이유로 사람을 범죄화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것을 근절하도록 요구하는 문서에 지지를 표하였습니다.

 

그 다음 회기인 6월 이사회에서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이 LGBT에 대한 폭력에 반대하는 결의안에 앞장섰습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온 대표단은 자기 자신들이 인간의 평등과 그 불가분성을 위해 헌신한 경험과 분투에 대해 감동적으로 이야기했습니다. 이 안이 통과되었을 때, 이것은 전세계 동성애자의 인권을 인정하는 역사적으로 최초의 유엔 결의문이 되었습니다. 올해 아메리카국가기구(Organization of American States)에서는, 범아메리카인권위원회(Inter-American Commission on Human Rights)가 LGBT의 권리에 관한 부서를 신설하였고, 이것은 우리가 희망하기로 특별보고관(special rapporteur)의 신설로 나아가는 한 단계 진전이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LGBT커뮤니티의 인권을 위한 더 많은 지지를 끌어내기 위해 더 나아가야 하고, 이곳에서 그리고 세계 전지역에서 활동해야 합니다.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사람들이 수감되고, 구타당하고, 사형에 처해지는 국가의 지도자들에게, 저는 이렇게 생각해보라고 요청합니다. 리더십은, 그 정의 자체로, 요구가 있을 때 당신의 국민 앞에 나와 서는 것을 의미합니다. 국민 모두의 존엄성을 위해 일어서고 국민들도 그렇게 하도록 설득함을 의미합니다. 또 모든 국민들이 당신 국가의 법 아래에서 똑같이 대우받도록 보장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제 말을 분명히 하겠습니다—저는 동성애자들이 범죄를 저지를 수 없거나 저지르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범죄를 저지를 수 있고 저지릅니다. 이성애자들이 그러하듯 말입니다. 그리고 동성애자들이 범죄를 저지를 때, 그들은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러나, 동성애자라는 것이 결코 범죄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모든 국가의 사람들에게 저는 말합니다. 인권을 지지하는 것은 여러분의 책무이기도 합니다. 동성애자들의 삶은 법에 의해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일상에서 가족으로부터, 이웃으로부터 받는 대우에 의해 만들어 집니다. 전세계의 인권 향상을 위해 아주 많은 일을 했던 엘레노어 루즈벨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런 권리는 집에서 가까운 작은 장소들에서 시작한다—사람들이 사는 거리, 다니는 학교, 일하는 공장, 농장, 그리고 사무실. 이러한 장소들은 여러분이 활동하는 영역입니다. 여러분이 취하는 행동, 여러분이 옹호하는 그 이상에 따라, 여러분이 있는 곳에서 인권이 잘 자라게 될지 여부가 결정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전 세계의 LGBT 남성과 여성들에게,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이 어디에 살든 삶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 지지네트워크과 연결되어 있든 아니면 고립되고 취약하다고 느끼든, 여러분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 바랍니다. 세계 곳곳의 사람들이 여러분을 지지하기 위해, 여러분이 겪고 있는 부당함과 위험을 끝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저의 나라에서는 분명히 사실입니다. 그리고 미국에 여러분의 협력자와 수백만명의 친구가 있습니다.

 

오바마 행정부는 LGBT의 인권을 포괄적인 인권정책의 일부이자 외교정책의 우선순위로 옹호하고 있습니다. 우리 대사관에서는, 외교관들이 특정한 사건과 법에 대한 우려를 제기하고 있고, 모두를 위한 인권보호를 강화하기 위해 다양한 파트너들과 함께 활동하고 있습니다. 워싱턴에서 국무부에 전담팀을 신설하여 이 활동을 지지하고 조정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몇달 후에는 외교관들 모두에게 한층 더 노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툴킷(toolkit)을 제공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LGBT 인권활동가들에게 긴급지원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었습니다.

 

오늘 아침, 워싱턴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해외에서 일어나는 LGBT에 대한 인권침해와 싸우기 위한 최초의 미국정부전략을 마련하였습니다. 이미 국무부와 정부 전체에 걸쳐 진행되고 있던 노력들에 더하여, 해외에서 일하고 있는 모든 미국 정부기관들이 LGBT 상태와 행위를 범죄화하는 것에 대항하고, 취약한 LGBT 난민과 망명요청자를 보호하는 노력을 강화하고, LGBT 권리에 대한 보호를 향상하도록 외교적으로 지원하고, 차별에 대항하는 싸움에 국제적 기관들의 협력을 얻고, LGBT에 대한 학대에 신속하게 대응하도록 대통령이 지시하였습니다.

 

저는 또한 우리가 이제, 전 세계에서 이 쟁점과 관련해 활동하는 시민사회단체들의 활동을 지원할 글로벌평등기금(Global Equality Fund)을 발족함을 기쁜 마음으로 알립니다. 이 기금은 시민사회단체들이 사실을 기록함으로써 옹호의 대상을 정하고, 법을 어떻게 도구로 활용할 수 있는지 배우고, 예산을 관리하고, 직원을 훈련시키고, 여성 단체와 기타 인권단체들과 파트너쉽을 만들 수 있게 도울 것입니다. 이 기금을 시작하기 위해 우리는 3백만달러 이상을 위탁했고, 다른 국가들도 이 기금을 후원하는데 우리와 함께 할 것이라 희망하고 있습니다.

 

적대적인 지역에서 LGBT커뮤니티를 위한 인권을 옹호하는 여성과 남성들, 그 중 몇 분들이 오늘 여기에 함께 있는데요, 이분들은 용감하고 헌신적이며, 우리가 드릴 수 있는 모든 도움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앞에 놓인 그 길이 쉽지 않을 것임을 우리는 압니다. 굉장히 많은 일들이 우리 앞에 놓여있습니다. 그러나 변화가 얼마나 빨리 올 수 있는지 우리들 중 많은 사람들이 직접 눈으로 보았습니다. 우리 생애에 많은 지역에서 동성애자에 대한 태도가 바뀌었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이 주제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고, 대화와 토론에 참여하고, 동성애자인 사람들과 개인적으로 또 전문적으로 관계를 맺는 동안, 해를 거듭하며 이 주제에 대한 우리 자신의 신념이 더 깊어짐을 경험하였습니다.

 

많은 지역에서 이러한 진화는 명백합니다. 한 예를 강조하자면, 인도 델리고등법원(Delhi High Court)에서는 2년전에 동성애를 비범죄화하면서 이렇게 적었는데 제가 인용해보겠습니다. “인도 헌법에 깔려있는 주제라고 할 수 있는 한 가지 주의(主義)가 있다면, 그것은 포함성(inclusiveness)이다.” LGBT인권에 대한 지지는 계속해서 높아질 것이라는 데에 제 마음 속에는 한치의 의심도 없습니다. 많은 젊은 사람들에게 이것은 단순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은, 그들이 누구이고 누구를 사랑하든지 상관없이, 존엄하게 대우받고 그들의 권리를 존중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사람들이 인권을 지지하라고 다른 사람들에게 주장할 때 사용하는 문구가 있습니다. “역사의 바른편에 서라.” 미국의 이야기는 반복적으로 불관용과 불평등에 맞서 싸워 온 한 국가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노예제를 두고 잔인한 남북전쟁을 치루었습니다. 여성, 원주민, 인종적 소수자, 아동, 장애인, 이민자, 노동자 등등의 권리를 인정하기 위해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사람들이 캠페인에 참여하였습니다. 그리고 평등과 정의를 향한 행진은 계속되어 왔습니다. 인권의 범위를 확장하는 것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역사의 바른편에 섰고 지금도 바른편에 서 있는 것이며, 역사는 그들을 명예롭게 기억합니다. 인권을 수축시키려고 했던 사람들은 틀렸고, 역사는 이것 또한 반영하고 있습니다.

 

제가 오늘 나눈 생각들 속에는 의문의 여지가 있고 그 의문들에 대해 의견들이 여전히 진화하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이전에 너무나 자주 그래왔던 것처럼, 의견은 다시 한번, 모든 사람은 존엄성과 권리를 가지고 자유롭고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진리, 그 불변의 진리로 모아질 것입니다. 우리는 다시 한 번 이 세계인권선언에 있는 말들을 실현하도록 요청받고 있습니다. 그 요청에 대답합시다. 우리의 국민, 우리의 국가를 위해, 그리고 오늘 우리가 하는 일로 삶이 정해지는 미래 세대를 위해, 역사의 바른편에 서도록 합시다. 앞에 놓인 그 길이 아무리 멀어도 우리가 성공적으로 함께 여행할 것이라는 큰 희망과 자신감으로 저는 여러분들 앞에 나왔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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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다람쥐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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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을 사이에 둔 동지 김지선 후보와 힐러리 클린턴>

 

노원병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노회찬 전 의원의 아내 김지선 씨에 대해 많은 언론의 조명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처음엔 “아무리 그래도 아내를 내보내는 건 좀..”이라 생각했던 사람들도 김지선 후보가 살아온 이력을 살펴본 뒤에는 대부분 고개를 끄덕였을 것입니다. 그만큼 김지선 후보는 남편만큼이나 옹골찬 삶을 살아온 여성입니다.

 

지난 2월 1일 미국의 주간지 뉴스위크는 ‘미국 역사상 가장 막강한 여인’이라는 제목과 함께 한 여인을 표지모델로 선정했습니다. 같은 날 4년간의 재임을 끝내고 당당히 퇴임식을 가진 전 미국 국무부장관 힐러리 클린턴이었습니다.

 

▲다르면서 같은 두 사람

 

명문가의 딸로 태어나 엘리트코스를 거쳐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정치인으로 성장한 힐러리와, 척박한 땅에서 여성노동운동가로, 노동운동가의 아내로 억척스럽게 살아온 김지선. 겉으로 보기엔 전혀 닮은 구석이 없을 것 같은 두 사람이지만 저는 김지선 후보에게서 힐러리의 향기를 느낍니다. 이름도 없는 새내기 정치인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여성정치가에 비견하는 것이 낯설지 모르겠으나 가까이 들여다볼수록 둘은 많은 것들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공통점은 유명 정치인의 아내라는 점이겠죠. 한국인이 선호하는 정치인 아내의 모델은 ‘내조형’입니다. 선거철이 되면 정치인의 아내들이 줄줄이 TV에 나와 '내조 경연대회'를 엽니다. 이와는 달리 김지선과 힐러리는 내조형이 아닌 동지적 관계로 각자의 남편을 지지해왔습니다. 김지선은 노동운동현장에서, 힐러리는 정치일선에서 남편과 ‘따로 또 같이’해왔습니다. 남편이 정치적 위기에 빠졌을 때 스스로 구원투수로 등판했다는 점도 비슷합니다. 힐러리는 남편이 지퍼게이트로 탄핵위기에 몰리자, 김지선은 남편이 부당한 판결로 의원직을 상실하게 되자 직접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나섰습니다. 힐러리가 대통령 남편을 도와 건강·복지정책, 인권정책을 제안했다면, 김 후보는 노원구 국회의원인 남편을 도와 지역자치활동가로 활약하면서 의료생협과 '마들주민회'를 이끌었습니다. 

 

그러나 둘의 가장 중요한 공통점은 남편과의 관계에 있지 않습니다. 김지선과 힐러리의 삶을 관통하는 핵심 공통분모는 여성운동가, 사회운동가라는 정체성입니다. 두 여인 모두 남편과의 관계를 설명하는 것이 미안할 정도로 뚜렷한 자신들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지난 2008년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힐러리가 오바마를 턱밑까지 위협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여성유권자들의 전폭적인 지지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경선에서 NOW(전미여성기구) 등 주요 페미니스트 단체들이 모두 힐러리를 지지했고, 특히 소수계층 여성들에게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는 사실은 그녀가 누구와는 달리 생물학적 여성정치인에 그치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합니다. 대학시절부터 여성운동, 환경운동으로 명성을 날렸던 힐러리는 정치인이 된 뒤에도 여성과 소수자문제에 대한 입장을 적극적으로 표명해 왔습니다. 1992년 남편 빌 클린턴이 대통령이 되자 역사상 가장 '능동적인' 퍼스트레이디가 되어 여성 낙태권, 건강·복지정책, 인권정책 등에 직접 정책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2011년 12월 6일 세계 인권의 날을 앞두고 힐러리는 인상적인 연설을 통해 최초로 미국 정부의 성소수자에 대한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혔습니다. 연설이 끝나자 청중들 모두가 한참동안 기립박수를 보냈을 정도로 뜨거운 찬사를 받았던 이날의 연설문에는 미국이 세계 성소수자의 인권신장에 앞장서겠다는 주제가 담겨있었습니다. 이 장문의 연설문은 세계 각지에서 성소수자 인권보호를 논리적으로 뒷받침하는 바이블처럼 쓰여 지고 있습니다. 용기 있는 페미니스트가 정치를 할 때 어떤 일이 생길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예입니다.

 

<2011 세계 인권의 날 연설 전문(힐러리 클린턴) http://tongcenter.tistory.com/10>

 

 

<한국에서도 멋진 스타정치인 부부가 탄생할지도 모르겠다>

 

서울 노원병에 출마한 김지선 후보 역시 힐러리에 뒤지지 않는 한국의 여성운동가입니다. 김 후보의 출마선언이 있던 날 진보정의당 심상정 의원은 "(김지선 씨가) 노회찬 대표와 조준호 대표의 노동운동 대선배다. 노 대표가 김 후보보다 먼저 한 것은 국회의원밖에 없다. 노 대표의 부인이라서가 아니라 노원병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후보라서 추천한 것을 기억해 달라. 김지선 후보의 이력에서 노회찬이란 남편을 둔 사실은 김 후보 이력의 사이드메뉴에 불과하다"며 김 후보를 소개했습니다. 심 의원의 소개에서 알 수 있듯 김 후보는 40년이란 세월을 오롯이 여성운동과 노동운동에 바쳐온 인물입니다. 16살 어린 나이에 가난에 떠밀려 공장에 취직한 그녀 삼원섬유, 대성목재, 동일방직 등에서 노조간부를 지내며 두번의 옥고를 치렀습니다. 특히 1978년 부활절 새벽 50만이 운집한 여의도광장 연합예배 도중 단상에 올라가 CBS라디오 생방송에 "노동3권 보장 하라" "동일방직문제 해결하라"를 외치다 구속됐던 '부활절예배사건'은 한국 여성노동운동사에 큰 획을 그은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이후 인천해고노동자협의회 사무국장, 인천여성노동자회 회장을 지낸 김 후보는 '노동자들의 영원한 누나', '인천 노동운동의 대모' 등으로 불리며 여성, 사회운동가로서의 삶을 이어왔습니다. 1988년 인천에서 노동운동을 하다 만난 후배 노회찬이 청혼을 해오자 "결혼을 하면 운동에 지장이 있다"며 퇴짜를 놨을 정도로 강한 사회의식을 가졌던 김 후보. 그녀가 성공한 여성운동가라는 증거는 그들의 가정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습니다. 김&노 부부는 이미 오래 전에 청소, 빨래, 요리 등 가사일에 대해 완전한 분담을 이뤘습니다. 서로가 바깥일을 하는 부부에게 당연한 일일 수 있지만, 한국사회에서 이들 부부처럼 가사일의 '완전평등'을 이룬 예는 쉽게 찾아보기 힘듭니다.

 

<심상정 의원 보도자료 전문 http://www.justice21.org/bbs/board_view.php?num=12577>

 

▲스타정치인 부부의 탄생을 기대하며

 

여성권익신장을 위해 가장 '높은 곳'에서 활동해온 사람이 힐러리였다면, 김지선 후보는 가장 '낮은 곳'에서 활동해온 사람입니다. 둘은 각자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멀리 떨어져 활동해왔지만, 평등이라는 가치아래 같은 전선에서 싸워온 셈입니다. 힐러리 클린턴은 5년 전 경선에서 패하는 아픔을 겪은 뒤 미국의 국무장관이 되어 누구보다 성공적인 4년을 보냈습니다. 그녀는 이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여성정치인이자 미국에서 최고 인기있는 정치인입니다. 

 

김지선 후보에게 이번 선거는 만만치 않습니다. 안철수라는 거물급 정치인을 상대로 당차게 도전장을 내민 무명 정치신인의 패기는 무모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진 다윗을 탓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한국정치에 필요한 것은 흔하디 흔한 생물학적 여성정치인이 아닌 젠더적 여성정치인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김지선이라는 걸출한 여성운동가가 전국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정치에 데뷔한다는 것은 승패와 상관없이 의미있는 일입니다. 조만간 한국에서도 멋진 스타정치인 부부가 탄생할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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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다람쥐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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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3.18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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