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짜면은 참 훌륭하다. '짜장이냐 짬뽕이냐' 영원할 것만 같았던 중국집의 난제를 한방에 날려버렸으니 이걸 개발한 사람에게 노벨상이라도 줘야 하지 않을까. 짬짜면의 기발한 착상 덕분에 복짬면, 탕짜면 같은 파생상품들도 등장했다. 나같이 요리못하는 독거세대에게는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짜장+짬뽕이 결합하여 탄생된 짬짜면이지만 이것의 본질은 '결합'이 아닌 '나뉨'에 있다. 짬짜면이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있다면 '섞임'이다. 이것들이 따로 담겨 있을 땐 각자 훌륭한 음식이지만 섞이는 순간 개밥이 된다. 짜장과 짬뽕사이를 아슬아슬하게 가로막고 있는 칸막이야말로 '경계의 미학'을 보여주는 짬짜면의 정체성이다.  

 

짬짜면처럼 융합의 시대를 거부하는 것들이 더러 있다. 예컨데 인간과 신의 관계가 그렇다. 완전무결한 신의 존재는 불완전한 인간과의 '경계'로 인해 의미를 갖는다. 이것들이 반씩 섞인 존재가 있다면 어떨까? 그 이름부터 괴상한 반인반신(半神半人)이다.

 

반인반신이 된 박정희는 행복할까?

 

"박정희 전 대통령은 반신반인으로 하늘이 내렸다란 말밖에는 할 말이 없다" -남유진 구미시장-

 

14일 구미에서 열린 '박정희 대통령 96회 탄신제 숭모제례'라는 행사에서 나온 발언이다. 이날 행사에는 도지사와 시장, 국회의원, 교육감 등 각계 인사와 3천여명의 인파가 몰려 살아있는 권력을 실감케 했다. 반인반신이란 참신한 표현 덕분에 구미시장의 발언이 부각됐을 뿐 이날 축사를 맡았던 김관용 지사와 김태환, 심학봉 의원 역시 그와 별반 다르지 않은 숭배의 언어를 쏟아냈다. 그날의 축사 릴레이는 흡사 누가누가 잘하나를 겨루는 북한의 웅변대회를 방불케 했다. 지난달 서울 모 교회에서는 올해 제1회 박정희 추모예배가 열렸다. 그를 34년간 '남몰래' 흠모해오던 일부 기독교인들이 올해 갑자기 추모를 하겠다며 판을 벌린 거다. 박정희를 반인반신으로 추대한 탄신제와 그가 죽은지 34년만에 열린 추모예배, 이것들이 정말 죽은 박정희를 위한 것일까?  

 

종교의 자유가 허락된 나라에서 누가 무엇을 섬기든 탓할 수 없다. 세상에는 외계인을 믿는 사람도, 소를 믿는 사람도 있고, 박정희를 믿는 사람도 있나 보다. 문제는 박정희라는 인물이 외계인이나 소와는 달리 한국의 현실정치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이름이라는 데 있다. 이 대목에서 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제정분리의 원칙'을 생각하게 된다. 박정희를 반인반신의 지위에 올려 놓는 순간 그의 피(정치적 정체성)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박근혜 정권은 비이성적인 '신성성'을 부여 받는다. 반인반신의 적자가 범인(凡人)일리는 없지 않은가.  

 

제사란 죽은 사람이 아닌 산 사람을 위한 의식이라는 말이 있다. 위 사진에서 사람들은 박정희 동상을 향해 절을 하고 있지만 마음은 다른 곳을 향해 있을지 모른다. 사이비 종교의 공통된 특징은 현세의 기복성(祈福性)이다. 반인반신의 적자가 현직 대통령이다. 죽은 박정희와 산 박근혜, 사람들이 절을 하면서 누구에게 바라는 바가 크겠는가. 박정희를 목놓아 찬양하는 정치인들의 속내야 두말할 것도 없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제정분리의 원칙을 심대하게 훼손하고 있는 쪽은 천주교가 아닌 '박통교'다.

 

그런데, 후대의 필요에 의해 신격화되는 것이 박정희에게 좋은 일일까? 남유진 시장이 진심으로 박정희를 반인반신으로 생각하는지, 단지 여왕의 환심을 사기 위한 아첨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어느 쪽이든 망자를 수렁에 빠뜨린 것만은 분명하다. 대통령 박정희, 독재자 박정희는 매우 논쟁적인 '인간'이며 적어도 한쪽에서는 성공한 정치가의 반열에 올라 있다. 그러나 반인반신이 된 박정희는 조롱과 터부의 대상일 뿐이다. 인간 박정희의 업적(?)을 높이 사는 '일반인들'에게도 반인반신이 된 박정희는 거부감으로 다가온다. 아무리 한국의 민주주의가 취약하다 한들 죽은 독재자를 신으로 떠받들 봉건신민들은 그리 많지 않다. 

 

근대 이후 동아시아에는 반인반신으로 미화된 권력자들이 여럿 있었다. 제국주의 일본의 천왕이나 북한의 1세대 독재자 김일성이 대표적이다. 그네들에게 신에 버금가는 권위가 필요했던 이유는 체제(권력)의 안녕을 위해 사회 구성원의 희생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최근 일련의 박정희 신격화 작업은 현 정권의 정통성 결여에 대한 보수세력의 부담감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반인반신’이라 불려지는 인간은 섞여버린 짬짜면 만큼이나 안타깝다. 신과 인간은 경계선이 있을때 각자 존재의 의미가 있다. 이것들이 섞여버린 반인반신은 개밥과도 같은 존재다. 죽은 독재자를 신의 영역으로 밀어올리는 것은 산 자들의 욕망이다. 누군가를 진정 아름답게 기억하려 한다면 그사람을 괴물로 만드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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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11.27 11:01 신고

    황송하게도 우리는 드디어 신민이 되었군요.
    참 희안한 21세기입니다.

  2. 2013.11.27 14:07 신고

    엄청난 경제성장율을 기록한 최근의 중국지도자들을 중국인민들이 반신 취급하던가요? 베트남도 7%이상의 경제성장을 했는데 베트남 사람들이 당지도부를 신성시하는 건 보지 못했습니다. 박통이 7% 성장할때 대만은 10%성장했어도 대만이 지도자를 반신으로 섬기지는 않지요. 물가상승율 10%해서 원망듣던 박통이 신이라니, 나원참........

  3. 2013.11.28 10:21 신고

    가끔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반인반신을 외치는 저 군상들이 누굴 위해 절 하고 있는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무슨 이유로 쪽팔림을 무릅쓰고서라도 그런 유치한 소릴 지껄이는지도 알구요
    근데 실상 우리사회는 그런 인간들이 행세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릴적 도덕책에서 배웠던 권선징악 따위는 실상엔 존재하지 않습니다

    의문이 생깁니다 왜 우리사회는 부정이 상식을 뒤엎고 바른 가치보다는 발빠른 처세가 득세하는데도
    용납이 되는걸까?
    전 그 기원을 친일청산의 부재에서 시작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멀리 갈거없이 바로 할아버지 세대입니다
    오랜 식민지시대가 종식되고 새세상이 오리라 기대했던 사람들은
    친일반역자들이 어떻게 살아남고 어떻게 부를 축적하고 어떻게 권력까지 소유하게 됐는지
    그 과정을 모두 똑바로 지켜봤습니다
    새세상은 둘째치고 제거돼야 할 가장 큰 부정이 오히려 한국사회를 지배하게 되는 과정을
    지켜본 국민들에게 사회정의니 하는 명제는 자신들의 출세를 가로막는 구차한 용어일 뿐이었을겁니다.
    해방 60년이 넘어오며 우리사회는 불합리적인 사회성만이 축적되어 왔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친일청산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민족반역자 들이야 물리적 시간에 의해 자연 청산 됐지만
    그들에 의해 우리사회에 남겨진 잘못된 가치관들을 고치기 위해서라도
    꼭 친일청산이 필요합니다.
    그치만 2013년 오늘도 우리는 너무 큰 저항들로 인해 친일청산은 요원해만 보입니다.

  4. 2014.03.01 12:57 신고

    박정희뒤에 각하를 안붙이다니...

 

본 글은 이분의 '이름'만 관련이 있습니다.

 

"박근혜 사퇴하라"         - 당신 조국이 어디야?

"천안함은 좌초됐다"      - 당신 조국이 어디야?

"국가보안법 폐지하라"   - 당신 조국이 어디야? 

"한미FTA 반대한다"       - 당신 조국이 어디야?

"반값등록금 실시하라"   - 당신 조국이 어디야?

 

'생각의 조국'을 묻는 것은 국가주의자들의 일관된 문법이다. 저들이 말하는 '조국'이 어디인지는 몰라도 아마 내 조국과는 다른 나라일거다. 적어도 나의 조국은 사상의 자유가 보장된 민주국가라고 믿고 있으니 말이다. 한국말을 쓰고 한국 땅에 살고 있는 사람의 조국이 한국이라는 것을 저들도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저 궁금쟁이들은 왜 자꾸 남의 조국을 캐묻는 걸까? "당신 조국이 어디야?"라는 질문의 속내는 이렇다.

 

‘당신도 한국사람이면서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어’

 

즉 '사람'이 아닌 '생각'의 국적을 묻는 것이다. 사람들의 관념에 국적이 존재한다고 믿는 국가주의적 상상력, 무엇에든 국적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저들의 신념은 주술과도 같다. 과격한 국가주의자들의 사고는 조국에서 시작돼 조국으로 귀결된다. 과연 정치적 견해에 국적이 존재하는 것일까? 나의 가치관은 조국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결정된 산물일까?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조국타령에 궁금하여 친애하는 네이버에게 그 뜻을 물었다.

 

조국(祖國):

1. 조상 때부터 대대로 살던 나라

2. 자기의 국적이 속하여 있는 나라  출처:네이버 국어사전

 

어느 쪽으로 해석하더라도 정치적 견해에 ‘조국’이 끼어들 틈은 별로 없어 보인다. 물론 진공상태의 관념이란 존재할 수 없으며 개인의 사고체계에 나고 자란 조국의 이데올로기가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한사람의 가치관은 국적 이외에도 학습수준과 소득수준, 부모의 영향, 선천적 특질, 영화, 음악, 우연 등 수많은 것들에 영향을 받아 형성된다. 이렇게 복합적으로 구성된 사람의 가치관을 국적을 물어 예단하려는 태도는 혈액형별 성격맞추기 만큼이나 어리석다. 

 

사람의 사고는 국적에 예속되지 않는다. 예컨데, 한미FTA에 대한 입장은 한국인인가 미국인인가보다는, 노동자인가 사용자인가에 따른 계급적 정체성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 국가보안법 폐지에 대한 입장은 남북한 국적의 문제가 아닌, 자유주의와 국가주의의 갈등에 가깝다. 이런 이슈들에 대한 입장에 '조국'을 묻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당신 조국이 어디야'라는 퉁명스런 질문은 주로 대통령과 정부정책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향한다. 이렇게 사용되는 '조국'이란 폭력의 다른 말이다. 내국인이 아니라 해서 대통령과 정부정책을 비판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재외동포나 외국인, 외계인이라 한들 한국의 대통령을 비판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비판의 자격을 국적으로 제한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저 질문을 즐기는 사람들은 흔히 내국인과 외국인을 가르는 차이로 '애국심'에 대해 이야기한다. 전체주의와 '애국'을 혼동한 결과다. 저들의 조국타령에는 '한국사람이라면 응당 ~~한 생각을 가져야 한다'는 전체주의적 전제가 깔려있다. 사회 구성원의 생각을 일치단결시켜 사회(권력)의 안녕을 지키고자 하는 태도 - 이런걸 파시즘이라고 부른다. 내가 자유주의자로서 저들의 조국타령을 비판하는 이유다. 자유주의국가에서 통일된 '조국의 생각'이란 건 불가능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론을 통일하겠다'거나 '국론분열을 묵과하지 않겠다'는 파시스트의 언어를 거침없이 쏟아내고 주류언론은 그에 대해 별다른 비판의식을 가지지 않는다. 국민의 생각은 대통령이 묵과하고 말고 할 대상이 아니다. 대통령은 국민의 생각을 다스리겠다는 중세기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나는 내가 발 딛고 사는 이나라가 잘되길 바란다. 모든 사회 구성원이 차별없이 행복하게 살길 바란다. 어떤 이의 눈에는 만족스럽지 못할는지 몰라도 조국에 대한 나의 애정은 이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아마 조국을 '의심'받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할 것이다. 내 생각에 조국을 묻지 마라. 나의 생각은 조국의 것도 당신의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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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11.26 17:48

    비밀댓글입니다

  2. 2013.11.26 20:15 신고

    미친ㄳ들 자기사상이 다인줄 착각하는 시대에 너는 없고 나만 생각하는 아주이기적인 말이다
    조국씨 진정 마음에 잇는 말하시요
    그냥 입에서 나오느대로 이야기 하지말아요

  3. 2013.11.27 06:52 신고

    뭐만하면 조국타령이야 ㅋㅋ

  4. 2013.12.06 00:37 신고

    참 당신도 그 나이 들어서 입 가지고 글 가지고 조국 사랑한다고 하는데 당신만이 현명하다는 생각으로 모든 인간이 거드니 세상이 시끄러우니 제발 이번 겨울 방학에는 시간 좀 내서 절에라도 들어가서 묵언 좀 하면서 중도와 중용의 깊은 의미 좀 공부하소. 입가지고 짧은 지식 가지고 세상 진단하지 말고. 누군 당신 만큼 몰라서 세상 지켜보는즐 아시오?

인간은 누구나 상을 좋아하고 벌을 두려워한다. 성악설을 신봉했던 한비자는 인간의 이기심을 통제하는데 상(賞)과 벌(罰)만큼 좋은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군주(국가)가 이를 불편부당하게 집행한다면 공동체의 질서가 바로 잡히고 국가의 신뢰가 높아진다는 것이 한비자가 제시한 신상필벌(信賞必罰)의 원칙이다. 이 원칙은 법치주의를 강조하는 현대국가에서도 중요한 가치로 받아들여진다. 국가 기관, 특히 엄정한 법집행으로 국가의 신뢰를 담보해야 할 수사기관의 신상필벌이라면 그 중요성을 두말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중징계냐 경징계냐, 국정원사건 수사팀을 이끌었던 윤석열 팀장의 징계 수위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어제 대검찰청이 윤 팀장에 대한 중징계를 청구한 가운데 그 과정에서 대검찰청이 감찰위원회의 결정을 무시하고 일방적인 결정을 내렸다는 감찰위원들의 폭로가 나왔다. 찍어내기 사전각본설이 제기되는 것이 당연하다. 윤석열 팀장의 징계수위에 이목이 집중되는 이유는 이것이 수사방해 의혹을 받고 있는 조영곤 서울 중앙지검장에 대한 무혐의 처분과 대비를 이루기 때문이다. 대검찰청이 두 검사를 대하는 온도의 차이는 그동안 수사팀이 받았을 외압의 크기를 짐작케 한다.  

 

이런 이해할 수 없는 처벌기준은 검찰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국정원사건 수사가 시작된 이후 비슷한 일들을 이미 여러차례 겪어 왔다. 윤석열 팀장의 징계는 보다 큰 그림의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사건의 당사자인 국정원과 이를 수사했던 경찰과 검찰, 그들 세 조직에서 일어난 신상필벌의 흐름을 살펴보자.  

 

<국정원사건 관련 검·경·국정원 신상필벌 표 by @LOVELYTAENG>

 

작년 대선 직전 국정원 심리전담반의 조직적인 선거개입을 고발했던 국정원 직원 3인은 올해 초 원세훈 전 원장의 강도 높은 '색출작업' 끝에 모두 파면당했다. 그들의 제보는 분명 공익에 부합하는 것이었으나 야당도, 유명무실한 '공익신고자 보호법'도 그들을 지켜내지 못했다. 반면 검찰은 지난 6월 사건의 주모자인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수사 은폐 사건을 지휘했던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을 불구속기소하면서 국정원 이종명 전 3차장, 민병주심리전단장(10월 18일 추가 기소), 김 모 심리전단 직원 등 3명, 외부 조력자 이 모씨 등에 대해 전원 기소유예처분을 내렸다. 기소유예란 혐의사실은 인정되나 정상을 참작해 ‘봐주겠다’는 뜻이다. 검찰이 밝힌 기소유예의 변은 그들이 "상급자의 지시에 따랐을 뿐"이라는 것이었다. 검찰은 이렇게 국정원의 '복종범죄자'들을 모두 풀어주면서 공무원의 ‘위법한 명령에 따를 의무’를 인정했다.

 

지난 2월초 국정원사건의 수사책임자였던 권은희 당시 수서경찰서 과장은 뚜렷한 이유없이 송파경찰서로 전보됐다. 수사에 의욕적이었다는 이유로 '찍어내기'를 당했다는 설이 무성했고, 지난 8월 권 과장은 국정조사에서 실제로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의 외압이 있었음을 폭로 했다. 그녀는 한 달 뒤 외압사실을 언론에 밝혔다는 이유로 서울경찰청으로부터 경고를 받기도 했다. 반면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과 함께 사건의 축소·은폐수사를 모의한 것으로 알려진 '3인방'은 모두 사건 이후 승진·영전한 것으로 밝혀졌다. 최현락 당시 수사부장은 경찰청 수사국장으로, 이병하 당시 수사과장은 여주 경찰서장으로 각각 승진했고, 김병찬 당시 수사 2계장은 그자리를 유지하고 인사상 영전했다. 또 작년 12월 16일 문제의 경찰 중간수사발표 기자회견에서 "(댓글이) 삭제된 흔적은 있으나 혐의사실과 관계가 없다"고 말해 빈축을 샀던 김수미 분석관 역시 수사관으로 승진했다. 김수미 분석관은 국정조사에서 권은희 과장과 상반되는 진술로 김용판 전 청장을 옹호하기도 했다. 국정원 직원 김하영과 소개팅으로 만나 400여통의 문자를 주고 받았던 신동재 개포경찰서 경위도 이 과정에서 서울경찰청 회계파트로 승진했다. 국정원사건 은폐·축소수사 의혹과 관련된 모든 경찰관들이 승진했다. 이것들의 개연성이 의심받는 것은 당연하다.

 

<출처:황정인 서울 강남경찰서 수사과장 페이스북>

 

검찰의 상황은 좀 더 드라마틱하다. 권은희 과장의 전보 이후 경찰의 수사가 지리멸렬 그 자체였다면, 6월 경찰로부터 수사를 이관받은 검찰 수사팀은 뭔가 달랐다. 채동욱 총장과 윤석열 수사팀장은 경찰이 내놓은 수사결과를 완전히 뒤집으며 축소·은폐를 지시한 혐의로 김용판을 기소했고, 원세훈의 선거법위반-구속여부를 놓고 황교안 법무부장관과 각을 세우기도 했다. 예상치 못했던 검찰의 태도에 당황한 황교안 장관은 원세훈에 대한 불구속수사를 고집하며 검찰을 압박했다. 수사지휘권파동을 연상케하는 줄다리기 끝에 양측은 결국 <선거법위반 혐의 인정-불구속기소>라는 타협안에 사인했다. 황교안 장관과 갈등을 빚었던 채동욱 총장은 지난 9월 엉뚱하게도 사건과 무관한 사생활 논란으로 사임한다.

 

채 총장이 물러난 뒤에도 수사팀은 의욕은 꺾이지 않았다. 수사팀은 10월 17일 아침 국정원직원 3인을 전격 체포한 뒤 20일에는 트위터 대선개입건 등을 포함하는 공소장 변경을 신청했다. 그러나 윤석열 수사팀장은 이 '작전'을 사전에 보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감찰지시와 함께 수사팀에서 배제되었고, 며칠 뒤에는 박형철 수사부팀장마저 공보업무에서 배제된 것으로 확인됐다. 국정감사장에서 황교안 법무부장관의 수사외압을 폭로했던 윤석열 팀장과, 지난달 직접 공소장 변경을 신청했던 박형철 부팀장이 모두 물러난 수사팀은 이제 완전히 다른 팀이 되었다.   

 

권력노골적인 충성요구

 

국가기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무너졌을 때 이를 회복할 수 있는 첫번째 방법은 신상필벌을 바로 세우는 것이다. 그러나 국정원과 검찰, 경찰은 국정원사건 수사과정에서 나쁜 신상필벌의 전형을 보여줬다. 원칙은 뒤집혔고 방법은 천박했다. 이들이 보여준 신상필벌에서는 동일한 일관성이 나타난다. 세 기관은 한결같이 권력에 충성하는 관료에게 상을 내렸고, 권력의 비리를 추적하는 관료에게 벌을 내렸다. 공을 세운 관료에게 벌을 내리고 일신의 영달만을 꾀하는 탐관오리에게 상을 내린 것이다. 

 

국정원의 공익제보자들이 파면당하는 과정이나, 권은희 과장이 납득할만한 이유없이 전보당하는 과정, 검찰총장이 법무부장관에게 감찰을 받는 과정, 용의자를 체포했다는 이유로 수사팀장이 교체되는 과정, 이 모든 것들이 잘 짜여진 하나의 '작품'처럼 느껴진다. 이것은 권력에 맞서는 자는 언제든 쳐낼 수 있다는 경고이자, 권력의 편에 서는 자에게는 마땅한 상을 내리겠다는 유인이다. 이쯤되면 "법원의 판단을 기다리자"거나 "국정원의 자체개혁" 같은걸 들먹이는 작자들이 딴세상 사람처럼 느껴진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 검찰수사팀이 대단히 어려운 환경에서 고군분투해왔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채동욱→윤석열→박형철로 이어진 '찍어내기 3단콤보'는 더 이상 정상적인 검찰수사로 사건의 전모를 밝힐 수 없음을 말해준다. 경찰수사검찰수사국정조사로 이어진 근 1년 동안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수사는 여전히 사건의 중심부에 접근하지 못했다. 국정원에 이어 국방부와 보훈처 등 정부 다수 부처의 전방위적인 선거개입이 확인됐음에도 수사의 창끝은 전임 권력자의 근처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사건의 주모자인 원세훈 전 원장조차 공직선거법위반이 아닌 개인비리혐의로 겨우 구속하고 있을 뿐이다.

 

자연스럽게 결론은 특별검사제로 모아진다. 외압으로부터, 무너진 신상필벌체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은 이제 특검이 유일하다. 지난주 특검실시를 요구한 야권의 연석회의를 환영한다. 오래 전에 했어야 할 일을 드디어 하게 된 거다. 모처럼 의기투합한 범야권이 특검관철을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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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다람쥐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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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11.14 09:57 신고

    우리는 권력앞에 무능한건가? 분명 주정한 일들이 벌어졌는다는는건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하거나 울분을 터트리는데 거기에 혜택을 본사람은 말을하지 않으니 사회적 개혁과 민주주의 발전은 요원한걸까? 아니다. 이런 기회에 일련의 부정건거개입을 끈어내지 못하면 공정한 선거를 통한 사회 발전은 어렵기에 끝을 봐야한다.

  2. 2013.11.14 13:44 신고

    아부와 아참만 잘하는 간신만 있는것은 아니고. 충신들도 있지요. 드물어서 찿기가 어려울 뿐이지.

  3. 2013.11.14 20:34 신고

    조선도 이렇게 지들끼리 다 해먹고~백성들은 배골고-그러다~나라 뺐기고!
    그들은 친일파로 다시 권력잡고~~계속반복~~

 

누가 그녀에게 '여성스러움'을 강요하는가

 

한 여자축구선수가 '여성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퇴출위기에 놓였다는 매우 '한국적인' 뉴스다. 여자 실업축구 WK리그 6개 구단이 지난 5일 서울시청의 간판인 박은선 선수의 성정체성에 문제를 제기했다. 이날 6개 구단 감독들은 박 선수를 계속 경기에 뛰게 하면 리그 자체를 보이콧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 시즌 득점왕에 올랐던 뛰어난 실력과 180㎝, 74㎏의 훤칠한 몸매, 짧은 머리 많은 팬들을 매료시켰던 그녀의 '남성스러움'이 그녀를 뜻밖에 곤경에 빠뜨렸다. 타구단 감독들이 '여성스럽지 못하다'는 이유로 박 선수의 퇴출을 요구한 것이다.

 

얼핏 이 문제는 단순한 생물학적인 성(sex)의 문제로 보인다. 그러나 내막을 들여다보면 이 사건에 섹스와 젠더(gender)의 문제가 어수선하게 뒤엉켜 있음을 알 수 있다. 단순한 섹스의 문제였다면 성별검사로 간단하게 매듭지어졌을 일이 왜 이렇게 시끄러워진 걸까?  

 

“성별 검사도 한두번 받은 것도 아니고, 월드컵, 올림픽 때도 받아서 경기 출전하고 다 했다. 그때도 어린 나이에 기분이 많이 안 좋고 수치심을 느꼈는데 지금은 말할 수도 없다. 한 가정의 딸로 태어나 28살이 됐는데, 절 모르는 분들도 아니고 저한테 웃으면서 인사해 주시고 걱정해 주셨던 분들이 이렇게 저를 죽이려고 드는 게 제가 고등학교 졸업 후 실업팀 왔을 때와 비슷한 상황 같아서 더 마음이 아프다. 그때(실업팀 입단 때)도 절 데려가려고 많은 감독님들이 저에게 잘해주시다 돌변하셨는데 지금도 그렇다" - 박은선 선수 페이스북 

 

박 선수의 퇴출을 주장하는 축구계의 논리는 여자축구선수면 '여자답게' 적당히 잘해야 하는데 '남자처럼' 너무 잘해서 문제라는 것. 놀라운 것은 박 선수의 퇴출을 주장하는 관계자들도 그녀가 생물학적인 여성임을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정리하자면, 그들은 박은선 선수가 여자임을 알고 있었음에도 그녀가 '여성스럽지 못하다'는 이유로 여자 축구리그에서 퇴출을 요구한 것이다. 이 대목에서 이것이 단순한 섹스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박 선수의 예가 극단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한국사회에서 여성들이 '여성성' 부족으로 인해 공격받는 일은 흔하다. 성별분업 사회에서 '여성스럽지 못함'은 분야를 막론하고 죄악으로 여겨진다. (남성들의 남성스럽지 못함 역시 마찬가지다) 이 공격에 대한 피해여성들의 대응매뉴얼은 대체로 정형화 되어 있다.

 

"겉으론 강해 보여도 알고보면 저도 나약한(마음여린) 여자에요...ㅠ"

 

실제로 박 선수를 옹호하는 목소리 중에는 "분명 여학생이었고 여성스러운 면도 있는 착한 아이인데..."라는 식의 가부장적인 온정이 다수를 이룬다. 저런 태도는 그들의 비판을 반박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동조하는 셈이다. 저 구차한 변명을 정확히 해석하면 이렇다.

 

"(여성성이 부족한 여성은 비반받아 마땅하다는) 당신들의 주장은 옳으나, 사실 내게도(그녀에게도) 당신들이 알지 못하는 숨겨진 여성성이 있다"

 

'여성성 결여'에 대한 비난을 '여성성의 증명'으로 모면하려는 태도다. 피해자들은 이런 식의 '변명'으로 당장의 곤경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그러나 이런 태도는 결과적으로 공격의 근거가 된 성별분업 프레임을 강화-재생산하는데 일조한다. 그런 면에서 박은선 선수의 대응은 꽤나 이색적이다. 그녀는 자신을 향한 축구계의 공격에 대해 "알고보면 저도 연약한 여자에요"라며 그들이 짜놓은 판 위에서 싸우지 않고, "니들 수작 다 보인다"며 문제의 본질을 정면으로 지적하고 있다. 그녀의 지적대로 문제의 본질은 박 선수의 성별이 아닌, 그녀가 가진 월등한 실력을 견제하려는 축구계의 비열함에 있다. 

 

여자축구리그 6개 구단은 치졸하게도 박 선수의 실력에 '여자답지 못한'이라는 전통적인 젠더 프레임을 덮어 씌웠다. '남성다움-여성다움'이라는 사회적 통념을 상대팀 에이스 죽이기에 활용한 것이다. 영민하고 저열하다. 이 말도 안되는 공격으로 박 선수가 퇴출된다면 그녀의 퇴출을 담합한 구단들은 내년 시즌에 보다 나은 성과를 거둘 가능성이 높아진다. 퇴출이 무산된다 해도 박은선 선수의 플레이는 이번 파문으로 인해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 이제 박 선수는 그라운드에서 몸싸움을 할 때마다, 골을 넣을 때마다 마음 한켠에 자신의 '남성스러움(실력)'이 부담으로 다가오지 않겠는가. 상대팀의 에이스에게 '남성성'에 대한 트라우마를 심어준 것 만으로도 그들은 소기의 성과를 거둔 것이다.  

 

나는 가능하다면 그녀가 이나라를 떠나 다른 리그로 진출하는게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덜 여성스러워도 되는' 리그로 말이다. 뛰어난 실력이 '남자다움'으로 매도당하는 리그라면 박은선 같은 훌륭한 선수를 품을 자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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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다람쥐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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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11.06 19:13 신고

    참 한심한 여자팀 감독 관련자들 ...같으니..

  2. 2013.11.06 23:10 신고

    진짜 뭐라 할말이 없네..ㅠㅠ...이런...

  3. 2013.11.07 11:53 신고

    머리를... 길러야 하나요???

  4. 2013.11.18 21:56 신고

    보고 있노라면 앞만 보고 있다고 믿으면서 정작 중요한 건 다 버리고 달려온 한국의 현실이 투영되 보여서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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