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서태지 4집 시대유감 자켓>

 

어제 JTBC 여론조사결과 날로 확산되고 있는 학생들의 대자보열풍에 찬성한다는 의견이 53%, 반대한다는 의견이 23%로 나왔다. 재미있는 건 반대의 이유다. 반대하는 23% 중 가장 많은 비율의 사람들이 반대의 이유를 "학생의 본분은 공부이기 때문"이라 답했다고 한다. 실소가 터져 나왔다. 정부와 여당은 '학생의 본분은 공부다'라는 말을 만들어 낸 사람을 찾아 감사패라도 줘야하지 않을까. 아직도 저런 바보 같은 말을 믿는 사람들이 23%나 된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말이다.  

 

본분(本分): 1. 사람이 저마다 가지는 본디의 신분. 2. 의무적으로 마땅히 지켜 행하여야 할 직분.

출처:네이버 지식백과

 

인간의 쓰임을 하나의 목적으로 규정하는 속박의 언어이자 특정 계층의 사람들을 억압하는 통제의 언어이다. 아무리봐도 인간보다는 기계나 부품에게 어울리는 말 아닌가. 굳이 저런 말이 필요하다면 매우 엄격하게 사용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특정계층(세대)의 사고와 행동을 제약하는 목적으로 사용되어선 안된다.

 

"OO의 본분은 XX다"라는 속박으로부터 가장 자유로워야 할 존재가 있다면 아이들이다.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직분, 신분의 틀로부터 가장 자유로워야 할 아이들에게 유독 저런 덕목이 강요되는 건 이상한 일이다.

 

어제 대전 모 여고의 학생이 교내 게시판에 ‘안녕들 하십니까’ 응답 대자보를 써 붙였다. 대자보는 게시된 지 10분만에 교사에 의해 떼어졌고 학생은 교장선생님과 ‘따듯한’ 면담을 마쳤다고 전해진다. 학교 측의 태도에 대해 논란이 일자 학생의 아버지가 모 사이트에 글을 올렸다.

 

"학교의 동의없이 시국성 게시물을 부착한것에 대한 표현의 자유와의 관련성에는 저도 분명 반대합니다. 명문화된 규율의 유무를 떠나 대학과는 다르게 미성년들을 교육하는 고교이기에 질서유지는 분명 필요하며, 시국과 관련된 글을 다른 학우들이 볼 수 있도록 부착한 것은 아빠로서도 인정할 수 없습니다."

 

대자보를 붙인 여고생은 아마도 '외탁'인 듯싶다. '시국성 게시물'이라는 것이 무얼 의미하는지 '질서유지'는 또 무슨 뜻인지 도통 알 수 없지만 자녀의 자유로운 의사표현을 제약하려는 부모의 의도는 충분히 전해진다. 저 아버지가 주장하는 제약의 근거는 단 한가지, 딸이 '어리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태도는 학생-청소년을 능동적인 대화의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 한국사회에서 무척이나 익숙한 광경이다.  

 

학생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아버지의 해명문은 쓰지 않는 편이 좋았을 졸문이다. 아버지 주장의 요는 이렇다. '미성년자는 각별한 질서유지가 필요하며, 표현의 자유에 대한 통제는 그 중요한 수단 중 하나이다. 더구나 딸이 시국성 게시물(?)을 공공장소에 게시하는 것은 아버지로서 인정할 수 없다.' 부모는 저런 전체주의적인 주장을 가부장적인 태도로 아무 부끄러움 없이 게시했다. 이런 경험을 겪은(계속 겪게 될) 딸이 앞으로 주체적인 인간으로 자라날 수 있을까. 이 부녀의 일화에서 꼭 한쪽의 표현의 자유를 제한해야 한다면 나는 아버지 쪽을 택하겠다. 

 

학교와 부모는 통제와 보호의 대상으로만 인식되던 여학생의 도발적인 의사표현에 당황했다. 민주사회에서 지극히 자연스러워야 할 의사표현 행위가 반 규범적인 일탈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이런 억압적인 분위기에서 제도교육을 마친 대학생들이 대자보운동을 만들어낸 것은 기적같은 일이다. 다행히 한국의 모든 '어른'들이 저렇게 고루한 것은 아닌가 보다. 어제 서울시내 모 대학의 게시판에 전해진 메시지다. 누구보다 여고생의 아버지가 읽어 봤으면 좋겠다.

 

 

 

서고금을 막론하고 학생들의 에너지는 사회의 건강성을 유지하는 동력으로 작용한다. 특히 사회의 건강성이 무너졌을 때 이들이 표출하는 에너지는 중요한 사회변혁의 동력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따라서 학생들의 행동반경을 제한하려는 기성세대의 노력은 사회변혁의 동력을 억압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JTBC의 여론조사와 여고생 아버지의 글은 그것이 어떤 정치적 함의를 담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학생의 본분을 어겼다'라는 훈계는 반값등록금 시위에도, 부정선거 규탄 시위에도, 안녕하세요 대자보 열풍에도 늘 따라다니는 빨간 딱지다. 그것들에 대한 반대가 모두 특정 정치세력에 유리하게 작용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학생들이 얌전히 책상 앞에 앉아있길 바라는 것은 단지 ‘부모’의 마음 때문인걸까? 기성세대가 이 질문에 무어라 답하든 '학생의 본분'이란 말은 현실에서 억압적인 이데올로기로 기능하고 있으며, 일정한 정치적 함의를 지닌다. 위 여론조사에서 대자보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이유가 정말 ‘학생의 본분’ 때문인지는 알 수 없으나 분명한 것은 이것이 학생들의 행동을 제약하는 좋은 구실로 사용된다는 점이다.  

 

기성세대가 젊은세대의 에너지를 두려워하는 것은 본능에 가깝다. 4.19때도 6.29때도 그랬고, 서구의 프랑스혁명, 68혁명때도 그랬다. 젊은이들이 거리로 나오면 지구가 멸명할 것 같은 공포를 느끼는 바보 같은 어른들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다. '학생의 본분'이란 통제는 그들의 공포가 만들어낸 억압의 이데올로기다. 젊은세대의 에너지를 얼마나 잘 수용하느냐에 따라 그 사회의 건강성이 결정된다. 언제나 사회의 발전을 저해하는 쪽은 자유로운 사고를 가진 학생들이 아닌 그들의 에너지를 두려워했던 기성세대였다. 

 

10대, 20대는 학생이기 이전에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인간이다. 인생에서 가장 자유로워야 할 시기를 '학생의 본분'이라는 억압 속에서 보내는 한국의 학생들은 날개가 꺽인 채로 자라는 백조들이다. 그깟 대자보 한장 붙이는 일에도 온갖 검열과 비난을 감내해야 하는 학창시절을 보낸 청년들에게 사회는 창의력을 요구하고 심지어 '창조경제'라는 걸 하자고 한다. 이 얼마나 기만적인가.    

 

학생의 본분을 공부라고 한다면, 어른의 본분은 무엇일까. 어른에게 가장 중요한 '본분'이 있다면 다음 세대에게 좋은 세상을 물려 주는 일이다. 그런데 작금의 학생들은 안녕하지 못하다고 아우성이다. 이유가 무엇이든 학생들이 안녕하지 못한 것은 온전히 기성세대의 탓이다. 이나라의 어른들은 '본분'을 지키지 못한 것이다. 아이들을 안녕하지 못하게 만든 '범인'들이 이제는 아이들에게 안녕을 묻지도 말라 한다. 참 뻔뻔스럽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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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다람쥐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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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12.18 09:43 신고

    공부야 기본적인 상식을 익히고 스스로 해나가는 게 아닐까요?
    학생이 공부만 해야하는 시대는 지났을텐데 말이죠. 오히려 자기가 배운 걸 현실에서 쓸 수 없는 걸 안타까워해야하지 않을까요?

  2. 2013.12.18 10:38 신고

    정치인의 본분은 정치를 잘하는것이지..
    고로 학생의 본분은 공부가 아니다

    • 2013.12.19 04:13 신고

      참으로 어리석은 발언이네요. 좀더 생각을 하식고 쓰심이 좋을듯합니다.

  3. 2013.12.18 12:44 신고

    오..좋은 글입니다. 이런 상식적인 사고방식과 태도가 특정 사상으로 몰려 억압당하는 현 실태에 한숨과 답답함이 있지만 학생들의 깨어있는 정신이 앞날을 기대하게 합니다. 상식적이며 열린 사고를 갖고 있는 대다수의 국민들...화이팅...

  4. 2013.12.19 04:04 신고

    흠 상당히 편파적인 발언을 하시네요. 진보와 보수 둘다 필요합니다. 한쪽이 틀린 것이 아니라 닩지 다른겁닏다.

    • 2013.12.19 12:33 신고

      기성세대라고 다 보수일까요? 학생들이라고 다 진보인가요? 이 글을 진보와 보수로 딱잘라 보시는 님이야말로 편파적인 생각을 하시는 듯. 님말대로 단지 다른거라면 한쪽이 다른 한쪽을 힘으로 통제하고 억압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가요? 그것도 단지 다른거니 그냥 수용해야 하는 건가요?

  5. 2013.12.19 18:37 신고

    좋은글감사합니다.

  6. 2013.12.19 21:05 신고

    학교는 우리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죠.
    현재의 학교는 학생을 통제하는 시스템으로 우리 사회와 닮아 있습니다.
    학생의 의견이나 자유보다는 학교라는 정해진 시스템을 벗어나는 것을 허용하지 않죠.
    수능이라는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룰은 마치 수출 몇 억달러 달성과 같은 목표와 같으며 그 목표를 위해서만 살아가도록 강요당하고 억눌리죠.
    우리 학교가 그런 것은 사회가 그렇기 때문이고 사회가 그렇기에 학교 또한 그런 것입니다.
    더욱 더 안타까운 것은 그러한 사회에서도 계층이 고착화되어 가고 있고 그 룰 또한 공평하다 말할 수 없게 되어가고 있는거죠.
    과연 어디까지 한국사회가 망가져갈지 궁금하네여.

  7. 2013.12.20 02:03 신고

    시냇물이 모여서 강물이 되고
    강물이 모여서 바다를 이루듯. . .
    학생의 목소리가 정의의
    시냇물이 되는 것을 보고, 가슴을 쓸어봅니다.
    안녕하지 못하면서도 안녕하다며 살아왔고
    내 아이에게도 그렇게 안녕하길 바라다니. . .부끄럽습니다.
    희망이 꿈틀거리는 거 맞는거죠?

  8. 2013.12.21 13:36 신고

    세상이 썩은 건 확실하죠. 여당이든 야당이든, 썩었죠. 정치판만? 아뇨. 사회도 썩었죠. 학교에 가보세요 제가 학교 다닐때도 그랬지만 아직도 돈봉투 들고 와요. 공무원은요? 경찰은요? 공무원만? 아뇨. 농협, 축협.. 가보세요. 인맥 줄타기 돈.. 더러워요 그럼 저런 단체만? 아뇨 주변을 보세요 바람 펴서 이혼하는 인간들, 사람 돈을 빼앗고 사기치고 인신매매 등등.. 자영업자들은 어떻게든 세금 안 낼라고 소득 사기치고
    월급쟁이들만 좆빠지는거죠.. 목사님? 스님? 신부님? 다 똑같죠. 덜 할 뿐이죠. 왜 이렇게 우리 사회를 썪어빠진 사회로 만드냐.. 라면요. 이게 사람 사는 세상이라는거죠. 100년 후엔 나아진다? 절대! 네버! 나아지지 않습니다. 역사가 말해주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럼 우리 어떡하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