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혈남 윤석열 검사>

 

조선시대 실학자 정약용이 편찬한 목민심서(牧民心書)는 당대의 지방 관리들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을 정리한 지침서다. 목민심서가 가르치려 했던 청렴하고 강직한 공직자상은 현대사회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점에서 시대를 초월한 명저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오늘날까지도 수많은 오마쥬들이 양산되면서 공직윤리의 지침서로 읽혀지고 있다.

 

목민심서에서 읽은 가장 인상적인 구절이다.  

 

 목민심서(牧民心書:정약용)/봉공육조(奉公六條) 예제(禮際)

 

 唯上司所令(유상사소영) : 상사의 명령하는 것이

 

 違於公法(위어공법) : 공법(公法)에 어긋나고

 

 害於民生(해어민생) : 민생을 해치는 것이라면

 

 當毅然不屈(당의연불굴) : 마땅히 꿋꿋하게 굴하지 말아야 하며

 

 確然自守(확연자수) : 확연히 스스로 지켜야 한다.

 

 

목민심서가 세상에 나온지 200년, 정약용의 가르침을 온몸으로 실천한 관료가 나타났다. "항명이다", "하극상이다", "조폭만도 못한~"  21일 국정감사장에서는 증인으로 출석한 한 남자에게 거센 지탄들이 쏟아졌다.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특별수사팀장에서 배제된 윤석열 여주지청장의 이야기다. 윤 검사에게 원하는 답변을 듣지 못한 새누리당 의원들은 더욱 독한 말로 그를 몰아부쳤고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 속에서 증인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습니다"

 

기세등등하게 윤 검사를 몰아치던 여당 의원들의 낯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들이 당황한 이유는 저 말에 마땅한 대응 매뉴얼이 없었기 때문이다. 상명하복을 지고지순의 가치로 여기고 살아온 인생들에게는 난생 처음 듣는 전복의 언어였을 터이니. 나도 당황했다. 진흙탕 같은 국정감사장에서, 그것도 일선 검사의 입에서 저런 명언이 튀어 나올 줄 누가 았알을까. '신목민심서'가 만들어진다면 그 첫 구절로 손색이 없을 명문이다.  

 

"물고문 해서라도 자백 받으라고 지시할 때 이의제기하나? 위법을 지시하면 따르면 안 되는 것이다"

 

적나라한 '확인사살'이다. 검사동일체의 원칙이 폐기된지 10년이 지났지만 검사사회에서는(대부분의 관료사회에서는) 여전히 상명하복이 금과옥조의 순리로 여겨진다. 이를 공개석상에서 정면으로 반박한 윤 검사의 일침은 꽤나 도발적이다. 그는 상명하복의 원칙을 어겨야 했던 부득이함에 대해 항변한 것이 아니라, 상명하복이란 체계 자체를 부정하고 전복시켰다. 그들 세계에서는 신앙과도 같았던 원칙과 가치관을 송두리채 부정한 것이다. 마치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골품제의 천박함을 지적했던 김춘추처럼. 이 급작스런 파격에 누군들 당황하지 않을 수 있으랴.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은 사람이 아닌 '다른 것'에 충성한다는 뜻이다. 상명하복(上命下服)에서 상(上)을 상사, 권력자로 보지 않는다면 그는 이 원칙을 부정한 것이 아니다. 상(上)자리에 다른 것, 이를테면 '국민'이나 '법' 같은 것을 넣는다면 상명하복은 야만이 아닌 숭고한 이상이 된다. 그가 말하려 했던 건 이것이 아니었을까?

 

'사람에 충성하지 말라'

 

저 문장이 절절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이것이 한국사회가 처한 작금의 현실에 너무나 와닿는 구절이기 때문이다. 저 말을 듣고서야 알았다. 국정원사건의 본질이 ‘사람에 대한 충성’이었다는 것을. 이번 공작을 지휘-감독한 원세훈 국정원장에서부터 역삼동 오피스텔의 말단 김하영까지 그들은 한결같이 '사람'에 충성했다. 선거 직전 수사결과를 공갈로 발표한 김용판 서울경찰청장과 그의 지시를 충실히 따라 축소-은폐수사에 힘을 보탰던 수사관들 역시 다르지 않다. 함께 부정선거에 가담했던 국방부와 보훈처의 졸개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이 거대한 공작이 모두 일신의 영달을 위해 권력자에게 충성을 바쳤던 관료들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이 광기의 무대에서 사람이 아닌 '다른 것'에 충성한 인물은 권은희와 채동욱, 윤석열 정도가 고작이다. 국정조사 청문회와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했던 수십명의 검-경 관계자들은 단지 '영혼이 없다'는 말로는 설명이 부족할만큼 잘 기름칠 된 '부품'의 모습이었다. 그들은 미리 준비된 각본에 따라 마치 한몸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그런 금속성의 '부품'들 사이에서 인간 권은희, 윤석열이 빛을 발했던건 당연하다. 

 

‘사람에 대한 충성’은 사라져야 할 중세의 구습이다. 관료들이 권력자에게 충성하는 사회에서 국정원사건과 같은 '충성비리'는 근절 될 수 없다. 민주주의가 지배하는(지배해야 할)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관료들이 충성해야 할 대상은 권력자가 아닌 민주주의와 법, 국민이어야 한다. 윤석열 검사는 진정한 민주주의는 '사람에 대한 충성'이 사라질 때라야 비로소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었다. 이나라의 관료들이 윤 검사의 일침을 가슴에 담아야 할 이유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다람쥐주인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2013.10.23 10:30 신고

    님의 명쾌한 혜안에 동감합니다.
    국민과 나라에 충성하는 공직자..
    법과 원칙이 바로 서는 사회....
    이래야 자랑스런 조국을 후손에게 물려 줄 수 있을 것입니다

  2. 2013.10.23 21:37 신고

    늘 핵심을 찌르는 글에 감동받고 있습니다!
    언제글이올라오는지 늘 기다리며 기대하고있습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3. 2013.10.26 10:58 신고

    진짜 멋진글입니다!!!

  4. 2013.10.30 08:51 신고

    대한민국에 윤석열검사와 같은 사람만 있다면 모든 거악들이 일거에 제거될텐데..
    적어도 희망을 보여준 윤검사의 기개와 공무원으로서의 자세는 역사에 남을 만큼
    우리사회에 그리고 그저 일신영달을 위하여 아부하는 소인배들에게 큰 경고로 각인될 터..
    윤검사는 절대로 그자리에서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물러서면 안되고, 끝까지 이 사회의 소금과 같은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한다.
    사퇴함으로 그걸 원하는 자들이 바라는 대로 일시적인 찾잔의 미풍으로 끝나서는 안된다는 얘기다.

  5. 2014.03.01 05:12 신고

    그렇다면 윤석열의 사람은 실체가 없는 것인가? 그의 사상이 과연 온전하게 국민을 바탕으로 한것이라는 증거는 어디에 있는가. 그런 문장뒤에 숨은 윤석열의 사람, 즉 비뚤어진 사상이 영웅시되어야 할 근거에서 비릿한 냄새가 난다. 또 그가 말하는 상명하복에 따를 수 없다면 그 경위를 당당히 밝혀야 할 것이고 검사임명 당시 이를 주장하고 분명히 해야 햇다. 한 사람의 양심으로 포장된 영웅심리가 진정한 국민의 양심이 아니기 때문이다.

  6. 2014.04.23 09:21 신고

    마음을 움직이게하는 글입니다~!!
    정약용 선생님이 다시 태어나시길....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