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억년 동안 진화하지 못한 실러캔스>

 

지구에 사는 대부분의 생물은 진화를 한다. 그런데 수천만년~수억년 동안 진화를 하지 않은 채 살아남은 극소수의 생물들이 있다. 이런 것들을 '살아있는 화석'이라 부른다. 동물 중에는 실러캔스, 바퀴벌레 같은 것들이 있고 식물 중에는 은행나무, 버드나무 같은 것들이 있다. 살아있는 화석들은 과거 지구에서 멸종된 생물과 현재의 생물과의 진화관계를 규명하는 연구 자료로서 중요한 가치를 갖는다. 진화는 자연계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자연계의 진화에 비하면 보잘것 없지만, 인간의 문명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끊임없이 진화해왔다.          

 

그들이 진화하지 않은 이유

 

낡은 물건중에는 고쳐서 다시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있는가하면, 너무 낡아 버려야 할 물건도 있다. 낡디낡아 도저히 고쳐쓰지 못할 물건 말이다. 정당중에도 그런 것들이 있다. 어떤 나라에는 기독교 원리주의 정당도 있고 어떤 나라에는 아직도 무산혁명을 꿈꾸는 정당도 있다. 그리고 한국에는 새누리당이 있다. 대개의 낡은 정당들은 집권할 가능성이 전혀 없지만, 한국의 새누리당은 작년 또다시 집권에 성공했다.

            

그야말로 복고열풍이다. 지난 2일 홍사덕 전의원이 관변단체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의 대표상임의원으로 내정된데 이어 어제 서청원 전의원이 화성 갑 보궐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홍 전의원이 뇌물수수 사건으로 새누리당을 탈당한 것이 불과 1년전 일이고, 서 전의원은 차떼기의 주역이자 5년전 총선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던 친박연대 공천비리의 몸통이다. 그보다 두어달 먼저 부활한 청와대 비서실장 김기춘 옹은 유신헌법의 산파이자 희대의 관권선거 모의사건인 초원복집사건의 주모자다. 

 

이들 셋은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정치범죄의 주인공이라는 점 외에도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역정을 지근거리에서 보필해 온 '올드친박'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작년 대선캠프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았던 홍사덕은 친박계 원조 좌장으로 물리는 인물이며, 서청원은 2008년 박근혜 대통령의 친위부대 친박연대를 만들었던 장본인이다. 김기춘은 잘 알려진대로 유신헌법의 초안작성자이자 박근혜 대통령의 자문그룹 '7인회'의 맴버로 대를 이어 박 씨가문에 충성을 바치고 있는 인물이다. 아무리 대통령의 인사권이 막강한 나라라지만 이렇게 노골적인 보은인사는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범죄자들에게도 갱생의 기회는 주어져야 마땅하나 정치무대가 정치범죄자의 갱생의 장이 되어서는 안된다. 아무리 강호의 도가 땅에 떨어졌다지만 공천뇌물을 받고 관권선거를 모의했던 자들이 다시 정치를 하겠다며 국민 앞에 고개를 내미는 건 너무 파렴치하다.  

 

저 당은 박정희 소장이 대통령이 되었던 50년 전부터 그의 딸이 대통령이 된 2013년이 되기까지 한걸음도 진화하지 못했다. 지역주의, 공천비리, 부정선거, 성추문...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끊어내지 못한 새누리당은 한국정치사에서 나타났던 모든 구태들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 지금 저 당의 대표는 31년전 선량한 대학생들을 간첩으로 몰아 무기형을 내렸던 공안판사 출신이고, 저 당에서 배출한 현직 대통령은 독재자 박정희의 철학을 그대로 계승한 정치적 아바타다. 통째로 들고 50년전에 데려다 놓아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면면들이다. 새누리당은 낡음의 상징이요 살아있는 화석이다.

 

50년이란 시간은 한 인간이 태어나 지천명(知天命)에 이른다는 긴 세월이다. 반백년의 세월을 제자리에 머문 정당이라면 분명 연구할 가치가 있다. 요즘 새누리당은 '진화하지 않으면 나처럼 된다'는 걸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들을 잘 연구한다면 한국정치가 그동안 왜 발전하지 못했는지, 앞으로 어떻게 하면 발전할 수 있을지에 대한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나란히 귀환한 올드보이 서청원(左)과 홍사덕(右)

   

반면교사 새누리당에게 배우라

 

살아있는 화석이 진화하지 않았던 이유는 진화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일찍이 우월한 생존조건을 가진 탓에 진화하지 않고도 멸종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새누리당에게도 그런 우월한 생존조건이 하나 있다. 경상도를 기반으로 한 패권적 지역주의가 그것이다. 지역주의 구도가 가장 중요한 투표요인으로 남아 있는 이상 새누리당은 인구 구성비로 볼 때 선거에서 질래야 질 수가 없는 당이다. 이렇게 완벽한 생존조건을 가졌기에 그들은 진화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새누리당에게도 변화의 기회는 있었다. 2000년대초 '당내민주화'라는 구호를 앞세운 정당개혁은 한국정치의 가장 중요한 화두 중 하나였다. 한나라-민주 양당은 5년 터울을 두고 김대중-이회창이라는 마지막 총재들을 떠나보냈지만, 이후의 양상은 크게 다르게 전개됐다.

 

민주당이 지리멸렬해 보이긴 하지만, 적어도 그 당에서는 상명하복의 1인 보스정치는 발견할 수 없다. 그럴만한 가능성도 보이지 않는다. 최소한의 당내민주화가 이루어진 결과다. 새누리당이 민주당과 달리 1인 보스정치를 청산하지 못한 이유는 친이-친박간의 당권투쟁에서 찾을 수 있다. 2000년대 초반 '수요모임'으로 대표되던 한나라당 개혁소장파들은 외부적으로 중도지향을, 내부적으로 당내민주화를 요구하며 비교적 강한 톤으로 쇄신의지를 피력했다. 친박-친이 계파간의 골육상쟁이 본격화된 2000년대 중반은 한나라당에서 소장파들의 목소리가 사라진 시점과 일치한다. 이후 그들은 당내에서 설곳을 잃거나 개혁성을 잃고 2007년 대선 직전 해체된다. 그렇게 내부개혁의 동력을 상실한 새누리당은 지금의 수구정당의 모습으로 이미지를 굳혔다. 민주당이 나름의 개혁을 이뤄가던 시기에 새누리당은 양대 세력간의 당권투쟁에 함몰되면서 당을 쇄신할 시기를 놓쳤기 때문이다. 개혁의 의지도, 동력도 상실한 저 당에서 이제 민주적인 리더십은 기대할 수도 없다. 

 

올드보이들의 귀환은 견제받지 않는 1인 보스정치의 결과물이다. 쇄신하지 못한 정당이 구태를 답습하는 건 필연이다. 새누리당이 보여준 정체(停滯)는 정당의 진화가 결코 저절로 일어나지 않음을 말해준다. 다시 말해, 어떤 정당이든 저들처럼만 하지 않으면 발전할 수 있다는 뜻이다. 때로는 반면교사가 가장 좋은 스승이 되기도 한다. 그저 새누리당과 반대로만 하면 된다. 지역주의에 반대하고, 공천비리 없애고, 성도덕을 바로세우고, 비리연루자들을 다시 공천하지 않으면 좋은 정당이 될 수 있다. 얼마나 쉬운가?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새누리당은 우리 정치에서 보존되어야 할 귀중한 유산이자, 최고의 반면교사다. 진화하길 원하는 정당이 있다면 새누리당에게서 배우라. 전설 속의 구태정당이 현실정치에 살아있다. 저걸 보고도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면 정치를 논할 자격이 없다. 부디 새누리당이 오래~오래 살아남아 한국정치에 좋은 교훈을 전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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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다람쥐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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