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파 음악상 수상을 거부한 류재준 씨>

 

음악은 음악일 뿐이다?

 

홍난파의 친일경력 등을 이유로 '난파 음악상' 수상을 거부한 젊은 음악인들의 소식이 화제다. 몇일 전 수상자로 선정된 작곡가 류재준 씨가 이 상을 받기를 거부하자 주최 측은 어제 부랴부랴 수상자를 재선정해서 발표했지만 후속(?) 수상자로 선정된 소프라노 임선혜 씨 역시 이 상을 받지 않겠다는 뜻을 전해왔다. 친일음악가 홍난파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었던 대중은 즉각 이 소식에 환호했다. 그런데, 시상식을 주관하는 <난파기념사업회>와 이 상을 수상했던 일부 음악인들의 생각은 좀 다른 것 같다. 홍난파의 친일행적만큼이나 불쾌한 것이 이 상을 주고 받는 사람들의 태도다.

 

-오현규 난파기념사업회 회장-

받을 사람이 없으면 안주면 그만이다. 음악을 정치쟁점화하는 지금의 상황은 대단히 잘못된 것.

 

-김대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18회 난파음악상 수상자- 

예술은 그 자체로 인정해야 한다. 음악인을 장려해 주는 상이 아직 많지 않은 한국 실정에서 난파음악상을 정치 쟁점화하는 것은 예술계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  

 

저들은 바깥 세상과의 단절을 통해 음악의 순결함을 설명하려 한다. ‘이 분야는 세상일과는 무관해’라고 말하는 바보들은 흔하게 발견할 수 있지만, 그것이 다른 분야도 아닌 음악인들의 주장이라면 조금 놀랍다. 세상과 동떨어진 진공상태의 음악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음악은 음악일 뿐이다" 따위의 분리주의가 통할 만큼 일차원적이지 않다.

 

저들의 입에서 나온 ‘정치쟁점화’라는 표현은 어떻게 해석해도 어색하다. 이 표현이 수상자들이 수상을 거부한 행위를 말하는 건지, 그 소식을 보도한 언론이 문제라는 건지, 아니면 그 소식에 환호하는 대중이 문제라는 건지 도통 모르겠다. 친일음악인을 기리는 행사를 보이콧한 행위가 어떻게 '정치쟁점'이 되는 걸까? 현실정치와 아무런 관련도 없는 류재준 씨가 정치적 의도를 갖고 수상을 거부했을 리도 없으며, 그런 신선한 소식이 언론의 지면에 보도되는 것은 당연하다. 저 사람들은 '정치'란 말의 뜻을 잘못 알고있는게 분명하다.

 

저들이 '정치쟁점화'라는 어색한 표현을 들먹인 이유는 홍난파의 친일행적과 난파 음악상과의 무관함을 항변하려 했기 때문이다. "음악은 음악일 뿐이다"라는 궤변은 인간의 예술인 음악에 대한 기계적 해석이다. 다른 영역도 아닌 '음악'이라면 작가의 삶과 작품이 기계적으로 분리될 수 없다. 홍난파라는 음악인이 걸었던 삶의 궤적은 그의 음악과 무관하지 않다. 동포애를 저버린 음악인에 대한 평가가 박한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굳이 음악인 홍난파를 기리는 행사가 필요하다면 그가 사랑했던 일본땅에서 주최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흉물스럽게 서 있는 홍난파의 동상. 수원시>

 

세상과 단절된 예술은 없다

 

'홍난파가 친일파인가'에 대한 논쟁은 무의미하다. "홍난파의 친일 행적을 문제 삼는 이들이 있어 발표 전에 수상자의 수용 의사를 확인하곤 한다"는 주최 측의 발언을 보면 난파기념사업회 역시 홍난파의 친일행적을 인지(인정)하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주최 측은 그걸 알고도 이 불쾌한 행사를 46년간 진행해 온 것이다. 저들이 수상거부에 대해 반박하는 논리는 홍난파의 친일행적과 음악적 성취는 무관하다는 주장이다. 이것이 과연 온당한 태도일까?  

 

'예술은 세상일과는 무관한 지고지순한 가치'라는 주최 측의 논리대로라면 난파 음악회의 수상자는 히틀러나 후세인이라도 문제될 것이 없다. 음악만 잘한다면 말이다. 저 논리를 받아들이면 나치에 부역했던 푸트르뱅글러나 카라얀도 면죄부를 얻는다. 그러나 그들에게 면죄부를 발급하려면 공과를 논하기 이전에, 어떻게 '바깥세상과 분리된 진공상태의 예술'이 존재할 수 있는지부터 설명해야 한다.   

 

홍난파의 음악과 우리가 사는 세상을 연관지어 이해한 류재준 씨의 태도는 훌륭해 보인다. (임선혜 씨는 명확히 홍난파의 친일행각을 수상거부의 이유로 밝히지 않았다) 모두가 류재준 씨처럼 수상을 거부해야 했다는 것은 아니다. '오직 음악 밖에 몰랐던' 이전 수상자들은 이 상을 순수한 음악인으로서의 영예로 받아들였다. 허나 난파 음악상에 대해 음악인으로서의 입장은 물론 역사적, 사회적 맥락에서까지 입체적으로 사고한 류씨의 태도가 이 상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던 이전 수상자들의 그것보다 훌륭해 보이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시상식을 주관하는 단체가 이성을 가진 단체라면 수상거부에서 엉뚱하게 정치적 의미를 찾을 것이 아니라, 대중이 왜 이 소식에 환호했는지, 행사 자체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진지하게 고민했어야 했다.    

 

우리가 사는 세상과 단절된 밀폐상태의 음악이라면 세상에 존재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저들의 음악이 그렇게 건조한 것이라면 왜 그리도 떠들썩하게 보도자료를 뿌리고 요란한 시상식을 하는 걸까? 세상이 녹아있지 않은, 세상과 동떨어진 '별세계의 음악'이라면 지구 어디에서도 연주될 이유가 없다. 저들의 주장대로라면 난파 음악상은 우리와 다른 세상을 사는 '외계음악인'들의 축제다. 내년부터는 시상식을 좀 조용히 치르는 것이 어떨까? 이땅의 주인인 지구인들이 불쾌함을 느끼지 않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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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다람쥐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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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9.13 09:36 신고

    글 멋지십니다~~
    암요, 세상과 단절된 예술은 없습니다

  2. 2013.09.13 10:11 신고

    예술계에 이란 분이 계신다는 게 자랑스럽습니다.

  3. 2013.09.13 17:07 신고

    그러나. 참 당혹스럽습니다. 정말 살아가기에 어려운 시기인 것 같습니다. 총체적 난국이 어디서부터 오는지 가늠하기 어렵기도 하구요. 정신적 뚜렷한 주관과 가치관이 필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새로운 사실을 알게된 것입니다.
    그러나 새롭지 않은 사실이 있네요.
    처음 수상자부터 모든 수장자들이 대한민국의 국위를 높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 모두 대한민국인임을 정말 자랑스러워 하였었고, 지금도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성불사의 밤' 은 참으로 훌륭한 가곡입니다.
    어쩌면, 바이올린으로 연주하게 된다면 세상에서 가장 슬픈 가락 중에 하나가 될런지도 모릅니다.

  4. 2013.09.13 23:16 신고

    지난건 추억에 묻어둬~ 새로운걸 찾아야지!! 지금이 하스웰 만날때야~ 서둘러!!
    http://core-event.co.kr/page2013/eventPage/130812_4thRealManForm2.asp

  5. 2013.09.18 12:02 신고

    삶과 분리된 예술은 예술이 아니라 외설일 뿐입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거짓과 허위가 그 예술이라는 외설 속에 빼곡히 쌓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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