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당 이석기 의원>

 

-이 글은 녹취록공개와 이석기 의원의 기자회견 이전에 작성된 글입니다. 이후 밝혀진 사실관계에 따라 제 입장에도 달라진 부분이 있음을 밝힙니다.  

 

발빠른 거리두기 

 

촛불집회 연단에 민주당 김한길 대표가 등장했다. 장내에는 “와~”보다는 “우~”에 가까운 함성이 들렸다. 그의 연설이 끝나고 이번엔 진보당 이정희 대표가 연단에 올랐다. “와아~~” 조금전 김한길 의원이 소개됐을 때보다 10배, 그 이상의 함성이었다. 다른날 민주당 모 의원과 진보당 김재연 의원이 올라왔을 때도 함성의 '비율'은 그것과 비슷했다. 한번이라도 촛불집회에 참여한 사람이라면 두 정당을 대하는 시민들의 온도의 차이를 체감했을 것이다. 민주당은 의원 100여명의 '대군'을 이끌고 광장으로 진군했지만 그곳의 주인공은 자신들이 아니었다. 시민들의 '부당한 대우'에 제1야당은 자존심이 상했을지도 모르겠다.

 

여기에 큰 의미를 둘 필요는 없다. 촛불민심이 민주당보다 진보당에 가깝기 때문이라 할 수도 있고, 민주당의 어정쩡한 행보에 민심이 실망했다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요동치는 거리의 민심은 정치상황에 따라 언제고 달라질 수 있다. 문제는 이 온도의 차이를 대하는 민주당의 태도다. 광장의 주인이 되지 못했던 것에 빈정이 상했던 걸까? 어제 국정원이 통합진보당과 이석기 의원에 대해 압수수색을 실시하자 민주당 김한길 대표는 이렇게 밝혔다.

 

깜짝 놀랐다. 사실이라면 용납할 수 없는 충격적 사건이다. 어처구니없는 발상이 사실이라면 또 하나의 국기문란 사건으로 철저한 수사가 있어야 마땅하다. 다만 국정원 개혁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대두되고 있는 시점에서 불거진 사건이고 국기문란 사건의 당사자로 지탄받고 있는 국정원이 수사주체가 돼 있는 만큼, 이번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는 추이를 예의주시하겠다.

 

민주당은 당장에 참석키로 예정돼있던 30일 촛불집회에 불참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진보당이 주최하는 행사라는 것이 취소의 이유다. 다음날 서울역광장에서 열리는 촛불집회에는 예정대로 참석하기로 결정했지만 민주당은 이날 모든 정당 연설 순서를 없애고 진보당 사건과 관련한 피켓이 등장하지 않도록 주최 측에 요청하는 등 진보당과의 적극적인 거리두기에 나섰다. 압수수색을 당한건 진보당인데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는건 민주당이다. 언제부터인가 종북에 '종'자만 꺼내도 놀란 토끼눈을 뜨는 민주당이다. 저들은 뭘 잘못한 걸까?

 

진실이냐 공작이냐

 

국정원이 칼을 빼든 지금 우리는 두 가지 가정 사이에서 혼란스럽다. '진실인가 공작인가' 때로는 이런 혼란이 사람(집단)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내리는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이 사건에 대한 입장에서 진실과 공작, 둘 중 어디에 방점을 찍는가를 보면 그 사람의 이성과 가치관이 보인다. 어제 청와대와 민주당의 논평 요약이다.

 

청와대 "사실이라면 경악"

민주당 "사실이라면 충격" 

 

어째 말 본새가 비슷하다. 민주당의 논평은 내일 아침 조중동에 실릴 머릿기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두 논평에서 읽혀지는 공통점은 '진실'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사실이다. 청와대와 민주당은 공히 '사실이라면'이라는 가정에 방점을 찍고 있다. 만약 민주당이 국정원의 '공작'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면 "용납할 수 없는 충격적 사건"이나 "국기문란 사건"같은 공격적인 표현을 거침없이 사용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민주당은 국정원의 노림수에 정확히 호응했거나 그 이상의 리액션을 보여주고 있다. 

 

궁지에 몰린 국정원의 국면전환용 카드라는 것이 이번 수사를 바라보는 합리적 중론이다. '내란예비음모죄', '변장도주', '전신전화국 폭파지시' 하루 사이 무성영화시대에나 쓰였을 법한 말들이 지면을 뒤덮었다. 저런 민망한 단어들을 담담하게 내뱉어대는 앵커의 모습에서 아찔함을 느낀다. 이정도 요란이라면 이석기 의원의 집 지하실에서 탱크 몇 대라도 발견해야 본전이다. 일반인의 상식은 말할 것도 없고 주체사상의 대부였던 김영환 씨의 눈에도 "이건 말이 안돼는 얘기"란다. 이석기 의원이 변장을 한 채 도주했다는 둥 진보당 현역의원들이 괴단체에 소속된 지하조직원이라는 둥 블록버스터급 괴담이 퍼져나간다. 이런 황당무계한 주장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라면 인지사고능력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해야 한다.    

 

이번 국정원수사에 대한 의구심은 단지 시기상의 문제만이 아니다. 정보기관의 용공조작의 흔적을 찾기 위해 조봉암 사건이나 인혁당 사건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없다. 불과 일주일 전 '화교남매 간첩 조작사건'이 국정원의 치졸한 용공조작이었음이 법정에서 밝혀졌다. 청문회장에 나와 "종북세력에게 댓글좀 달게 해달라"던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그의 주장을 옹호하던 새누리당의 모습도 생생히 기억한다. 권력의 중심부 곳곳에서 발견되는 매카시즘은 이나라의 비참한 현실이다. 여러가지 정치적 환경이나 정국의 흐름으로 볼때 이석기-진보당 사건 역시 그런 성격의 것일지 모른다는 추론은 합리적 의심이다. 검찰이 아무런 증거를 공개하지 않았고 당사자들이 혐의를 극구 부인하고 있는 상황이다. 만약 수사결과 혐의가 입증되지 못한다면 민주당은 저 말을 어떻게 주워담을 작정인가?

 

진보당의 혐의를 감싸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어찌되었든 국정원의 '합법적인' 수사를 지켜봐야 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렇다해도 민주당은 이시점에서 굳이 불필요한 가정법으로 광장의 파트너를 곤란하게 할 이유는 없었다. 게다가 "용납할 수 없는 충격적 사건", "국기문란 사건"같은 공격적인 언사를 사용한 것은 진보당과의 거리두기를 위한 다분히 의도된 표현이다. 비겁하며 현명하지도 못하다. 거리에서 국정원의 '비정상성'과 싸우고 있는 민주당이 그들의 비상식적인 주장을 그대로 받아 쓴다. 이게 정상인가?

 

<지난주 무죄로 판결난 화교남매 간첩 조작사건>

 

종북몰이에 대처하는 방법

 

민주당의 발빠른 거리두기가 국정원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장외투쟁에 찬물을 끼얹을까 걱정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촛불의 향배보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수권정당으로서 민주당의 능력이다. '종북세력이 실제하는가?' 혹은 '그것이 실존하는 위협인가?'라는 의문과는 별개로 '부당한 종북몰이에 어떻게 대처하는가'는 민주당에게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문제다. 이것에 대처하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1) 반대하거나

2) 회피하거나

3) 동참하거나.

 

민주당이 택한 '거리두기'는 2번과 3번에 모두 해당된다. 선택할 수 있는 최악의 수다. 셈에 능한 정치공학자들은 민주당의 거리두기를 현명한 선택이라 말할지도 모르겠다. 당장 지지율 계산기를 두드려보면 이득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종북프레임 공격에 동조한 결과는 반드시 민주당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는 사실도 계산에 넣어야 한다. 

 

실제로 새누리당은 공공연하게 민주당 의원들에게까지 종북의혹을 제기해왔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지난 대선후보 TV토론이다. 당시 박근혜 후보는 문재인 후보에게 전교조와의 '특별한 관계'를 집요하게 추궁하며 민주당을 통째로 종북프레임에 가두려 했다. 문재인 후보는 꽤나 영민하게 대처했지만 사실관계나 의혹의 비합리성과는 무관하게 의혹제기 자체로 적지 않은 타격을 입어야했다. 종북프레임은 거리두기로 극복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민주당의 "우린 그런 애들하고 안친해요"전략이 한심한 이유다.

 

민주당의 이중잣대

 

민주당은 그동안 새누리당의 종북공세에 대해 이중적인 전략을 취해왔다. 자당의원에 대한 종북공세에 대해서는 "낡은 매카시즘"이라며 반발하면서도, 진보정당들에 대한 종북공세에 대해서는 유보적이거나 소극적인 입장을 취해왔다. 민주당이 이런 태도를 보여온 것은 진보정당들을 야권의 '곁가지'쯤으로 여겨왔기 때문이다. 여기서 민주당이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 이제 야권지지자들이 민주당 이외의 대안에 익숙하다는 사실이다. 민주당의 인식은 야권에 민주당 이외의 마땅한 선택지가 없었던 20세기에 머물러 있다. 지난 대선은 더이상 거대 야당 혼자의 힘만으론 정권창출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줬다. 이제 민주당은 야권의 합리적 분화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민주당은 국정원을 비롯한 집권세력의 종북놀음에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 "사실이라면 충격" 따위의 격한 반응을 쏟아내기 전에, 국정원의 의심스러운 행보를 견제하는 것이 제1야당으로서의 이성적 태도다. 아무것도 밝혀진 것이 없는 지금 공상과학소설같은 국정원의 주장을 받아 광장의 파트너를 멀리하려는 것은 바보같다. 이것은 '종북세력과 손을 잡아라'가 아닌 '정략적인 종북몰이에 단호하게 대처하라'는 주문이다.   

 

저들을 색깔론의 유혹에 빠지게 하는 것은 어리석은 민주당의 존재다. 약팍한 종북몰이에 속수무책으로 흔들리는 제1야당이 있는데 집권세력이 색깔론의 유혹을 느끼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민주당은 다른 정치세력을 향한 색깔론을 방치하거나 동조한다면 그 칼날이 고스란히 자신들을 향해 돌아올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집권할 의지가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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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다람쥐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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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8.30 08:25 신고

    민주당의 기회주의적인 속성... 찬두번이라야 말하지요.
    상식이하의 짓을 하는 국정원과 선긋기하는 민주당.. 참 꼴볼견입니다.

  2. 2013.08.30 10:25 신고

    민주당이 우리나라 절반의 야성향 민의를 대변하지 못하는 일례일 뿐입니다.
    그동안의 기대가 너무 컸나 봐요.

  3. 2013.08.30 22:32 신고

    한 마디의 말을 뒤집는데는 열마디 아니 그 이상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 만큼 정치에 있어서 말 한디가 든든한 공격성 방어가 되어 주느냐 방어에 급급한 방어용이 되느냐의 방향을 결정해 준다. 새누리당은 항상 쪼개기 전법을 쓴다.전형적인 살라미 게릴라 전술이다. 이에 거대 사기꾼 여당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민주당 또한 이 전법을 쓰면서 다른 야권과 분열이 되어서는 결코 안된다. 국정원의 쓰리쿠션 치기식 전법에 놀아나서는 더더욱 안된다. 민주당은 어정쩡한 자리를 찿는데 신경쓰지말고 , 차라리 준비되지 않았더라도 끈기있는 공격을 해라.
    국정은 2수구를 먼저쳤지만 1수구가 지례 겁먹은 모양새다.

  4. 2013.08.31 00:47 신고

    민주당은 이석기하고 선을 그어야됩니다 일단 진보당이 당당하면 영장청구되기전에 당당하게 나가서 밝히면되는겁니다 오히려 이번기회에 다신 종북소리 못하게 쇠못박을수있는기회구여 민주당이 이석기편들고 합세하면 오히려 역풍붑니다 민주당은 철저하게 선긋는게 맞습니다

  5. 2013.09.03 11:24 신고

    괜히 꿋꿋이 나갔다가는 '민주당도 종북' 이라고 국정원이 내란죄 적용할까봐 겁먹은 거죠....
    김대중씨나 노무현씨가 돌아가신 것이 안타깝군요.. 지하에서 통곡을 하고 계시겠죠.....
    민주화를 이루었는데 유신으로 회귀하여 내란죄가 적용되고 야당인 민주당은 꼬리내리고...
    잘 나가는 한국이네요... ㅎㅎㅎ ㅉㅉㅉ

  6. 2013.09.05 09:54 신고

    출장이나 휴가 중이신가요? 최근 글이 없으셔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