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박원순 서울시장은 자신의 SNS계정을 통해 서울시청 앞에 마련된 1인 시위자를 위한 파라솔을 공개했다. 헌법재판소는 이보다 앞서 지난 5월 "사회적 약자의 1인 시위를 배려하기 위해 비와 햇볕을 피하도록 시설을 마련하라"는 박한철 소장의 지시에 따라 정문 앞에 파라솔을 설치했다. 보통의 민주주의국가였다면 이런 것들은 대수롭지 않은 뉴스였을 것이다. 이 소식이 유별나고 신선하게 느껴졌던 이유는 이곳이 ‘2013년의 대한민국’이기 때문이다.

 

야만이 지배하는 도시

 

지난 24일, 서울 시내 모 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중인 김시원(18) 군은 청와대 앞에서 황당한 일을 겪어야 했다. 그날 오후 1시 경 김군은 국정원 사건과 관련 특검 도입 등을 요구하며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려 했지만 경찰에 제지당했다. 경찰은 학교, 주소 등 김군의 신원을 확인한 이후에도 5시간 동안 김군을 가로막았다. 소식을 들은 청소년들이 청운동사무소 인근으로 모였고, 김군의 1인 시위를 지지하기 위해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김군을 둘러싸고 1인 시위를 막던 경찰들은 청소년들에게 ‘너 몇살이냐’, ‘어디 사느냐’를 꼬치꼬치 캐물으며 채증을 했고 이렇게 확보한 자료로 학생들의 집과 학교에 협박전화를 걸었다. 경찰의 업무 매뉴얼에 ‘1인 시위자 부모에게 협박전화걸기’라는 내용이 포함돼 있는지 모르겠다. 그게 아니라면 아무런 법적 근거도 없이 1인 시위를 제지했던 경찰관들에게 직권남용의 죄를 엄히 물어야 한다.

 

그일이 있고 3일 뒤, 박원순 시장의 SNS에 시청 앞 파라솔 사진이 올라왔다. 서울시청 앞 파라솔이 6월부터 비치되어 있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박 시장이 요즘 유행하는 ‘디스전’에 가세한 게 아닌가 싶다. 저 파라솔이 낯설게 느껴지는 건 비단 그날의 촌극 때문만은 아니다. 한국에서 아니, 이 도시에서만 봐도 이와 같은 권위주의적 야만을 찾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2011년 위헌 판결을 받은 서울광장 차벽>

 

몇 달 전부터 서울광장은 주말마다 경찰버스들이 만들어낸 차벽에 둘러쌓인다. 그리고, 저녁이 되면 수만 명의 시민들이 그 안에 들어가 공간을 꽉 채운다. 매주 그렇게 수만 명의 시민들이 동그란 차벽 안에 '자발적으로 포위'되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경찰이 광장을 봉쇄하는 이유는 이 집회의 '전시효과'를 차단하기 위함일 것이다. 그시간 수십만의 시민들이 시청앞 도로를 지나치지만 차벽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다. 차벽을 사이에 둔 채 도로와 광장은 별세계가 된다. 광장의 문제의식은 그렇게 차벽에 가로막혀 공유되지 못한다.

 

광장의 본질은 '트임'에 있다. 공권력에 의해 사방이 가로막힌 광장은 이미 '광장'이 아니다. 광장의 목소리를 차단∙통제하려는 태도는 정상적인 민주국가의 태도와는 거리가 멀다. 2011년 헌법재판소는 '경찰이 서울광장을 전경버스로 완전히 에워싸 시민의 통행을 원천적으로 막은 조치는 시민의 행동자유권을 침해한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경찰의 차벽설치는 초헌법적인 범죄행위인 것이다. 한국의 경찰은 헌법보다 시민권의 제한, 광장의 통제가 더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전형적인 권위주의국가 경찰의 모습이다.

 

<분향소를 밀어내고 만들어진 '죽음의 꽃밭'>

 

차벽에 둘러싸인 서울광장의 건너편 대한문 앞에는 작은 꽃밭이 하나 있다. 이 어색한 꽃밭은 지난 4월 4일 새벽 경찰과 중구청직원 250여명이 '급습'해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들이 그날 새벽 꽃밭을 만들기 위해 급습했던 곳은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사태 뒤 목숨을 끊은 이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설치됐던 분향소였다. 분향소가 설치된 지 딱 1년을 하루 앞둔 그날 중구청 직원들은 순식간에 분향소를 파괴한 뒤 흙 4톤을 쏟아붓고 화단을 만들었다. '화단 빨리 만들기대회'라도 벌어진 듯.

 

그날 중구청이 천막을 강제철거한 이유는 분향소가 시민들의 통행을 방해한다는 이유였지만, 분향소를 대신해 들어선 화단 역시 시민들의 통행을 방해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분향소를 치우기 위한 목적이 다분하다. 후보시절 쌍용차사태에 대한 조속한 해결과 국정조사를 약속했던 박근혜 대통령은 당선 뒤 약속이행은 커녕 노동자들의 주검까지 모욕되는 이 참담한 상황에서도 아무런 미동도 없다. 죽은이의 넋을 기리던 분향소를 철거한 자리에 만들어진 이 화단은 구시대적인 야만이자 권위적인 공권력의 상징이다. 현재 대한문 앞 쌍용차 시민분향소는 이 '죽음의 꽃밭'에 밀려 구석으로 밀려나 설치돼있다. 

 

<"5.16은 혁명이다" 최창식 중구청장>

 

대한문 앞에 화단을 만든 최창식 중구청장은 '서울의 퇴화'에 선봉에 서 있는 인물이다. "5.16은 혁명"이라 당당히 밝히는 그는 자신의 관내에 ‘박정희 기념공원’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서울시 중구청은 2017년까지 서울 신당동에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 가옥 일대 3600㎡를 기념공원으로 건립하겠다는 계획이다. 6월 박근혜 대통령은 이에 대해 국가경제가 어렵다는 이유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최창식 중구청장은 "그래도 계속 추진하겠다"며 화답했다. 어쩌면 한국의 수도 한복판에 독재자를 기리는 공원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과거행 타임머신 멈춰야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은 광장을 봉쇄하고, 1인 시위를 끌어내고, 노동자들의 분향소를 짓밝고, 독재자의 기념공원을 만드는, 그런 야만의 도시다. 이런 권위적인 공권력이 지배하는 도시에 나타난 '1인 시위용 파라솔'은 마치 미래에서 온 괴물체처럼 느껴진다. 조선시대에 뚝 떨어진 아이폰같은.  

 

이 별것 아닌 파라솔은 많은 것을 상징한다. 박원순 시장이 파라솔을 통해 보여준 탈권위주의는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60~70년대의 권위주의로 되돌아간 이나라 공권력의 모습보다 50년쯤 앞서 있는 것이다. 이 '시대착오적 물건'은 민주주의와 인권, 탈권위주의, 바람직한 국가-시민사회의 관계 같은 것들을 상징한다. 이런 물건이 지금 이나라에서 어울리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1인 시위를 하던 학생을 끌어내고 집과 학교에 협박전화를 걸었던 경찰들은 시청 앞 파라솔을 바라보며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그들이 느꼈을 괴리감의 크기는 이나라가 거꾸로 거슬러간 세월의 거리와도 같다. 그런 면에서 시청 앞에 나타한 파라솔은 참 반갑다. 박근혜 정부의 과거행 타임머신에 작은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 파라솔을 보며 청와대 앞에서 쫒겨나야 했던 고등학생을 떠올렸고, 불편한 목소리를 존중하는 서울시장의 모습에서 다시 한 번 차벽에 둘러쌓인 광장의 답답함을 느꼈다. 별것 아닌 파라솔은 이렇게 훌륭한 대비를 제공한다.

 

어제 박원순 시장이 SNS에 파라솔을 '자랑'하자 많은 시민들이 이에 환호했다. 이 환호는 현 정권의 권위적 리더십에 지친 우리 국민들이 민주적 리더십을 열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미래형 리더십'을 보여주는 정치인에 대해 국민적 관심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박근혜 정부의 권위적인 불통 리더십이 계속된다면 차기 대선에서의 시대정신은 '민주적 리더십'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 시점에서 그것에 가장 잘 부합하는 정치인이 누구인지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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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다람쥐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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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8.28 09:14 신고

    중구청장 출세하겠습니다.
    이런 인물이 필요한 정권 이 이명박이나 박근혜정권이 아닐까요?

  2. 2013.08.28 09:59 신고

    박원순 시장, 응원합니다!
    정치인들이 보고 좀 배웠으면 좋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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