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촛불집회에 나간다. 지방에 사는 관계로 자주 참여할 여건이 못되기도 하지만 꼭 참석해야한다는 강박을 느끼지도 않는다. 참가한 날의 뿌듯함이나 참가하지 못한 날의 죄책감 같은 건 없다. 집회 참여 여부는 온전히 내 자유의지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이런 걸 두고 취미라 한다면 이것도 '광의의 취미'일까.

 

 

 

지난주 진보논객 허지웅 씨가 국정원 정국과 촛불집회에 관한 자신의 입장을 트위터에 피력했다. 시국선언은 오버라는 것이나 촛불이 아닌 다른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그의 시국인식은 동의하기 힘든 것이지만, 존중한다. 합리적 이견이라면 존중하고 논쟁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트윗의 내용중 성격이 다른 주장이 하나 있다. 촛불을 '당위 없는 취미활동이라 표현한 부분이다. 이 괴상한 말은 내가 존중할 수 있는 표현의 영역을 벗어나 있다.  

 

 

 

촛불을 바라보는 그의 입장을 정리하자면, 진영논리에 빠진 깨시민들의 취미생활이자 무능한 민주당에 착취당하는 노예들의 동원축제라는 거다. 한여름 무더위를 촛불과 함께 보냈던 시민들이 졸지에 이런 호구취급을 받았으니 모욕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시민들의 분노와 무관하게 허 씨의 주장은 논리적이지 못하다. 그의 비논리는 주체와 객체, '착취'와 '수렴'을 혼동하는 데서 비롯된다.  

 

'착취'와 '수렴' 차이

 

촛불을 든 시민들의 진심만은 허 씨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촛불시위를 국민을 볼모로 잡은 (민주당에 의한) '진심의 착취'로 규정한다. 여기서 그가 결정적으로 간과한 부분이 있다. 광장에 나온 시민들은 대부분 자신들의 분노가 제도정치로 수렴되길 원한다는 점이다. 광장의 시민들은 자신들의 물리력으로 정권을 무너뜨리고자 할만큼 어리석지 않다. 만약 그랬다면 그들의 손에 들려있는 것은 말랑한 양초가 아니었을 것이다.  

 

허 씨는 민주당을 시민들의 진심을 착취하는 촛불의 '사용자'로 묘사했다. 저 말만 들으면 민주당에게 '자발적 볼모'가 된 시민들의 신세가 한없이 처량하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크게 다르다. 민주당은 제발로 거리로 나온 것이 아니다. 국회에서 새누리당에게 떠밀려 나온 것이며, 거리의 시민들에게 오히려 ‘동원’된 것이다. 시민들은 자신들의 의사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민주당에게 분노하고 있다. 전후관계와 수혜관계를 따져봐도 촛불의 주체는 분명 광장의 시민들이다. 떠밀려-끌려 나온 민주당을 촛불의 주체인 것처럼 묘사하는 그의 인식은 심하게 뒤틀려 있다. 굳이 이들 사이에 <노사관계>를 따진다면 시민들이 민주당을 '사용'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하다. 

 

표면상으로 허 씨의 비난은 민주당을 조준하고 있다. 그럼에도 많은 시민들이 그의 트윗에 모욕감을 느낀 이유는 그것이 광장의 시민들을 철저하게 객체화 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허 씨의 '촛불취미론'이나 '촛불착취론'은 결국 2008년의 '촛불폭도론', '촛불배후론'의 순화 버전이다. 이것들을 관통하는 정서는 시민들의 무지와 객체성이다. 한마디로 뭣모르는 시민들이 취미로 촛불을 들고 착취당하고 있다는 거다. 하지만 저 문장에서 취미를 '의지'로, 착취를 '수렴'으로 바꾸면 모든 문제가 사라진다. 시민들의 진심이 착취되고 있다는 주장은 촛불의 주체성을 폄하하기 위한 악의적 왜곡이다. 만약 허 씨의 말대로 촛불이 취미라면 이보다 고매한 취미는 없을 것이며, 이것이 착취라면 시민들은 기쁜 마음으로 자신들의 '노동력'을 제공할 것이다.

 

시민들은 자신들의 분노를 민주당을 비롯한 야3당이 제도정치권에서 대변해주길 바라며, 야3당은 그것을 효과적으로 취합-수렴하기 위해 광장으로 나왔다. 무엇이 문제인가? 민주당의 무능함과 전략없음을 비난하려면 촛불을 수렴하려는 태도를 비난할 것이 아니라 촛불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함을 탓해야 옳다.  

 

게다가 촛불은 그의 주장처럼 무용하지도 않다. 매주 수만 명씩 광장에 모여 정치권을 압박하지 않았다면 새누리당이 입장을 바꿔 국정조사를 수용했을까? 당장 광장의 촛불이 꺼진다면 특검이 관철될 수 있을까? 정국의 흐름을 지켜본 사람이라면 저 질문에 감히 "yes"라고 말하진 못할 것이다. 촛불의 힘은 충분하지 않았지만 징징거림으로 치부될 정도로 부질없진 않았다. 

 

 

국정원사건 진상규명이라는 합리적 요구가 제도정치권에서 수용되었다면 광장이 촛불로 채워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제도정치에서 대중의 분노게이지를 낮추지 못할 때 그것이 거리로 표출되는 것은 필연이다. 이것은 허 씨가 촛불의 당위를 어떻게 생각하든 달라지지 않는다. 거리에서 민주주의가 구현되는 것은 분명 고육책이지만, 그걸 하책이라 비난하려면 그것보다 나은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허 씨는 그점에 대해 이렇게 전했다.

 

 

 

그는 최소 6개월 이상 정치뉴스를 전혀 보지 않았거나, 그가 출연하는 채널의 뉴스만 본 듯하다. 그렇지 않고서는 저런 나이브하고 초현실적인 대응을 이야기할 수 없다.

 

누더기같은 수사와 코메디같은 국정조사가 끝났다. 경찰수사를 지휘했던 당시의 서울경찰청장은 은폐-외압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고, 검찰수사는 핵심 피의자에 대한 구속수사도 하지 못한 채 마무리됐다. 국정조사는 차마 눈뜨고 보기가 힘든 비극이었다. 여기까지 온 지금 제도권에서 할 수 있는 다른 공략법이 무얼지 진심으로 궁금하다. 허 씨는 그런걸 알고 있다면 빨리 알려달라. 그런 묘책이 있다면 나부터 당장 도시락 싸서 다니며 촛불을 말리겠다.

 

선한 분노 비난받을 이유 없어 

 

이번 논란에 대해 허지웅 씨가 '참고자료'로 제시한 글의 일부다.  

 

나는 현 시점 한국정치의 후진성이, 보수가 유능한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진보의 무능으로부터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진보의 무능을 야기하는 절대적인 요인으로 이 진영논리와 팬덤정치를 꼽겠다. 당위로 점철된 과도한 진영논리가 쉽게 아이콘과 결합하고, 끝내 팬덤정치로 이어진다. 이명박 정권을 통과하는 동안 시민들 사이에 공유된 뜨거움을 기민하게 선점했던 것이 바로 나꼼수로 대변되는 팬덤의 정의였다. 그 정의가 결국 우리를 어디로 이끌었나. 고작 이명박 정권에 반대하는 것이 전부인, 철학과 원칙이 부재하는 열광이 끝내 가닿은 곳이 어딘가. 

 

출처:<시사인> 진보의 무능: 진영과 팬덤, 허지웅

 

이글을 참고하면 촛불에 대한 그의 인식은 더욱 간결하게 정리된다. 한마디로 '진영논리에 빠진 팬클럽의 광란'이다. 그는 '진보의 무능'이라는 진부한 담론을 진영논리에 결부시켜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현실의 광장에는 그의 표현과는 달리 정돈되지 않은 수많은 주장들이 난무하며, 그곳을 채운 사람들의 스펙트럼은 바다만큼이나 넓다. 이것을 진영논리, 팬덤 같은 유치찬란한 언어로 간단하게 싸잡는 그의 패기가 놀랍다. 그가 한가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상대의 주장에 '진영논리'라는 딱지를 붙이는 순간 이성적인 소통에서 배제되는 쪽은 상대방이 아닌 자신이라는 사실이다.

 

 

촛불집회를 숭고한 언어로 포장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이유는 촛불이 그 자체로 포장될 필요 없는 당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혹 허 씨의 주장처럼 촛불집회가 전략적으로 쓸모 없는 하책일지라도 그것이 비난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 선한 의지의 순박한(?) 표출이 비난받아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적어도 내눈에는 광장의 순진한 분노가 어떤 이의 대안 없는 시크함보다는 훨씬 훌륭해 보인다.

 

 

"선한 의지가 선한 까닭은 그것이 어떤 효과나 결과를 낳아서가 아니다. 비록 이 의지가 원래 의도를 널리 퍼뜨릴 힘이 매우 부족하다 해도, 아무리 노력해도 성과를 얻을 수 없다 해도 그것은 그 자체로 충분한 가치를 지닌 보석처럼 빛날 것이다." -임마뉴엘 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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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다람쥐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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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8.26 23:18 신고

    허지웅씨의 트윗이 일견 타당해 보이기도 했습니다만 다람쥐주인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논조 차이가 있군요.
    진보가 무능해 보이긴 하지만 나꼼수에 대한 그 분의 의견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저나 제 주변의 많은 분들, 특히 정치엔 전혀 관심없었던 일반 시민들의 뜻이 한 곳에 응집될 수 있었으니까요.
    그 거대한 힘을 정치적으로 제대로 표출시키지 못한 진보나 야권의 정치인들의 책임이 크긴 하겠군요.

  2. 2013.08.28 15:11 신고

    상식의 문제를 진보니 보수니 하는 논리로 풀려고하니 논란이 되는듯.
    그냥 상식은 없지만 섹드립 잘하면 진보라고 불리는 이상한 나라의 귀태중 한명인듯.